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망가진 보건복지는 점령과 무능의 결과
(지디넷코리아=김양균 기자)[동예루살렘(팔레스타인 서안지구)=김양균 기자] 지난달 6일~16일(현지시각) 사단법인 아디와 현지 시민사회단체 탄위르(Tanweer)의 협조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Nablus)의 여러 마을을 비롯해 헤브론(Hebron) 남부, 라말라(Ramallah), 동예루살렘(East Jerusalem) 등지를 방문해 보건의료 및 복지(주거·소득) 실상을 취재했다.
<2022 팔레스타인 보건인권 리포트> 연속보도에는 그간 국내 언론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보건복지 관련한 여성들, 의료 전문가, 인권 활동가 등의 여러 증언이 담겨있다.
아울러 현지 취재를 통해 서안지구의 정신건강 문제, 일차의료 및 의료전달체계의 취약성, 국가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 보장되지 않은 주거 복지, 이동 제한에 따른 의료접근 및 생존권 위협 등 이스라엘의 점령 폭력(Occupation-Related Violence)에 기인한 현지의 열악한 보건복지 실상을 담았다. 이와 함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정책 실패 및 무능은 보통의 팔레스타인인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2022 팔레스타인 보건인권 리포트>의 마지막편에서는 나블루스 인근 부린마을(Burin village) 주민 갓산 나자르(32)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증언은 서안지구 내 팔레스타인인의 삶이 어떤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는다
2022년 10월 13일 오전 11시(현지시각). 부린마을 내 갓산 나자르 자택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자는 갓산과 구면이었다. 그는 삼년 전 기자에게 정착촌 피해를 증언했지만,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은 것 같았다. 갓산은 이스라엘 저항 활동으로 여러 번 투옥된 적이 있어서 자신을 ‘트러블 메이커’라고 소개하며 웃었다.
-부린마을에 있는 일차의료기관에는 환자가 얼마나 찾아오나.
“하루에 노인·여성·신생아 등 20~30명이 클리닉을 찾는다. 그곳에는 1명의 의사와 2명의 간호사가 있는데, 의사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한다.”
-최근 수감되었다고 들었다.
“지난 2020년 6월부터 작년 말까지 감옥에 갇혀 있었다. 난 인근 유대정착촌(Israeli settlement)의 정착민들이 우리의 올리브 나무를 훼손하는 영상을 갖고 있었다. 이스라엘 비밀경찰이 들이닥쳐 영상을 찾으려고 내 집을 부순 일도 있었다. 지금까지 13번 수감돼 10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만약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난 22살이겠지(현재 그의 나이는 32살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상황이 많이 악화됐나.
“3년 동안 모든 게 나빠졌다. 부린마을은 완전히 봉쇄돼 있었다. 일하기 위해 인근의 나블루스로 갈 수도 없었다. 물 공급에도 문제가 생겼다. 일주일에 겨우 두 번만 물을 들여올 수 있었다. 3년 동안 돈을 벌수도, 저축도 불가능했다. 친구의 어머니와 동생도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우린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유대정착촌의 공격은 끊이질 않았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사정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부린마을은 2곳의 유대정착촌(Israeli settlement)과 1곳의 아웃포스트(Outpost, 전초기지)로 둘러싸여 상시적 공격 위협에 놓여 있다.
-물 공급이 너무 부족하다.
“우물로 물을 얻거나 외부에서 사온 물통에 넣어 보관하고 있는데, 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정착민의 공격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는가.
“일부 학생들은 공격을 받아 다치고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정착민은 노인, 여성, 아이 모두를 공격했다.”
-아이들에 대한 공격은 어떻게 자행됐나.
“부린마을에는 3개의 학교가 있는데 하나는 정착민의 공격으로 작년 10월 폐쇄됐다. 학교는 매일 공격에 노출돼 있다. 우린 돌을 던졌고, 이스라엘군인들은 학교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들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길 원한다.”
-정신건강의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데.
“학생들은 우울과 분노 등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다. 밤에 공격이 많다보니 잠을 못자고 정신적인 압박을 받아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일도 많다. 그렇다고 치료도 쉽지 않다. 검문소(Checkpoint) 때문에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다.”
-한 달 수입은 얼마인가.
“2000~3000세켈(약 81만원~122만원)을 버는 데 이 돈으로 6명의 가족이 먹고 산다.”
-그럼에도 당신은 잘 웃는다. 항상 웃고 있다.
“우리 상황에서 결코 웃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웃음은 가장 강한 저항이다. 2020년부터 그린하우스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 점령 하의 삶에서 여성의 경제자립은 중요하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그린하우스(비닐하우스)를 만들어 토마토 등을 재배해 판다. 그러는 동안 코로나19가 발생했고, 난 수감됐지만 프로젝트는 계속됐다. 우린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한다.”
갓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상당수 팔레스타인인의 열악한 삶은 이스라엘 점령의 영향이 크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차원의 개선 의지가 강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준정부기구인 팔레스타인고용펀드(Palestine Employment Fund, PEF)의 칼리드 알리 나세프(52)는 서안지구의 보건복지 상황에 대해 “팔레스타인인 상당수가 현저한 의료 접근권의 문제를 겪고 있다”며 “보건의료의 취약성은 이스라엘의 제한과 더불어 PA 내부 상황에 기인한 측면도 크다”고 설명했다.
칼리드는 “PA는 보건의료 및 복지 등 취약한 분야를 더 신경쓰고 정책을 수립해야 했음에도 공공성을 시장에 맡겨버렸고, 제대로 된 정책은 없었다”며 “공공정책이 부재했으며 기업 활동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식 모델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
특히 칼리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헬스케어 분야를 포함해 미국식 시장우선주의가 팔레스타인에서 가속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육·보건의료·경제 등 팔레스타인 각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던 기업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무상으로 지원하던 서비스들을 팬데믹 이후 중단해 버렸다”며 “팬데믹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사회는 소비지향적인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비판적 관점 하의 문제 해결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상황에서 독점적 지위를 보유한 민간의 플레이어가 새로운 통제자로 대두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 올리브 나무와 시온문
팔레스타인에서는 10월부터 11월까지 올리브 수확이 이뤄진다. 올리브를 수확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무 아래에 비닐이나 천을 깔고서 열매를 따 모은 후 포대에 담으면 된다. 오롯이 사람의 손으로만 가능한 노동이다. 이렇게 수확한 올리브는 세척 후 착즙되는데, 갓 뽑아낸 올리브기름은 풋내가 나면서 약간 매콤하다.
올리브 수확은 팔레스타인인에게 중요한 수입원이다. 올리브 나무 한그루가 제법 열매를 맺으려면 최소 5년이 걸린다.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생산하는 올리브의 양은 대략 5킬로그램 가량이다. 올리브 1킬로그램에 1000셰켈(약 40만원) 가량이니 올리브 나무 한 그루에서 200만원의 수입이 생기는 셈이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올리브 수확철마다 걱정이 많다. 그때마다 인근 이스라엘 정착촌(settlement)의 정착민들이 올리브 나무를 불태우거나 농부들을 공격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방어할 수도 어렵다. 정착민 뒤에는 이스라엘군이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무장한 채 서 있기 때문이다. 군의 사실상의 비호로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꼼짝없이 제자리에서 피땀이 서린 올리브 나무가 불타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올리브 수확철이 되면 전 세계 국제인권활동가들과 언론인들이 팔레스타인 농부들과 함께 수확을 돕는다. 이는 단순한 농촌체험이라기보다는 공격을 막아내는 연대 활동으로써의 의미가 더 짙다. 기자도 지난 10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 인근 아씨라 알 카불리야(Aseera al-Qabliya) 지역에서 영국과 우리나라 등에서 온 국제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일손을 거들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을 흘리며 올리브를 따고 있으려니 함께 간 팔레스타인인은 불을 피워 커피와 차를 끓여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며 농땡이를 부리고 있었다. 젊은 친구들은 ‘셀카’에 바쁘고 나이 지긋한 현지인들은 올리브를 담아두기 위해 가져다 놓은 양동이를 두드리며 놀았다. 흥이 나 춤을 추는 이까지 있었는데, 일만 하고 있던 기자는 내심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들은 “사우스 코리아 컴온”이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함께 놀자고 손짓했다.
앞서 갓산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웃음이 저항이라고 했다. 올리브 수확을 하며 만난 이들이 부르던 노래와 춤도 저항의 메시지가 담긴 것이었다. 그것을 몰랐던 기자는 땀만 한 바가지를 흘렸다.
15일(현지시각) 예루살렘의 시온문(Zion gate)을 방문했다. 시온산(Zion Mountain)으로 이어지는 작은 돌문에 불과한 시온문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오니즘(Zionism)의 태동을 상징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뜻 깊은 장소다. 그렇지만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정반대의 감정을 주는 곳일 터다.
작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과 죽음, 팔레스타인 인도주의 재앙의 씨앗이 된 시오니즘의 오래된 상징물 앞에서 긴 취재는 끝이 났다.
*<2022 팔레스타인 보건인권 리포트>는 기자가 삼년 넘게 이어온 분쟁보도의 첫 장을 마무리하는 결과물이다. 보건의료의 시선으로 팔레스타인 분쟁의 피해를 조명한다는 목표가 연재에 얼마나 녹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흥미로웠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김양균 기자(angel@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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