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큰 종양 마다가스카르 청년, 한국서 새 삶 찾았다
입안에 생긴 15cm 이상의 거대종양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렵고 ‘징그러운 혹이 달린 아이’라며 동네에서 따돌림까지 받던 마다가스카르의 한 청년이 한국 의료진에게 수술을 받고 상태가 크게 호전됐다.
서울아산병원은 최종우 성형외과 교수팀이 마다가스카르에서 온 20대 청년 '플란지'의 거대세포육아종을 제거하고 아래턱 재건 및 입술 주변 연조직 성형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3일 밝혔다. 거대세포육아종은 주로 턱 부위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악성 종양이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대륙 남동쪽에 위치한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나라다.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오지에는 전기조차 통하지 않고 전 세계적인 팬데믹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에 대해 생소할 만큼 외부와 단절됐다.
플란지는 8살 때 어금니 쪽에 통증이 있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치아를 뽑았다. 이때 어금니 쪽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주변에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채 10여 년간 방치했다.
작은 크기였던 염증은 거대세포육아종으로 진행되며 점차 커졌다. 거대세포육아종은 100만 명당 한 명에게 발병한다고 알려진 만큼 희귀한 질환이다. 초기엔 약물로도 쉽게 치료할 수 있지만 플란지의 경우 오랜 기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종양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거대해졌다.
얼굴 크기만 한 종양이 입안에 생겨 플란지는 음식을 먹는 것은 물론 대화하는 것도 점차 힘들어졌다. 종양을 만지거나 잘못 부딪히면 출혈이 자주 발생해 일상생활이 점점 어려워졌다. 친구들은 겉으로도 드러나는 거대한 종양 때문에 플란지를 ‘징그러운 혹이 달린 아이’, ‘귀신 들린 아이’라며 따돌리기 시작했다. 플란지는 다니던 학교까지 중퇴했다.
그렇게 10여 년간 종양을 방치하던 중 마다가스카르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는 이재훈 의사가 2021년 초 우연히 플란지를 발견했다. 이 의사는 플란지의 거대한 종양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치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수술이 가능한 한국의 의료기관을 수소문하던 중 서울아산병원이 이에 흔쾌히 응했다. 이재훈 의사는 2018년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선정한 아산상 의료봉사상 수상자로 서울아산병원과 인연이 있다.
출생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던 플란지는 한국을 가기 위해 약 1년간의 입국 절차를 준비했고 8월 31일 약 20시간의 비행을 거쳐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9월 16일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팀은 치과, 이비인후과 의료진과 협진해 8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진행했다. 15cm 이상의 크기에 810g에 달하는 플란지의 거대육아세포종을 제거하고 종양으로 제 기능을 못하던 아래턱을 종아리뼈를 이용해 재건한 뒤 종양 때문에 늘어나 있던 입과 입술을 정상적인 크기로 교정하는 수술을 실시했다.
플란지는 영양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아 장시간의 수술을 버틸 수 있을지 염려됐지만 이를 무사히 이겨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플란지는 오는 5일 귀국을 앞두고 있다. 치료비용 전액은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서울아산병원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플란지는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고 포기한 내 얼굴을 평범하게 만들어주시고,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신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에게 너무 감사드린다”며 “원래는 평생 혹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좌절감뿐이었는데 수술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 꿈이 생겼다. 선교사가 되어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수술을 집도한 최종우 교수는 “다년간의 안면기형 치료 경험으로 노하우를 쌓아왔지만 플란지의 경우 심각한 영양결핍 상태여서 전신마취를 잘 견딜지부터가 걱정이었고 종양 크기도 생각보다 거대해 염려가 컸다”며 “플란지가 잘 버텨주어 건강하게 퇴원하는 것을 보니 다행이며 앞으로는 자신감과 미소로 가득한 인생을 그려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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