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마녀사냥의 민낯…토끼 머리띠男 "코난 놀이 그만" 절규
이태원 참사 후 SNS서 마녀사냥·가짜뉴스↑
노모자이크 콘텐츠도 거를 시스템 필요해
뉴스는 그래도 모자이크라도 해서 나왔는데, 커뮤니티에서 아무런 필터링 없이 공유된 사건 영상이나 사진을 접한 후 충격이 계속 남아있어요. 사고 발생 관련에서 억측을 쏟아내고 특정인을 비방하는데 정말 저래도 되는 건가 싶습니다.
전 국민은 탐정 놀이 중?…가짜뉴스·마녀사냥 폭증
지난달 29일 밤 10시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면서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156명에 달해 세월호 참사 이후 최대 인명재해 사고가 됐다.
사건이 알려진 초반부터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렸다. "가스 유출이 있었다", "펜타닐 마약이 사고 원인이다" 등 주장이 제기됐다. 사고 직후 소방당국의 현장 브리핑 때 취재 기자들이 이런 신고가 접수됐는지를 질문할 정도였다. 아울러 사건 초기에 유명인 등장에 인파가 몰려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전해지면서 외국에 체류중이었던 유명 배우나, 인터넷방송국 아프리카TV의 BJ들이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들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후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이 고의로 앞사람을 밀어 사고를 일으켰다는 주장이 다수 제기됐다. 보다 선명하고 확대된 사진과 영상으로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 A씨 신상이 특정됐고 이들 무리가 주범이라는 식으로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이 남성은 스스로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고 당시 저는 이태원을 벗어난 후"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A씨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네티즌들에게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현재 경찰조사에서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토끼 머리띠를 한 여성도 현장에서 밀었다는 의혹이 제기하자 그 또한 조사할 예정이다. 아직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향후 사건이 인파에 따른 참사인지, 누군가 혹은 조직적으로 밀어서 발생한 참사인지 밝혀지는 데는 다소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일부 네티즌은 과거 일명 '엘리베이터 로우킥녀' 사건이나 홍대 여대생 택시 살인 사건에서 가해자를 특정해내고 지난 2015년에는 인터넷 중고 거래 사기꾼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 제보를 하며 네티즌 수사대라는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삽시간에 퍼진 유언비어가 사법적 판단이 이뤄지기도 전에 일반 시민을 '범죄자'로 낙인찍는 일도 적지 않다. 피의자를 잘못 특정하거나, 잘못된 추리를 통해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기는 일도 있었다.
허위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 훼손은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에 명시하고 있으며, 수사나 공무에 혼선을 줄 경우 내용에 따라 공무집행방해죄나 업무방해죄로 처벌될 수 있다. 그러나 공익과 표현의 자유와 대치돼 선이 불명확한 경우도 많고, 모든 게시글의 내용을 하나하나 모니터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사건을 계기 삼아 가짜뉴스 대응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여과 없는 자극적 사진·영상, 미리 거를 수 있어야
SNS에서 적나라하게 퍼진 사진과 동영상의 경우, 기업들의 사전 모니터링 강화를 통해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1일(현지 시각) 한국인들이 참사 후 온라인으로 전파된 끔찍한 장면들을 접하면서 공포감과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이태원 참사 관련 개인정보 침해 상황을 11월 한 달간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모자이크되지 않은 피해자의 얼굴 사진이나 동영상 등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삭제토록 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네이버·카카오·구글 및 유튜브·메타(페이스북 및 인스타그램)·트위터·틱톡 등 국내외 주요 플랫폼 사업자를 대상으로 사고 영상 등에 대한 자정 활동 강화를 요청했다. 경찰청은 사이버대책상황실을 편성·운영해 이번 참사와 관련한 온라인상의 악의적 비방과 자극적 게시물 등을 조사하면서 총 18건에 대해 입건 전 조사·수사를 진행하고, 2일 기준 212건에 대해선 삭제·차단을 방통위에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결국 요청이나 권고에 불과하고 사후적 조치라는 한계가 있다. 또한 국내에 지사를 둔 기업이 아니면 강제성이 더 없을 수밖에 없다. 향후 정치권에서 이러한 문제를 감안해 사후 대비책보다는 사전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충격을 받은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유진희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겸임교수는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콘텐츠, 가짜뉴스를 걸러내지 못할 경우, 최후 수단으로 '3진 아웃제'와 같이 서비스 제한 장치 등도 고려해볼 수 있다"면서 "다만 기업활동을 저해할 우려가 있고 표현의 자유와도 대치되는 부분인 만큼, 어느 선까지는 허용하고 아니고를 정할지를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람이 사후적으로 일일이 걸러내는 일이 어려운 만큼, 해당 분야에서 인공지능(AI) 도입과 개발을 장려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현보/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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