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독립운동 표지석만 외로이…“옛 광주역 복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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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일 학생 수백명이 충돌했던 장소인 옛 광주역 터를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3일 제93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맞아 "광주 동구 대인동에 있던 옛 광주역 터는 중요한 역사 현장이지만 다른 용도로 쓰이면서 그 날의 '기억'이 잊혀져 가고 있다. 상징성을 감안해 복원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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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일 학생 수백명이 충돌했던 장소인 옛 광주역 터를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3일 제93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맞아 “광주 동구 대인동에 있던 옛 광주역 터는 중요한 역사 현장이지만 다른 용도로 쓰이면서 그 날의 ‘기억’이 잊혀져 가고 있다. 상징성을 감안해 복원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광주광역시 내에 관련 기념탑은 여러 곳에 세워져 있으나 1929년 당시 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건물은 전남여고 본관 하나밖에 없다”며 “광주역을 복원하면 근대 역사유적이 거의 사라져버린 광주에서 근대 건축유적으로서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당시 독립운동 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독립기념관 등의 연구보고서를 보면 1929년 10월30일 전남 나주역에서 일본인 학생의 한국인 여학생 희롱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11월3일 옛 광주역 앞에서 한·일 학생 수백명이 모여 충돌했다. 광주역은 나주·담양 등에서 광주로 통학하는 학생들과 광주에 있던 일본인 학생들이 자주 마찰을 빚던 곳이었다. 당시 경찰 등에 의해 학생들은 해산했지만 가두시위에 나서며 학생독립운동으로 발전했다.
광주역은 1969년 7월 광주 북구 중흥동으로 이전했고 원래 자리에 광주동부소방서가 들어서면서 대인동 옛 터는 잊혀졌다. 옛 광주역 터 표지석이 세워졌지만 높이 50㎝ 규모이고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무대’라는 짤막한 내용만 담겨 있다. 기념사업회에서 2019년 90주년을 맞아 표지석에 알림판을 설치했지만 규모가 작아 항일운동 사적지라는 사실을 알리기에는 미흡한 상황이다.
독립기념관도 2010년 8월 펴낸 <국내 항일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 8권-광주·전남 독립운동사적지Ⅰ>에서 ‘옛 광주역이었다는 표지석은 있지만, 1929년 11월 3일 한·일 학생이 충돌했던 광주학생운동의 현장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천득염 한국학호남진흥원 원장(전남대 건축학부 석좌교수)는 “지금의 세대들은 동부소방서 자리가 학생운동의 상징적인 장소라는 점을 모른다”며 “동부소방서는 관공서이기 때문에 이전할 여지가 있는 만큼 옛 광주역을 복원해 학생독립운동부터 5·18까지 광주 정신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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