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사, 연내 상장 '막차 러쉬'…대어급 IPO는 내년 첫차 예약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미국 금리 인상 기조와 경기 침체 우려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다. 하지만 침체기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연내 상장을 목표로 한 중소형 IPO 기업의 발길은 꾸준히 몰려들고 있다. 계절적인 'IPO 성수기'일 뿐 아니라 연간 IPO 주관 실적 집계를 앞둔 주관사들의 입장 때문이라는 평가다.
반면 조(兆) 단위 기업가치를 노리는 대형 IPO 기업들은 대거 내년 1~2월에 연달아 공모에 착수할 전망이다. 연말 북 클로징(회계장부 마감)을 피해 '연초 효과'를 노리겠다는 계획이다. 다수의 기업이 연초에 등판하면서 서로 일정을 피하려는 눈치 싸움도 벌어질 전망이다.
◆11월 IPO 일반청약 13곳, '침체기' 무색
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1월 한 달간 13개 기업(스팩 제외)이 일반청약을 진행한다. 한국거래소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하고 아직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기업 3곳과 스팩합병 방식으로 상장하는 7개 기업 등을 포함하면 연말까지 최소 20개가 넘는 기업이 증시 새내기로 등장할 전망이다. 제이오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시가총액 1000억원 안팎의 기업들이 대다수다.
국내 주식 시장이 역대급 활황기를 맞이했던 2020년과 2022년 초까지 국내 공모주 시장의 분위기는 대형 IPO 기업이 좌우했다. 단군 이래 최대 공모액을 모집한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해 크래프톤, 카카오뱅크, SK아이이테크놀로지, 카카오페이, SK바이오사이언스, 현대중공업 등 조 단위 IPO 기업이 연이어 상장했다. 중소형 IPO 기업들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넉넉한 투자 수요를 모으며 성공적으로 증시에 입성했다.
하지만 올해 4월 말부터 SK쉴더스와 원스토어, CJ올리브영, 현대오일뱅크 등이 차례대로 상장을 철회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침체한 시장을 반등시킬 것이란 기대를 받았던 WCP와 쏘카 등도 모두 흥행에 실패한 뒤 몸값을 크게 낮춰 증시에 입성하는 데 그쳤다.
4분기 공모주 시장이 더욱 침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이유다. 하지만 중소형 IPO 기업이 이런 우려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공모주 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지만, 올해 말보다 내년 초가 더 나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판단이 나온다. 이들 기업의 공모액은 수 백억원대로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시장 상황에 크게 좌지우지되지 않는 편이다.
중소형 IPO 기업이 쏟아져나오는 이유를 계절적 성수기가 아니라 공모주 시장의 침체에 따른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연간 주관 실적 집계 시즌이 다가오면서 증권사 입장에서는 대형 IPO 기업이 사라진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체재가 필요했다"며 "중소형 IPO 기업의 경우 주관사의 입김이 강하기 때문에 주관사의 의중도 크게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시장이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자 주관사가 대거 상장 예비 심사를 신청한 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상장 일정에 착수하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중소형 IPO 기업의 경우 안정적인 실적을 거두는 기업보다는 적자 기업인 사례가 대다수다. 이들은 대기업처럼 모회사가 없는 만큼 자금을 조달해야 할 필요성도 크다. 이에 당장의 기업가치를 낮추더라도 공모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만큼 '울며 겨자 먹기'로 연내 상장에 나서는 모습이다.
◆2023년 연초 대어급 IPO 경쟁 예고
반면 대형 IPO 기업은 일찌감치 연내 상장 목표를 접었다. 컬리와 골프존카운티는 8월 22일에, 케이뱅크는 9월 20일에 각각 거래소로부터 심사 승인을 받았다. 이들은 시장 상황을 이유로 내년 초로 공모 시기를 미룰 예정이다.
컬리와 골프존카운티가 각각 받은 한국거래소 상장 예비 심사 효력은 내년 2월 말까지며 케이뱅크는 내년 3월까지다. 다만 해외 기관투자가의 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35일룰'에 따라 2월 중순까지는 납입 절차를 마쳐야한다. '135일룰'이란 해외 투자 설명서에 포함되는 재무제표를 작성한 시점으로부터 135일 이내에 청약대금 납입 등 상장 일정을 마쳐야 한다는 규정이다.
대부분 기업의 회계 결산이 12월을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1~2월은 통상적으로 IPO 비수기로 꼽힌다. 하지만 대형 IPO 기업의 등판이 예고되면서 2023년 공모주 시장의 향방을 가늠할 시기가 될 전망이다.
이들뿐 아니라 조 단위 기업가치를 노리는 다른 대형 IPO 기업들의 상장 일정도 밀리면서 내년 초에 대형 IPO 기업 간 맞대결이 펼쳐질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올해 라이온하트스튜디오와 바이오노트 등은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연내 상장을 위한 공모 절차에 착수했다. 하지만 각자의 이유로 결국 일정을 미뤘다.
최대 4조5000억원의 몸값을 제시했던 라이온하트스튜디오는 10월 증권신고서를 철회한 뒤 상장 전략을 재점검하고 있다. 시장 상황은 물론 모회사인 카카오게임즈와 라이온하트스튜디오 주요 주주 간 체결된 계약 사항 등을 감안해 추후 상장 일정과 기업가치에 대한 조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상장 작업에 착수한 대형 IPO 기업들이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자 대기 중이던 기업들 역시 줄줄이 관망세로 돌아섰다. 당초 10월 내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것으로 예상됐던 LG CNS와 IGA네트웍스, 파듀 등은 이르면 연말이나 내년 초에 상장 예비 심사를 청구하는 쪽으로 내부 논의를 마쳤다.
필요한 자금을 자체 영업활동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만큼 무리하게 상장 일정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 기업의 재무적투자자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풀릴 기미가 없는 데다 당장 현금흐름에 문제가 없는 만큼 굳이 무리하게 상장 일정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며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시장이 안정화됐을 때 공모에 나서는 쪽으로 회사 및 주주 간 합의가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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