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금리차 100bp로 확대…한은, 연속 ‘빅스텝’ 밟을까
한은, 금리 25bp 인상시 금리격차 최대 150bp로 확대
고물가·고환율 대응 필요성도 여전
레고랜드發 자금시장 경색은 25bp 인상 요인
“금리 인상 속도보다 최종금리 수준(how high)과 언제까지 올릴지(how long)가 더 중요하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4회 연속 기준금리를 0.75%포인트(p) 인상하면서 한국과 미국간 금리 격차가 최대 100bp(1bp=0.01%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조절을 시사하면서도 내년까지 최종금리를 5% 수준까지 점진적으로 올릴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향후 한·미 금리 격차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한·미 기준금리 역전폭을 최소화하고, 치솟는 물가와 환율에 대응하기 위해 이달 24일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미 금리 역전 허용 범위로 100~120bp를 제시했다.
다만 한국은행이 10월에 이어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한 번에 50bp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할지 여부를 두고 시장 의견은 갈리고 있다. 연준의 고강도 긴축 행보와 여전히 5%로 높은 물가상승률, 1400원을 웃도는 원·달러 환율 등을 고려하면 빅스텝이 유력하지만, 레고랜드발(發) 자금시장 불안과 경기 둔화 우려를 감안하면 25bp 인상이 적절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 연준, 4회 연속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초강수’
연준은 2일(현지시각) 열린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75bp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준금리는 기존 3.0~3.75%에서 3.75~4.0%로 높아졌다. 이는 2008년 1월 이후 약 15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연준은 이날 회의 직후 낸 정책결정문에서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인플레이션을 2%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큰 폭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향후 금리 인상 속도를 결정할 때 통화정책의 누적 긴축 효과와 경제와 물가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겠다”는 문구를 추가해 금리 인상 속도조절을 시사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 내용은 정책결정문보다 훨씬 매파(hawkish·통화긴축 선호)적이었다. 그는 “금리인상 중단을 논의하기엔 이르다”라고 말해 시장의 피벗(pivot·통화정책 방향 전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파월 의장은 “아직 갈 길이 남아있고, 최종금리 수준은 예상보다 높아질 것”이라면서 점진적인 금리 인상 기조가 내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앞서 연준은 9월 점도표를 통해 내년 미국의 최종금리를 4.6%로 제시했는데, 시장에서는 파월 의장의 이번 발언을 토대로 미국의 최종금리가 5% 초반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파월 의장은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시기가 다가오고 있고, 이르면 다음 회의가 될 수 있다”며 당장 12월부터 금리 인상폭을 50bp로 낮출 가능성도 시사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FOMC 회의 결과를 두고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는 느려지겠지만, 금리 인상 기간은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고 해석했다. 연준이 12월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50bp 인상한 뒤 내년 초까지 50bp, 또는 25bp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 한은, 금리 25bp만 올리면 한·미 금리 격차 최대 150bp로 확대
미국의 정책금리 상단(4.0%)이 우리나라 기준금리(연 3.0%)보다 100bp 높아지면서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더 벌어졌다. 두 나라의 금리 역전폭이 100bp까지 확대된 것은 앞서 한·미 금리 역전기(2018년 3월~2020년 2월) 이후 3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한국은행은 과거 한·미 금리 역전기에 외국인 자금 유입이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당장 외국인 자금 유출 가능성이 낮다는 입장이지만, 금리 역전폭이 100bp 이상으로 커지는 상황은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창용 총재는 한·미 정책금리 역전폭 허용 범위를 묻는 질문에 100bp 안팎이라고 답한 바 있다.
그는 “한·미 금리격차가 주요 정책목표는 아니지만, 한·미 금리차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한·미 금리 격차가 과도하게 확대되면 원화 가치가 추가 하락해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한국은행이 한·미 기준금리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한국은행이 이달 25bp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고 연준이 12월에 금리를 50bp 올리면 연말까지 한·미 금리 격차는 125bp로 더 벌어질 수 있다. 연준이 75bp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금리 격차는 150bp로 더 커지게 된다.
시장에서는 우리나라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7%로 전월 대비 오름폭이 확대된 가운데 원·달러 환율은 1420원대의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고, 한·미 금리 역전폭이 더 벌어질 수 있다는 부담까지 더해졌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10월에 이어 11월까지 연속으로 금리를 50bp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10월부터 물가는 물론 환율 흐름이 통화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금리 결정에 보조를 맞추는 게 중요해졌다”며 “연준이 다음달 ‘빅스텝’으로 전환하더라도 최종금리 수준을 높이겠다고 시사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3.5%로 인상할 요인이 커졌다”고 말했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향후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폭이 축소되더라도 통화긴축이 중단되거나, 정책 방향이 빠르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며 “한국은행이 11월에 기준금리를 50bp 인상할 것이란 기존 입장을 유지한다”고 했다.
◇ “경기 둔화 고려해야” 의견도…자금시장 경색도 금리인상폭 제한 요인
물가와 환율, 한·미 기준금리 격차만 보면 11월에도 기준금리 50bp 인상이 적절하지만, 한국은행이 채권시장과 경기 흐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25bp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국내외 경기 침체 경고음이 커지면서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다수 금통위원들은 환율과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소수의견을 낸 위원 2명은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진 점을 들어 금리 인상 속도조절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리인상폭을 두고 위원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 반면, 경기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비슷했다. 금통위원 모두 수출 부진과 민간소비 회복세 약화로 연말로 갈수록 경제 성장이 둔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 경색 우려가 커진 부분도 큰 폭의 금리인상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가뜩이나 회사채 시장이 냉각되어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50bp 인상할 경우 유동성이 또 다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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