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과 입술로 연주하는 호르니스트 클리저 “한계는 스스로 정하는 것”
독일의 호른 연주자 펠릭스 클리저(31)는 입술과 왼발로 호른을 연주한다. 그는 왼손 대신 왼발로 악기의 음정 조절 밸브를 누르고, 보통 오른손이 하는 음색 변화와 볼륨 조절은 모두 입술로 대신한다. 그는 양팔 없이 태어났다. 하지만 클리저는 자신을 특별하게 보는 시선을 거부한다. ‘장애를 극복한 연주자’로 규정되기보다는, 그저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청중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제 음악으로 세상에 기쁨을 전하고 싶습니다. 바람은 오직 그것뿐이에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고 생각하는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건 제 문제가 아니라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문제니까요.”
첫 내한 리사이틀을 앞둔 클리저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이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라며 “내 경우에는 사람들과 달리 이런 장애가 한눈에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제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강점과 약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큰 약점이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어요. 모든 약점은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한계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한계는 우리가 자신에게 부여한 한계일 뿐입니다.”
클리저는 다섯 살 때 우연히 호른 소리를 듣고 그 음색에 매료됐다고 한다. 그가 살던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 괴팅엔에는 호른을 가르쳐줄 선생님이 많지 않았다. 길고 정교한 호흡을 요하는 호른을 다루기엔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부모님을 졸라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클리저는 “호른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음색의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호른 연주자가 한 음만 연주해도 단번에 매우 특별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는 다른 악기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호른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며 “어쩌면 그래서 어린 나이에 호른이란 악기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가 처음 호른을 시작했을 때 ‘전문 연주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란 주변의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13살 때인 2004년 하노버 예술대학 예비학생이 됐고, 3년 후 정식 입학했다. 그가 2013년 발표한 첫 앨범은 이듬해 독일의 권위 있는 음악상 중 하나인 에코 클래식의 ‘올해의 영 아티스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클리저는 현재 영국 본머스 심포니의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며 세계 각지에서 연주를 이어가고 있다.
클리저는 “악기를 배우다 보면 주기적으로 좌절의 순간을 경험하고, 이는 모든 음악가가 마찬가지”라며 “그런 상황에서 그냥 주저앉을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지는 자신의 결정에 달렸다.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삶이 재밌다”고 말했다.
클리저는 5일 울산현대예술관 대극장, 9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베토벤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등을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협연한다. 클리저는 “찾아 보면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호른 작품이 놀라울 정도로 많고 그 작품들을 널리 알리고 싶다”며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는 첼로를 위한 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호른을 위해 작곡됐다. 베토벤 소나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2015년 금호아트홀 연세 개관 음악제와 2018년 제주국제관악제 무대에 섰던 그는 “한국 관객들은 친절하고 열정이 넘쳤다”면서 “관객이 행복해야 저도 행복하다. 연주회에 오는 분들이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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