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평판 대신 실리 챙겼다…이자비용 세이브

권소현 2022. 11. 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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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환용 달러조달시 10% 넘는 금리 불가피
콜옵션 행사 연기로 금리 오르지만 6%대
유럽 은행은 경제적 이익 따져 행사여부 결정
한국 금융사만 무조건 콜옵션 행사 '관행'
K-ICS 도입시 자본숨통…내년 조기상환 여부 주목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평판은 잃었지만 실익을 얻었다’

흥국생명이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조기상환) 행사를 연기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새로 달러를 조달해 갚는 것에 비해 이자부담을 줄인 만큼 실리는 챙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나 유럽계 은행들은 상황에 따라 비용을 저울질을 해보고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에 비해 한국 금융사에 대한 잣대가 지나치게 깐깐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10월만 해도 유럽계 은행 두 곳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다.

10% 이상에 발행해서 막느니 6%대 이자로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지난 2017년 발행한 5억달러 규모의 달러화 신종자본증권을 조기상환하기 위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 자금조달을 추진했다. 지난 9월16일 주요사항보고서를 통해 3억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발행 결정을 공시했고, 해외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에서도 ‘달러 자본조달에 성공한다면’을 전제로 콜옵션 행사를 공언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급변하면서 발행은 무산됐다.

흥국생명 고위 관계자는 “처음 태핑을 할 때만 해도 7~8%의 금리에 신종자본증권을 사겠다는 수요가 있었지만 시장이 급변하면서 금리가 10% 이상으로 올랐고 사겠다는 수요도 사라졌다”며 “달러조달을 못하면 지급여력(RBC) 비율 때문에 조기상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흥국생명이 2017년 달러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당시 금리는 4.475%였다. 이번에 콜옵션 행사를 연기하면서 금리는 5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에 2.472%포인트를 가산해 6.75%로 변경된다. 이 금리는 앞으로 5년간 적용된다. 흥국생명이 현 시점에 달러를 조달했을 경우 두자릿수 금리를 지불했어야 하지만 콜옵션 행사를 연기하면서 이자비용은 줄인 셈이다.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 여부는 발행사가 결정하는 일종의 옵션이지만, 흥국생명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보험업감독규정상 대체조달 요건에 따라 조기상환 후 RBC 비율이 150% 이상인 경우에 한해 조기상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흥국생명은 6월 말 기준 RBC 비율 157.8%로 보험업 전체 평균인 218.8%에 비해 낮다. 30조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상환재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차환발행이나 유상증자 없이는 대체조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콜옵션 행사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또 금융시장 여건변화에 따라 기존 신종자본증권의 금리조건이 현저히 불리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조기상환이 가능한데 이 조건에도 안 맞는다.

당국 역시 두자릿수 금리에 발행하는 것에 반대했다. 보험사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 전제조건 중 하나가 금융감독원장 사전 승인이다.

유럽 은행들도 콜옵션 미행사

국내에서는 금융사가 이처럼 콜옵션 행사를 미룬 것은 우리은행이 2009년 후순위채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이 때문에 한국 금융사의 신종자본증권 발행 여건이 악화하고, 한국물에 대한 외국인들의 투자심리도 얼어붙을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2009년 후순위채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우리은행은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자 다음 상환기일에 콜옵션을 이행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금융기관의 경우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2019년 스페인 산탄데르, 2020년 도이치은행, 영국 로이드 은행 등이 콜옵션 미이행을 택했다. 올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독일 도이치PBB는 지난 6월28일 콜옵션 행사일이었지만 행사하지 않았고, 오스트리아 폭스방크 빈과 이탈리아 방카 IFIS는 각각 지난달 6일, 17일에 콜 행사일을 맞았으나 조기상환하지 않았다.

유승우 DB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경제적인 이유로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 편”이라며 “펀더멘털에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조기행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크게 이슈화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 은행과 보험사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은 첫번째 콜옵션 행사일을 으레 만기일로 간주해왔다. 이자비용을 손해보더라도 평판을 고려해 조기행사를 하는 것이 시장 관행이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콜옵션 행사여부는 발행사가 여건을 따져보고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에 유리한 쪽으로 정하는게 맞다”며 “유난히 한국 금융사들만 관행적으로 첫 행사일에 조기상환 해왔기 때문에 마치 미행사가 신뢰를 깬 것처럼 비치는데 관행을 깬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행사일엔 조기상환 가능할까

시장의 관심은 흥국생명의 다음 콜옵션 행사일로 쏠린다. 6개월마다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내년 5월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미국 연방준비재도(Fed)가 금리인상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높은데다, 내년 보험사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도입될 예정이어서 다음 콜옵션 행사일에는 조기상환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김선영 한국신용평가 선임애널리스트는 “흥국생명의 경우 부채 듀레이션이 자산 듀레이션보다 긴 상황으로 금리 상승시 자산 감소보다 부채 감소가 크게 나타나 경제적 자본은 증가하는 구조”라며 “내년 도입되는 IFRS17·K-ICS 체제에서는 금리상승으로 인한 자본비율 하락 부담이 완화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K-ICS 도입시 자본력 우려가 크지 않아 현 시점에서 고금리 차환발행의 실익이 적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흥국생명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달러 조달이 가능하면 조기상환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소현 (juddi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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