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가면 안 돼'는 절대 금물" 아이들에게 이태원 참사를 설명하는 법
②많은 사람들이 돕고, 극복할 수 있다 안심
③'피해자 탓' 비난하는 발언은 절대 삼가야
④묵념, 추모 편지, 분향소 조문 등 '애도' 도움
서울 양천구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김모(39)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 아이들의 질문을 마주하는 게 겁나기 시작했다. 참사 여파로 유치원과 학교에서 예정된 핼러윈 행사가 줄줄이 취소돼 잔뜩 실망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부터가 쉽지 않아서다. 김씨는 "아이들이 하루 종일 '왜'를 쏟아내는데 언제까지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카페에는 김씨와 비슷한 고민을 호소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150명이 넘는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국가적 대참사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얼마나, 어디까지 설명해줘야 할까. 소아정신과 전문의와 관련 학회가 건넨 조언을 정리해봤다.
전문가들은 일단 '모르쇠'가 능사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가정 안에서는 쉬쉬하면 넘어갈지 모르지만, 친구와 학교 등 여러 사회적 관계와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참사 소식을 접할 수 있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자극적이거나 잘못된 정보를 접할 경우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①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알려라
무엇보다 참사에 대해 충분히, 객관적으로 상황을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가령 '핼러윈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놀러 나왔고, 너무 많이 모이는 바람에 한꺼번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됐다' 정도 선에서 설명해주는 게 적당하다. 감정적인 설명으로 공포를 키우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에서 아동청소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은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지난 2일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아이에게 자칫 이야기를 했다가 트라우마가 될까 두려워하는 부모들이 많으신데, 살면서 이 같은 사회적 참사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때로는 아주 가까운 피해자가 될 때도 있다"며 "부모님이 너무 두려워하시면 부모님의 그런 두려움이 아이한테 전달이 된다"고 무작정 외면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②많은 사람들이 돕고 있고 극복할 수 있다고 안심시켜라
물론 참사 상황만 알리는 데 그쳐선 안 된다. 김 위원장은 "아이들한테 참사 상황을 알려주되, 그 일을 우리가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믿음을 갖고 아이들한테도 그 믿음을 전달해주는 게 훨씬 현명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가령 '소방관, 경찰, 그 밖의 현장에 있던 많은 시민들이 다친 사람을 구조했고 의사와 간호사가 다친 사람들을 보살피고 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알려주는 식이다. 참사 상황만 전달하고 그치면 아이들 입장에선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과 걱정이 커질 수 있다.
③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언급은 절대 금물
설명은 충분히 하되,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들도 있다.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발언들은 절대 금물이다. 김 위원장은 "부모들이 이번 기회에 아이를 교육해야겠다 싶은 마음에 '이렇게 멀리 놀러 가면 안 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안 된다. 세상이 위험하다는 공포를 심어주는 것과 별개로, 피해자분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훈육성 발언들은 '그 사람 많은데 왜 놀러갔느냐'며 피해자를 탓하는 2차 가해로 들릴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특히 "우리는 즐길 권리가 있고, 어디든 이동할 권리가 있고, 안전할 권리가 있다는 설명을 전제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적 해석을 담은 내용도 경계해야 한다. 가령 '하나님이 언니 오빠, 누나 형들을 사랑하셔서 데려간 거야'라는 식의 내용 역시 아이들에게 혼란을 안길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제해야 한다.
④묵념, 편지, 분향소 방문 등 애도 시간 가지면 도움
사회적 재난과 참사는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안길 수밖에 없다. 밤잠을 설치거나 우울감을 호소하는 등 전 국민이 강도는 다르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이럴수록 불안과 우울을 외면하지 말고 겉으로 드러내 얘기하며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별도의 '애도 의식'을 갖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집에서 가족끼리 시간을 정해 초를 켜고 묵념을 한다든지, 짧은 애도의 글을 써서 붙여 놓거나,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하며 희생자를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 조문받은 유족이 못 다 한 말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
- 손흥민, '안면 골절'로 수술 받는다...월드컵 빨간불
- 최성국 "24세 연하 예비신부, 6개월간 나이 모르고 만나"
- "통곡의 주인보다 더 시끄러운 X소리들" 유아인의 분노
- "제발 도와주세요" 이태원 참사 당시 울부짖던 경찰관
- 이영애, '딸 운구비 막막' 이태원 참사 유족 돕겠다는 약속 지켰다
- 울릉도 이장 "공습경보, 이태원 참사 추도 묵념 사이렌인 줄 알아"
- 北, 하루 미사일 도발 1년치 식량 날려… 주민들에겐 '쉬쉬'
- "장례식장은 처음..." 1020 조문객 줄 잇는 이태원 참사 빈소
- 커지는 정부 책임론...역대 대형사고 책임자 경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