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멀다”는 파월에 놀란 증시…다시 12월만 바라보는 코스피

노자운 기자 2022. 11. 3. 11: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회 연속 ‘자이언트스텝’ 역사상 유례 없는 일
파월 발언 피봇 기대감에 찬물
우리는 인플레이션부터 해결해야만 한다.
고통 없이 그렇게 할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다(There isn’t).
-9월 FOMC 직후 기자회견에서 제롬 파월 미 연준(Fed) 의장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또 다시 고물가를 잡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쪽을 택했다. 두달 전 제롬 파월 의장이 공언한 대로였다. 2일(현지 시각) 종료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연준은 기준금리의 75bp 인상을 단행했다. 4회 연속 ‘자이언트스텝’은 역사상 유례 없는 일이다. 금리를 11.5%까지 끌어올렸던 1984년에도 이 정도로 숨 가쁘지는 않았다.

그동안 시장 참여자들은 연준이 이달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것을 충분히 예상해왔다. 그럼에도 뉴욕 증시가 일제히 급락한 것은 회의 종료 직후에 나온 파월 의장의 발언 때문이었다. 아직 금리 인상 중단을 논하기엔 시기상조라며, 피봇(pivot·입장 선회)에 대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래픽=이은현

우리 증시의 향방은 다음 달 FOMC 결과에 달렸다. 파월이 이번에 보여준 매파적 스탠스를 12월에도 이어가며 ‘5연속 자이언트스텝’이라는 새 역사를 쓸지, 혹은 당초 시장에서 기대했던 대로 50bp만 인상하며 한발 물러설 지에 따라 코스피지수의 방향은 달라진다. 전문가들은 후자에 한 표를 던지고 있다.

◇ 美 기준금리 3.75~4%…2008년 1월 이후 최고

연준은 2일 기준금리를 기존 대비 75bp 높은 3.75~4%로 인상했다. 지난 6, 7, 9월에 이어 4회 연속 자이언트스텝을 밟은 끝에, 2008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4회 연속 자이언트스텝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연준은 지난 1984년 폴 볼커 전 의장의 주도하에 역사적인 긴축을 실시했지만, 이 때도 75bp씩 네 번을 올리지는 않았다. 울트라스텝(100bp 인상)을 밟은 후 빅스텝으로 보폭을 줄이고, 그 다음에 바로 베이비스텝(25bp 인상)을 밟는 식으로 속도를 조절했었다.

이번 연준의 결정은 그동안 시장에서 예상해온 바와 다르지 않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 툴(FedWatch tool)에 따르면, 최근까지 연방기금(FF) 금리선물 시장 참여자들은 연준이 11월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확률을 95% 정도로 봐왔다. 8월 잭슨홀미팅부터 9월 FOMC까지 파월이 보여준 강경한 매파적 태도를 감안하면 불 보듯 명백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날 뉴욕 증시는 일제히 급락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6%,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2.5%,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3.4% 내렸다. 지난달 베어마켓랠리(약세장 속 반등)를 마치고 들떠있던 시장을 ‘거인의 발’이 짓밟고 지나간 것이다.

외국인의 귀환에 상승곡선을 그려온 코스피지수도 마찬가지다. 오전 11시 18분 기준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63% 하락하고 있다. 국내외 기관이 손잡고 4000억원 이상의 매물을 쏟아내고 있다.

원화 대비 미 달러화 가치도 치솟았다. 이날 개장 직후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 대비 10원 이상 오르며 1430원선에 근접하기도 했다.

◇ “아직 갈길 멀다” 12월에도 75bp 올리나

이번 FOMC 회의가 시장에 악재로 작용한 것은 다름 아닌 파월의 발언 때문이다. 회의 종료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예상보다 수위가 높은 매파적 발언을 쏟아내며 충격을 줬다.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지난 FOMC 회의 이후 들어온 데이터를 보면, 궁극적인 기준금리 수준은 이전 예상치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9월 회의 이후 공개된 점도표(dot plot·(연준 이사와 연방은행 총재들이 예상하는 향후 정책 금리를 점으로 찍은 표)에서 내년 기준금리의 고점은 4.6%(중간값 기준)로 제시된 바 있다. 파월의 말대로 이 고점이 상향 조정된다면, 금리는 내년 중 5% 수준까지 오른 뒤에야 하락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파월 의장은 또 “지난 두 차례의 기자회견에서 말했듯 어느 순간에는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것이 적절해지겠지만, 아직 갈 길이 더 남았다(we still have some ways to go)”며 “그간 역사를 돌아볼 때 너무 이완적인 정책은 강력히 경계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는 그동안 파월 의장이 강조해온 대로 ‘고통스럽더라도 긴축을 지속하겠다’는 스탠스의 연장선상에 있다. CNN방송은 “이번 결정은 1980년대 이후 연준의 가장 강력한 정책 조치”라며 “비용을 인상함으로써 수백만 개의 미국 기업과 가계의 경제적 고통을 심화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파월 의장은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경기 침체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가 어려워지더라도 물가부터 잡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미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종금리 수준을 추가로 상향 조정할 여지를 시사하고 향후에도 인상 사이클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번 회의는 매파적 성격이 강했다고 평가한다”며 “12월 FOMC에서도 75bp 인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12월에도 기준금리를 75bp 올린다면, 연준 ‘4연속 자이언트스텝’을 넘어 ‘5연속 자이언트스텝’이라는 새 역사를 쓰게 된다. 연말 기준금리는 즉시 4.5~4.75%에 도달한다.

◇ “의도적 강한 발언…인상 폭 축소에 방점 둬야”

파월의 매파적 발언이 우리 증시에 타격을 줄까. 증시 전문가들은 크게 변한 것은 없다고 해석한다.

이번 회의 직후 발표된 성명서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over time) 인플레이션을 2%로 되돌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제한적인 통화정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준금리의 목표 범위를 지속적으로 인상하는 게 적절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문장이 추가됐다. 9월 성명서에는 없던 표현이다.

매 회의 직후 발표되는 성명서 내용에 새로운 문장이 추가되는 일은 흔치 않다. 이 때문에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보다 점진적인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해석한다.

아울러 파월은 “향후 금리 인상 속도를 결정할 때 위원회는 통화 정책의 누적된 긴축 효과, 통화 정책이 경제 활동과 인플레이션에 어떤 시차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경제 및 금융 변화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통화 정책이 이미 경제를 효과적으로 냉각했음에도 데이터에는 늦게 반영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얘기다. 즉, 향후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상무)는 “파월 발언의 핵심은 금리 인상 폭을 줄이고 그 대신 인상 기간을 늘리겠다는 것”이라며 “향후 금리 인상을 얼마나 더 이어갈 지는 앞으로 나올 인플레이션 데이터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물가가 예상보다 빨리 잡힌다면 금리 인상을 멈추고 완화적 정책으로 돌아설 수 있는 만큼, 지금은 인상 폭을 줄이겠다는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 상무는 “파월은 고물가를 잡기 위한 통화정책을 밀고 나갈 의무가 있다”며 “정책 효과의 희석이 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발언을 강도 높고 복잡하게, 애매하게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이 센터장은 “최근 미 증시도 10% 정도 올랐고 기대인플레이션도 다시 오르고 있으니, 연준 입장에서는 시장에서 피봇을 과도하게 기대할 것을 우려해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상무와 이 센터장 모두 12월 FOMC에서 연준이 빅스텝을 밟을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말 기준금리를 4.25~4.5%로 마무리 지은 뒤 내년 초에는 인상 폭을 줄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FOMC가 우리 증시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이라는 것이 증시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FOMC 이후 달러인덱스(주요 6개국 통화와 비교해 미 달러의 평균 가치를 나타낸 지수)가 그리 큰 폭으로 오르지 않았고, 국채 금리도 큰 변화가 없었다”며 “최근 우리 증시에서 순매수를 지속해온 외국인들의 스탠스가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