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새 연출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암전만 50회↑…흐릿한 세계 반영"
기사내용 요약
국립극단·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동제작
"온라인 다크투어 구상…부조리극 재현"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산티아고 순례길의 반대 방향인 극동 시베리아 방향으로 끝없이 걸어가는 '그'.
정해진 순례길이 아닌 반대의 오호츠크해 방향으로 걷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위성을 통해 그의 행로를 지켜보게 된 오호츠크 해상 기후탐사선의 기후연구원 AA(에이에이)와 BB(비비)는 그가 걷는 이유를 추측하며 대화를 나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현실과 똑같이 짜인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 상에도 시베리아 순례길이 생겨난다. 그곳에도 실재하는 '그'와 같은 존재가 있다.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세계 속에 그가 북동쪽으로 계속해 걷는 이유가 드러난다.
국립극단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공동 제작한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2020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스토리공모전과 희곡개발사업을 통해 개발된 희곡이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을 받은 정진새가 작·연출을 맡았다. 그는 지난 2일 국립극단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온라인 여행'이라는 주제어로 희곡 위촉을 받았다. 당시 코로나19로 일상의 자유가 사라지며 여행을 상상해볼 수 없었던 시기였고, '온라인 다크투어'를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도와 역사 책을 펴놓고 장소를 물색했다. 사하라 사막, 히말라야산맥, 아우슈비츠, 남극대륙이 보였다. 아시아와 한반도는 지도 맨 구석에 있었고, 그 위에 오호츠크 바다와 땅끝 해협이 있었다. 그 지역이 극동 시베리아였다.
땅끝 해협을 건너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마가단'이라는 도시를 발견했다. 그곳에 이르는 길은 하나였고, '콜리마'라는 이름이었다. 유배된 정치범들이 강제 노역을 당했고, 죽은 이들이 그대로 묻혀 '뼈 위의 도로'로 불렸다.
정 연출은 "아시아 지역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으면 했다"며 "'콜리마 대로'라고 하는 시베리아의 대표적인 유형지(죄인이 유형살이를 하는 곳)를 알게 됐고, 그 공간을 지나는 순례자를 상상하게 됐다. 지도 서쪽엔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어 반대로 가는 설정을 더했다. 과연 구원과 신이 있는 것인가, 문명이 유효한가 질문을 얹었다. 기존의 인류가 가진 생각과 거꾸로 가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극 중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되묻는다. 실재의 기반이 무너지는 기후위기와 온라인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좌절과 허망의 분위기를 담은 작품은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부조리극(이치에 맞지 아니하는 극)을 재현한다. AA와 BB의 대화가 이어지는데, 서사나 흐름이 또렷하게 연결되진 않는다.
정 연출은 "언어나 상황이 따로 노는 부조리극을 쓰게 됐는데, 의도적으로 흩어놨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작품은 휴머니즘의 재확인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완성하고 싶지 않았다"며 "사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답은 인류가 이미 내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가 궁금한 건 그 이후의 질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이분법을 말하는 건 아니다. 코로나로 온라인이 무한 확장되는 세계를 경험했고, 실제로 뒤섞여 있는 현실을 연극적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며 "자취를 감추고 있는 부조리극을 남기는 목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점멸하는 세계를 반영해 수시로 암전도 이뤄진다. '세상이 깜빡거리는데 분명한 건 하나도 없다'는 대사가 이를 보여준다. 그는 "50회 이상 암전이 진행된다"며 "깜박임 효과를 위해 채택했다. 물론 흐름을 방해하고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흐릿하고 희미한, 깜박이는 세계를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해 과감하게 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지난달 20일부터 23일까지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먼저 선보였다. 엔딩은 서울 공연과 달랐다. 정 연출은 "광주에선 구조 헬기 소리가 들리는 것을 표현했다. 순례자가 소멸되지 않고 구조를 받는 희망적인 엔딩"이라며 "광주 시민들에게 헬기 소리가 의미하는 바가 있기에,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게 아닌 구하는 소리로 기억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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