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이] 원룸 탈출기가 이렇게 참신할 줄이야···영화 '옆집사람' (영상)
배우 오동민, 최희진, 이정현 주연
세태 꼬집는 알찬 블랙코미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관왕
영화 ‘옆집사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염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올여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2관왕에 오르기도 했던 이 영화는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극·독립영화를 시작으로 최근 TV 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알리고 있는 오동민이 큰 줄기를 담당하고 배우 최희진, 이정현이 함께했다. 향후 충무로를 이끌어갈 젊은 얼굴들과 신진 감독이 의기투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옆집사람'은 원서 접수비 만 원을 빌리려다 시체와 원룸에 갇힌 5년 차 경시생 찬우의 하루를 담았다. 원룸에서의 일대 소동은 감독의 경험과 ‘저예산’이라는 현실적 제약이 합쳐져 탄생했다. 감독이 아이디어 노트에 써둔 ‘일어나 보니 옆에 시체가 놓였다면’이라는 한 문장은 끝끝내 확장돼 하나의 영화로 펼쳐진다. 저예산이었지만 부피보다는 질량을 무기로 3일부터 극장가를 찾는다.
■ 눈 떠보니 시체 옆에서 깨어난 한 남자
올해로 경찰 공무원 시험 5수 째인 찬우(오동민)는 원서 접수비 만 원이 없어 함께 기상 스터디를 하는 형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을 한다. 자연스레 술자리로 이어지고. 한 잔 두 잔 들어가던 술에 인사불성이 됐던 다음날 눈을 떠보니 옆집, 404호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옆엔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시체 하나. 찬우는 혼비백산이 되고 자신이 죽였을지 몰라 신고조차 못한다.
찬우는 전날 밤의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만, 생각나는 건 평소 벽간 소음으로 그를 괴롭히던 404호를 찾아가 실랑이를 벌이는 자신의 모습이다. 설마 진짜 내가 죽였을까. 때마침 집주인은 찬우에게 전화를 걸어 404호 여자가 어젯밤에도 시끄러웠다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찬우는 창문으로 건너가 404호를 뒤지기 시작하고. 옆집 사람 현민(최희진)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간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현민이 집에 돌아온다. 현민은 놀라지도 않고 현장을 의연하게 정리해 의아함을 남긴다. 영화는 현민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국면으로 향하고 또 다른 반전으로 치닫는다. 현민의 정체는 무엇이고, 남자는 왜 죽어 있었을까.
■ 옆집의 사회적 의미 풀어낸 블랙코미디
영화의 배경은 원룸이다. 일상적이고 작은 공간인 원룸이 주는 느낌은 현대 사회의 세태를 꼬집기 충분해 보인다. 더 이상 옆집과의 화목한 소통은 찾아보기 힘든, 고독사 뉴스 따위가 심심찮게 들리는 오늘날 원룸과 옆집은 단절된 두 공간에 불과하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세태를 대변하는 영화의 결말은 쓴맛을 남긴다. 넉살 좋은 경시생의 마지막 선택 역시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어둡게만 풀지는 않는다. 각자도생,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 사회현상을 꼬집는 여타 스릴러 작품들과 차별화하는 지점이다. 찬우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앞세워 관객들을 웃기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찬우가 옆집을 탈출하려는 과정이나 대검찰청에서 걸려온 보이스 피싱이 그렇다. 찬우가 문제집 답안을 맞춰보거나 요리할 때 지어내는 즉흥 랩도 웃음을 더한다. 그 밖에도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즐비하다.
공간의 제약은 자칫 작품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 요소다. 찬우는 시체가 누워있는 옆집에서 탈출해 다섯 번째 경찰 시험에 반드시 접수해야만 하는 과업이 있다. 그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마치 납치극처럼 디지털시계 형식으로 스크린에 띄우며 긴박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백미는 반전에 있다. 인물들 사이 드러나는 비밀들이 뒤엉키며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돼 참신함을 이끌어낸다. 전날 밤을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궁금증을 주던 영화는 중후반에 접어들며 더한 반전을 선사한다.
배우들의 호연도 눈에 띈다. 오동민의 익살스러운 연기가 작품의 맛을 더하고 최희진, 이정현까지 세 배우가 펼치는 폭발적인 연기가 흡입력을 준다. 양면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적절한 줄타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극히 요즘 사람들의 물고 물리는 탈출기를 지켜보며 2022년의 관객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3일 개봉, 93분.
이지윤 인턴기자 leejy1811@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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