월급 안 준 사람이 화내는 이상한 범죄…‘임금 체불’
[서울&] [김민아 노무사와 ‘함께 푸는’ 노동문제]
매해 30만 명 1조원 넘게 임금 못 받아
노동자의 생계 위협하는 범죄인데도
‘노동자가 생떼’ 취급하는 잘못된 인식
사용자가 미안해하는 사회 돼야 ‘정상’
연장근로 수당 지급 안 해도 ‘체불’ 해당
가상화폐 지급, ‘통화 지급 규정’ 위반
직장 망하면 국가가 체임 일부분 지급
체불 땐 ‘자발 사직’해도 실업급여 가능
지난 9월 기준 우리나라의 취업자 수는 2838만9천 명이다. 취업은 일하는 기쁨을 주지만 적지 않은 이가 임금·근로시간·휴가·복지·해고 등에서 부당한 처우를 호소하기도 한다. 노동교육으로 유명한 ‘노동교육센터 늘봄’의 김민아 노무사가 상담 사례를 중심으로 해결책을 전해준다. 월 1회 연재. 편집자
“임금을 받지 못했다.” 노동자가 임금을 받지 못한 것을 ‘임금체불’이라고 한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요즘 같은 세상에도 임금을 못 받는 경우가 많을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매해 약 30만 명의 노동자가 1조원 넘는 임금을 못 받고 있다.(이것도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금액이니 실제로는 훨씬 더 큰 금액일 거라 예상한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임금을 못 받는 사건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월급날, 임금을 받지 못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예상하지 못했다면 당황할 것이고, 생계가 막막해서 불안할 것이고, 월급도 못 받고 일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이런 마음을 표현하기도 어렵다. 왜 임금이 입금되지 않았는지, 언제 받을 수 있는지 사용자에게 물어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필자가 만나본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한 상황을 꽤 오래 참으면서 일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임금을 달라고 했더니 묵묵부답이거나 심지어 욕먹는 경우도 있었다. 임금체불은 돈을 줘야 하는 사람이 돈을 주지 않은 것인데, 돈을 받지 못한 사람이 생떼 쓰는 사람 취급을 받는 이상한 상황이다.
임금체불을 당한 노동자가 직장을 관할하는 지방노동관서에 임금체불을 ‘진정’하면(직접 방문 또는 고용노동부 누리집 민원신청에서 온라인으로 가능) 근로감독관이 노동자와 사용자를 불러서 조사한다. 조사결과 임금이 체불된 것이 맞는지, 금액은 얼마인지 확정하고 시정지시를 내린다.
이 과정에서도 임금을 주지 않은 사용자가 오히려 억울해하고 분노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돈을 줘야 할 사람이 돈을 주지 않은 것인데, 돈을 주지 않은 사람이 화내고 욕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임금체불을 진정한 것이 괘씸해서 돈이 있어도 주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거나 사기를 치는 행위만 범죄가 아니라 임금을 체불하는 행위 역시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범죄이다.
근로기준법에서 임금을 체불한 사용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라 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용자가 임금을 주지 않고 버티더라도 기소가 유예되거나 기소된다고 해도 지급해야 할 임금보다 적은 금액의 벌금형이 내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노동자는 민사소송으로 임금을 받아내는 과정이 쉽지 않다. 이러니 임금을 지급하는 대신 그냥 벌금 내고 말겠다는 사용자들이 있을 정도다.
임금을 주지 않은 사용자에게 처벌조항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노동자가 민사소송하는 방법이 더 쉬워져서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할 경제력이 있음에도 임금을 체불하는 사건은 아예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혹시 사용자가 경영 상황 때문에 부득이 임금을 체불하더라도 임금체불이라는 범죄의 피해자가 된 노동자에게 미안해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살면서 언제 당할지 모르는 임금체불을 대비해서 대표적인 다섯 가지 상담 사례를 준비했다.
① 임금을 일부 부족하게 받았다.
근로기준법(제43조)에서 임금을 ‘전액’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다. 사용자의 사정에 따라 금액을 함부로 조정해서 지급할 수 없도록 정한 것이다. 일부라도 지급되지 않은 임금이 있다면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연장근로 수당이나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을 주지 않는 등 일부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도 임금을 전액 지급하지 않았으므로 임금체불이다.
② 임금을 상품권으로 받았다.
근로기준법(제43조)에서 임금을 통화(통용되는 화폐), 즉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임금을 상품권으로 지급해서 문제가 된 사례가 종종 있었고, 심지어 코인 같은 가상화폐로 임금이 지급됐다는 상담을 받은 적도 있다. 상품권이나 가상화폐는 통용되는 화폐가 아니다. 노동자가 월세를 낼 수 없고, 대출금을 갚을 수 없고, 노동자가 원하는 마트나 시장 등지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 이 역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③ 퇴사했는데 다음 월급날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퇴사한 노동자에게 다음 임금 지급일까지 기다리게 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제36조)에서 사용자는 노동자가 퇴직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퇴직금과 그동안 지급하지 않은 임금 등 모든 금품을 전부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다. 혹시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 ‘합의’로 그 기일을 연장할 수 있는데, 그 합의 역시 퇴사한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④ 다니던 직장이 망해서 임금을 받지 못했다.
기업의 파산·회생·도산 등으로 노동자가 임금을 받지 못한 경우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서 체불된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가 있다. 바로 ‘도산대지급금 제도’다. 최종 3개월분의 임금, 휴업수당, 출산 전후 휴가 기간 중의 임금 그리고 최종 3년간의 퇴직금 중에 체불된 금액이고, 연령별로 월 상한액이 있으니 지급요건과 구체적인 지원범위를 확인해야 한다.
⑤ 임금이 체불되길래 사직했다.
자발적인 사직이라면 실업급여(구직급여)를 받을 수 없지만 ‘오죽하면 사직했을까’ 싶은 상황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임금체불도 그런 상황 중 하나다. 퇴사일 전 1년 이내에 2개월 이상 임금체불이 있었다면 노동자가 스스로 사직서를 냈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2개월분 이상 임금 전액을 받지 못한 경우 뿐만 아니라 나중에 임금을 받긴 했지만 2개월 이상 지연해서 받은 경우, 전액이 아니라 임금의 30% 이상을 2개월 이상 받지 못한 경우도 해당한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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