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전문가 “우르르 몰린 게 아냐···이태원 참사, 관리 부재 인한 군중 압착”
“과밀화, 관리되지 않은 군중, 넓은 길에서 인파가 밀려드는 좁은 길은 참사의 재료다. 셋이 합쳐지면 큰 위험으로 이어질 게 뻔하기 때문에 운에 맡겨둬선 안 된다.”
영국 런던 그리니치대학 ‘소방안전공학그룹(FSEG)’의 창립이사인 에드윈 갈레아 교수는 지난 10월 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태원 핼러윈 참사’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호주 멜버른 출신인 갈레아 교수는 1986년부터 인간행동, 대피, 화재역학 및 시뮬레이션 분야를 연구해온 학자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군중 압착(crowd crush)도 그가 꾸준히 천착해온 연구 주제다.
갈레아 교수는 그간 ‘우르르 몰림(stampede)’과 ‘군중 압착’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우르르 몰림은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표현이기 때문에 군중 압착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또 군중 압착은 항상 참사 예방을 위한 정부의 관리 문제와 맞물리기 때문에 “정치적 문제”라고 강조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11월 1일 갈레아 교수와 원격 영상 인터뷰를 했다. 군중 압착의 위험성, 참사 예방을 위한 방안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에 앞서 그가 이태원 참사 정보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기초자료를 제공했다.
‘몰림’은 피해자에 책임 떠넘기는 표현
군중 압착은 관리 필수…‘정치적 문제’
과밀·관리 부재·좁은 길 ‘참사의 재료’
-우르르 몰림과 군중 압착의 차이는 무엇인가.
“두 개념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 당국이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우르르 몰림이라는 단어를 쓴다. 우르르 몰림이라고 하면 성급하며 이성이 없는 동물을 떠올리게 된다. 다시 말해 우르르 몰리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공포로 허둥지둥하면서 타인이 다치는 걸 신경쓰지 않으며 비이성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여러 유형의 사고를 살펴보면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지진 않는다. 99%는 우르르 몰림이 아니라 군중 압착이다. 행사와 군중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 당국은 ‘군중이 비이성적이었는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항변한다. 정부와 언론의 이런 언급을 접하면 내 마음속엔 비상벨이 울린다. 실제로는 당국이 큰 실수를 저질러 수많은 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중 압착은 군중 밀집도를 관리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좁은 공간에선 1㎡(제곱미터)당 4명이 모이면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다. 6명이 모이면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음악 콘서트, 축구장과 같이 사람들이 제자리에 서서 이벤트를 보는 상황과 다르다. 사고 당시 이태원 영상, 사진 등을 보니 6명을 초과했더라. 끔찍한 상황이었다.”
-이태원 참사 당시 일방통행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양방통행이라 좁은 길 양쪽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독일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2010년 7월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열린 ‘러브 퍼레이드’ 음악 축제였다. 100만명 가까운 사람이 참여했다. 당국의 어리석은 계획이 참사로 이어졌다. 당시 한개의 주요 통로가 있었다. 이 통로는 입구뿐 아니라 출구 역할을 했다. 나가려는 사람과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엉키면서 통제가 안 됐다. 경찰이 군중 관리에 문제가 발생하자 해결하려 했지만, 되레 이 개입이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군중 관리시스템을 잘 아는 경찰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경찰 인력 배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참사를 예방하려면 잘 짜인 행사 계획과 군중의 흐름 관리가 중요하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군중 관리 방법을 잘 알고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경찰 인력이 필요하다. 1989년 영국 힐즈버러 축구경기장 참사도 경찰의 관여로 상황이 더 악화됐다. 경찰이 군중 관리가 아니라 소요 사태 대응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놓고선 훌리건(극렬 축구팬)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이 경사로여서 더 위험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4월 이스라엘 종교 축제에서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 행사 뒤 많은 사람이 동시에 출구로 나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좁은 비탈길이었다. 일부 사람들이 미끄러지거나 걸려서 넘어졌다. 그 도로가 수리 중이어서 표면이 금속으로 돼 있었던 탓에 더 미끄러운 상황이 됐다. 고밀도이기 때문에 뒤에 있는 사람들은 앞에서 누군가가 미끄러졌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군중 압착 연구자로서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하고 어떤 생각을 했나.
“우선 코로나19 팬데믹 규제 이후 열린 핼러윈 축제였기 때문에 수많은 청년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당국이 사전에 준비를 제대로 해야 했다. 두 번째로 112, 119 등으로 신고전화가 오면 군중 관리 훈련을 받은 경찰을 위험한 지역에 빨리 배치했어야 한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였다 해도 구름인파가 예상되는 만큼 당국이 더 경각심을 가져야 했다. 수많은 인파, 양방통행, 대로와 연결된 좁은 골목, 경사로 등은 참사의 재료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참사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의 수를 제한하는 일이다. 적어도 골목에서 일방통행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군중 압착 예방은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 공학이 필요한 게 아니다. 상식적인 일이다. 전 세계에서 이런 참사들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가 확인하는 건 안타깝게도 계획, 관리의 부실이다.”
-군중 압착으로 인한 참사를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고 볼 수 있나.
“경찰이 관여하기 때문에 항상 정치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결국 관리가 중요하다. 군중이 좁은 공간에 밀집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에 더 많은 관리 인력을 배치하고 위험 신고에 더 빨리 반응해야 한다. 또 일방통행을 유도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에는 항상 정치적 요소가 있다. 이번 참사의 핵심 이유가 정치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당국이 조기에 위험 완화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그 좁은 골목길을 잘 관리했다면 아무도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영국 힐즈버러 참사의 경우 참사의 책임이 경찰에게 있다는 점을 확인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발생한 일을 인정하지 않고 정부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만 하면 참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없다. 참사 재발을 막을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한국 경찰은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군중을 밀쳤다는 의혹을 받는 남성을 조사하고 있다.
“난센스다. 희생양을 찾으려는 시도다. 이 참사는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 당초 노출된 온라인 기사에선 'crowd crush'를 '군중 충돌'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군중 압착'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해 '군중 충돌'을 '군중 압착'으로 3일 오후 8시45분에 수정했습니다.
김지환·최미랑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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