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서 있다보니 다리가 퉁퉁”···시민들이 만들고 지키는 이태원역 앞 추모공간[현장]

이홍근·권정혁·최서은 기자 2022. 11. 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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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직접 국화꽃 사다가 헌화객들에게 배포
기자 자원봉사 해보니 시민들 질서정연하게 추모
추모공간 처음 만든 여행가 끝까지 실명 안 밝혀
자원봉사자가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공간을 정리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다음날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은 휑했다. 음악과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골목은 29일 오후 10시부터 비명과 울음으로 채워졌다. 30일 새벽까지 이어진 시신 수습 때는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골목을 채웠다. 유족들이 실종된 가족을 애타게 찾던 그날 오후 12시. 여행가 A씨(60)는 경북 영양군에서 첫차를 타고 상경해 골목과 인접한 지하철역 출구 앞에 꽃 한송이를 놨다. 추모객들은 A씨가 둔 꽃 옆에 술과 음식을 올렸다. 이렇게 이곳은 시민들의 추모공간이 됐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공간은 시민들이 만들고 직접 관리하는 공간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용산구 녹사평역이나 중구 시청광장 합동분향소와 다르다. A씨를 비롯해 자원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주변 정리를 하고 있다. 추모객들이 몰릴 때는 줄을 세워 질서도 유지한다. 새벽 시간 노숙인들이 추모공간에 놓인 술과 음식, 담배를 가져가며 어지르면 수습하는 일도 봉사자들 몫이다.

A씨는 30일부터 매일 오전 5시쯤 이곳에 나와 오후 11시쯤 집에 들아간다. 하루종일 서있다 보니 다리가 퉁퉁 부어 함께 추모공간을 지킬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다고 한다. A씨는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1번 출구 앞에 걸어뒀다. 기자는 지난 2일 오후 6시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A씨를 도와 봉사했다.

2일 오전6시 A씨가 찍은 이태원역 1번출구 추모공간 사진. 담배와 술 등이 어질러져있다. A씨 제공

기자는 오후 6시12분 ‘추모공간 (정리)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했다. 수화음이 채 3번도 울리기 전에 A씨가 전화를 받았다. “추모공간 유지를 돕고 싶다”고 하자 “고맙다”고 했다. 그는 “3일간 서있느라 다리가 하도 부어서 잠시 쉬고 있는데 오후 7시부터 합류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각자 정해 준 역할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고 다른 봉사자들과 자발적으로 (역할을 분담헤서) 하면 된다”고 했다.

현장에는 이미 4명의 자원봉사자가 있었다. 논현동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서준씨(35)는 ‘자원봉사자’라고 적힌 목걸이를 걸고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국화꽃을 손질해 헌화객들에게 나눠줬다. “차마 꽃을 팔 수가 없었다”는 김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꽃집에서 국화를 상자째로 공수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준비한 국화꽃이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동이 났다. 이내 김씨는 국화꽃 100송이가 든 상자를 새로 가져왔다.

참사 당일이 생일이라는 플로리스트 최민지씨(38)도 꽃을 내놨다. 일반 추모객들이 국화를 쉽게 구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직접 꽃 시장에서 국화를 떼어왔다. 최씨는 “생일에 그런 일이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보다 마음이 더 이상했던 것 같다”며 “많은 희생자들이 있었고, 속상해하실 부모님들의 마음을 생각해 봉사하게 됐다”고 했다.

한 시민이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공간에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추모객들을 상대로 질서유지를 했다. 20대 청년 B씨는 “오후 4시부터 나와 조문하러 온 시민들을 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추모객에게는 유창한 영어로 추모 순서를 안내했고, 한국인 추모객에게는 친절한 말투로 질서를 지켜달라고 했다.

기자도 B씨와 함께 추모객들이 줄을 잘 설 수 있도록 도왔다. 기자는 추모공간 왼쪽에, A씨는 오른쪽에 서서 시민들이 2명씩 줄지어 추모의 시간을 갖도록 안내했다. 경찰은 시민들이 통행에 불편이 없도록 돕는 최소한의 역할만 했다. 기자가 도로변에 서 있는 경찰관에게 질서 유지를 도와달라 하자 경찰은 “(추모공간은)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곳 아니냐”며 거절했다.

시민이 만들어 관리하는 공간이지만 무질서는 없었다. 자원봉사자들의 지휘에 맞춰 시민들이 줄을 섰고, 차례가 오면 조용히 추모를 하고 빠져나갔다. 금발의 백인 남성은 헌화 후 큰 절을 올렸다. ‘과잠(대학 학과 점퍼)’을 입은 외국인 유학생은 수북히 쌓인 국화꽃 앞에 친구의 사진을 놓고 한참 오열했다. 헌화 후에는 캔 음료를 따서 두고 가는 시민, 소주를 따르고 가는 시민, 건어물이나 캔 과일, 과자 안주를 두고 가는 시민도 있었다. 시민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인들을 애도했다.

현장을 지켜보던 한 시민은 “지금 같은 때에는 더더욱 이런 걸(질서) 잘 지켜서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오후 8시 퇴근길에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한때 질서가 흐트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봉사자와 시민들이 합심해 이내 질서정연한 추모가 이뤄졌다. A씨는 “처음에 그냥 꽃을 놨을 뿐인데 추모공간이 됐다. 추모 분위기에 괜한 주목을 받고 싶지 않다”며 끝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권정혁 기자 kjh0516@kyunghyang.com,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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