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성향 다른 두 거장 ‘프란츠’...한장의 음반·한 무대로의 소환 [문화 플러스]
‘극내향·서정적’ 슈베르트-‘외향·화려한’ 리스트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1인 2역 보여주고 싶어
평전부터 읽어...작곡가 삶 알아가는게 진짜 연습
거기에 색깔·생각 담는 것이 나만의 해석 방식
매일 운동 ‘지속가능 음악가’로의 삶 위한 준비
후학양성 뜻도 품고 마스터클래스 꾸준히 진행
‘렉처 콘서트’로 클래식 진입장벽 낮추는 역할도
음악 늘 즐거워...쉼없이 활동하는 아티스트 될것
두 명의 프란츠(Franz)가 있다. ‘가곡의 왕’ 프란츠 슈베르트(1789~1828)와 ‘피아노의 파가니니’ 프란츠 리스트(1811~1886). 이들 사이에 흐르는 시간은 22년. 서로 다른 프란츠를 피아니스트 정한빈이 소환했다.
“같은 이름이지만, 두 사람은 음악도 성격도 무척 달랐어요. 두 작곡가를 통해 같은 정한빈이지만,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1인 2역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프란츠라는 이름으로 위대한 음악을 완성한 두 거장을 한 장의 음반, 하나의 무대로 불러왔다. 두 사람을 한 번에 만나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정한빈은 ‘두 개의 자아’를 꺼내왔다. ‘서정적’인 슈베르트와 ‘화려한’ 리스트를 한 자리에서 연주하는 것이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두 거장을 향해 가기 위해 정한빈은 “6개월 전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음반 녹음과 공연(11월 5일 예술의전당) 준비를 위한 첫 작업은 ‘평전’을 읽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작곡가가 형성되기까지의 원인과 배경을 찾는 것”이 음악 해석의 첫 번째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야장천 손가락 연습만 하는 것이 연습이 아니라 작곡가의 삶을 알아가는 것이 진짜 연습”이라고 했다.
“작곡가의 성격과 그에 대한 이해, 당대 예술의 분위기에 집중해 음악을 만들어가요. 그 안에서 나만의 색깔과 생각을 담는 것이 저의 해석 방식이에요.”
정한빈이 바라보는 “슈베르트는 극내향형의 음악가”였다면, “리스트는 극외향형의 음악가”였다. “자기 어필을 전혀 하지 못했던” 슈베르트와 “무대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즐긴” 리스트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인격체다. 성향으로 치면 정한빈은 슈베르트보다는 리스트에 가깝다. 그는 “100% 외향형(E)의 ESTJ”라고 했다. “저도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고,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해요.” 이번 작업을 통한 ‘의외의 발견’은 “슈베르트를 연주하며 깊고 편안하게 빠지게 된 점”이었다.
지난 9월 초 JCC아트센터에서 녹음을 마친 앨범 ‘친애하는 프란츠에게’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664와 즉흥곡 3번 ‘로자문데’, 리스트의 대작 ‘순례의 해’ 2집 이탈리아 편인 ‘베네치아와 나폴리’와 ‘메피스트 왈츠’를 수록했다. 녹음엔 사운드미러코리아의 황병준 감독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음반엔 두 작곡가의 명곡 중에서도 정한빈이 “가장 사랑하는 소나타”와 “슈베르트와 가장 닮은 곡이라고 느끼는 즉흥곡 ‘로자문데’를 수록”했다. 기교가 돋보이는 리스트의 작품 선정에도 고심을 거듭했다. 리스트는 정한빈에게도 가까이 있는 음악가다. 다양한 콩쿠르를 통해 연주했고, 우승 트로피도 안았다. 그는 “리스트는 어떤 곡을 골라도 자신감이 결여되면 무대에서 불안하게 들릴 수 있다”며 “콩쿠르에서 검증되고 수백 번, 수천 번 연습해 가장 리스트적인 모습을 드러내기에 100% 자신감이 붙은 곡을 골랐다”고 말했다. “제 손에 찰떡같이 붙어있는 곡이에요.”
지금의 연주는 1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템포와 다이내믹의 설정이 완전히 다르다. 두 배 가량 속도가 빨라졌다. 그는 “이번엔 더 초월적으로 쳐보려 했다”며 “완전히 새롭게 접근한 다른 곡이 됐다”고 말했다.
“이전 연주를 듣다 보면 창피하다 느껴질 정도로 고치고 싶은 것 투성이에요. 어떻게 그 연주로 콩쿠르에서 수상을 하고, 우승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한편으로는 지난 연주를 듣고 개선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지기도 해요. 발전했다는 방증이니까요.”
음악적 변화의 배경엔 일상에서의 변화도 큰 몫을 했다.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친 정한빈은 “음악하는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며 “악기별로 아픈 부위도 다르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에겐 “어깨와 팔의 통증”, “고관절 약화”가 따라온다.
“어릴 땐 필사적인 힘을 발휘해 연주를 하니 통증이 있어도 며칠 지나면 회복이 됐어요. 그런데 오랜 연주 생활을 지속하려면 방치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5년 전부터 매일 두 시간씩 필라테스와 PT를 시작했다. 그 이후로 단 하루도 운동을 쉬지 않았다. 그에게 운동은 ‘지속가능한 음악가’로의 삶을 위한 준비였다. “체력이 떨어지면 음악에 자신감도 떨어지고, 끌고 나갈 힘이 부족해 기량 발휘도 안되더라고요. 좋은 음악도 결국 체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엄청난 기교를 자랑하는 리스트의 연주 속도가 더 빨라진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1인 2역을 하는 이번 연주회처럼, 음악가 정한빈도 캐릭터가 많다. 연주자이면서, 작가(‘피아니스트 정한빈의 마스터클래스’)이고, 음악감독이기도 하다. “후학양성을 향한 뜻”을 품고 마스터클래스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학생들의 특성을 찾아 자질을 끌어내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렉처 콘서트’ 형식을 통해 클래식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도 이색적인 행보다.
“곡에 대한 배경지식과 작곡가의 소개 등 해설을 곁들이면, 관객들이 훨씬 즐겁게 음악을 듣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클래식의 저변이 넓어지고, 찾는 층이 많아져야 클래식 음악계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들만의 그라운드로 남아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가족 중엔 유일한 클래식 음악인이지만, 의외로 ‘예능인 집안’이다. 그의 동생은 80만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브 채널 ‘깨방정’의 개그맨 정승빈이고, 사촌동생은 K팝 그룹 저스트비의 멤버 건우다. “외향적으로 발산해야만 하는 피”를 가진 가족이라고 한다. 정한빈의 바람도 ‘음악적 역량’을 꾸준히 발산하는 삶에 있다.
“오랜 시간 무섭게 배웠고 때때로 훈련이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음악을 하는 것은 늘 즐거웠어요. 평생 쉬지 않고 활동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저 사람은 음악에 진심이구나,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 어딘가 안주해 활동 소식이 중단되는 사람이 아닌, 평생 하는 사람이요. 끊임없이 쉬지 않고 활동하는 아티스트, 그게 제일 어려울 거 같아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지한母 “내 보물인데…경찰이 신고 무시했다” 신발 안고 오열
- “마스크에서 나던 냄새, 유해물질 이었다”...통풍 후 착용해야
- "운구비 없어 고국 못가"...이영애, 숨진 러시아인 "돕고 싶다"
- 사람 구하는데 "그만 올려" 소리치던 남성...직전까지 구조 돕던 사람
- ‘미인대회서 비밀연애’ 두 미녀, 진짜 부부됐다 “행복해요”
- "경사로에 마네킹 세워보니"...이태원 참사 현장 재현한 日 방송
- ‘음주운전’ 김새론, 5개월여째 자숙 중이라는데…깜짝 근황
- 이태원 간 유명인이 유아인? “사실무근…해외 체류 중” 루머 반박
- 김C “사고 났는데 경찰들 걸어서 출동”…이태원 참사 목격담
- 고개 숙인 이상민 "유가족과 국민 마음 살피지 못해…심심한 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