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외롭지만 당당하게…대륙 넘나드는 여행가, 넓적부리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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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00쌍만 남은 최고 멸종위기 소형 도요
러시아 툰드라 번식, 서해 거쳐 동남아 월동
주걱 모양 부리 흔들며 앙증맞은 먹이활동
지난 10월 11일 검은머리물떼새의 천국인 충남 서천군 장항읍 송림리 유부도를 9년 만에 찾았다. 지구에 360~600개체만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넓적부리도요를 관찰하기 위해서다.
유부도는 군산항에서 5분 정도면 도착할 정도로 가깝지만 정기 노선이 없어 유부도 어민의 배를 예약해야 오갈 수 있다. 뱃길은 조류 변화가 심하다. 선착장이 잘 개선되어 있고 양쪽으로 갈라진 들머리 길도 그대로 있다. 예전 방문 당시 학생이 1명이던 송림초등학교는 폐교되었다. 염전은 완전히 풀숲으로 변했다.
금강하구에 인접한 유부도에선 만조 때에 맞춰 물 가장자리로 도요새 무리가 빽빽하게 몰려들었을 때 넓적부리도요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수만 마리의 비슷비슷하게 생긴 도요새 무리에서 넓적부리도요를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멀리 나가 있던 도요새와 검은머리물떼새는 갯벌에서 먹이를 찾다 물이 차오르면 종종걸음으로 미끄러지듯 육지 쪽으로 서서히 밀려온다. 마침내 갯벌 끝까지 물이 차오르면 일제히 솟아올라 수면 위를 이리저리 날며 멋진 군무를 펼친다. 아직 남아있는 갯벌을 찾아다니며 앉았다 날기를 반복하는 광경이 하늘에서 하얀 종이꽃을 흩뿌리는 것 같다.
도요새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수많은 도요새 무리 속에서 넓적부리도요를 찾으려고 집중해 보지만 철새 이동 시기에 민물도요, 좀도요, 세가락도요 등과 뒤섞여 찾기가 매우 힘들다. 찾더라도 순식간에 움직이는 다른 도요새와 섞여 버린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매가 나타나 도요새들을 습격한다. 매는 사냥에 성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날아든다. 생각지 못한 방해 요인이 생겼다. 도요새들이 이리저리 날아 도망치며 난리가 났다. 다행히 어린 참매가 사냥을 포기했다. 넓적부리도요를 못 찾을까 봐 마음이 조급하다.
30분 남짓 찾다 보니 바닷물이 빠지기 시작한다. 물이 빠지면 갯벌이 점점 넓게 드러나 새들도 흩어지기 때문에 참새 크기의 넓적부리도요를 찾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관찰하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해야 할까. 다행히 넓적부리도요를 찾았다.
필자는 넓적부리도요를 찾을 때 카메라의 망원렌즈를 활용해 도요새 무리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좌우로 살핀다. 겨울철에는 가장 작고 밝은색 깃털을 가진 도요새를 찾고 걷거나 쉴 때 유난히 몸을 좌우로 흔들어 대는 도요새도 유심히 본다.
물기 있는 곳에서 부리를 좌우로 움직이거나 몸치장을 하기도 한다. 일단 넓적부리도요새를 발견하면 그 주변 무리가 날아올랐다 다시 내려앉는 내내 최대한 추적한다. 앉아있던 자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끈기와 집중력이 관찰의 관건이다.
넓적부리도요는 갯벌에서 주로 썰물 때 모래 토양에 있는 작고 얕은 웅덩이나 물기가 남아있는 벌에서 먹이를 찾는다.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지면을 쓸듯이 작은 주걱 부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앞으로 걸어나가다 먹이가 나타나면 부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촉각을 이용해 잡아먹는다.
작은 몸집에 넓적한 부리가 특이하다. 주걱 모양의 부리를 지닌 저어새가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주걱 모양의 부리가 사냥할 때 어떤 이점이 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시간 내어 몸 다듬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작지만 촐싹거리지 않는다. 다른 도요새 무리에 홀로 섞여 있어도 당당하다. 그러나 어쩐지 외로워 보여 마음이 아리다.
몸길이 14~16㎝의 작은 몸집이 지금은 겨울깃으로 완전히 변환하였다. 다른 도요새 무리 가장자리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것이 관찰된다. 섭취하는 먹이가 다르기도 하다.
넓적부리도요는 강 하구의 삼각주, 모래섬의 가장자리 등 수심이 얕고 모래가 섞인 장소를 선호한다. 연체동물과 갑각류를 주로 먹는다. 단독 또는 10~20마리의 작은 무리를 형성하며 좀도요와 민물도요 무리에 섞여 이동하는 경우가 흔하다.
번식기에는 수컷이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 날개를 수직으로 올려 급강하해 거의 땅에 닿을 때까지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결혼비행으로 구애하고 고운 노래와 선회비행, 정지비행도 선보인다. 넓적부리도요 부부는 3~10㏊ 정도의 영역 안에서 먹이를 찾고 땅에 둥지를 마련한다. 둥지는 툰드라의 해안 지역이나 담수 웅덩이 근처의 풀밭에서 이끼 덮인 땅 위 오목한 곳에 수컷이 만든다.
알을 낳는 시기는 6~7월 중순이다. 알에는 엷은 갈색 바탕에 어두운 갈색 무늬가 있으며, 4개 낳는다. 암컷과 수컷은 21~23일 동안 교대로 알을 품는다. 이때 번식지의 먹잇감은 모기, 파리, 딱정벌레 및 애벌레, 거미와 같은 작은 동물이다.
국내에서는 봄·가을에 극히 적은 수가 통과한다. 특히 가을 이동 시기에 관찰 기록이 더 많다. 봄철에는 4월 초순에 도래해 5월 하순까지 관찰되며, 가을철에는 8월 중순부터 도래해 10월 하순까지 관찰된다.
추코트카반도의 해안과 캄차카반도, 베링 해 연안의 제한된 일부 지역에서만 번식하고 한국, 북한, 일본, 중국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이동하며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반도에서 겨울을 난다. 이동 거리는 8000㎞에 이른다. 한 해 동안 비행하는 거리만 1만6000~2만㎞로 작은 몸집으로 엄청난 여행을 하는 셈이다.
문제는 기나긴 여정 동안 목숨을 위협하는 수많은 위기를 겪는다는 점이다. 이미 습지들이 많이 개발돼 번식지를 상실하였고 중간기착지 및 월동지역까지 상실하여 개체수가 멸종 직전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우리나라 새만금 갯벌은 먼 거리를 이동하는 넓적부리도요새가 재충전하는 매우 중요한 중간기착지였지만 간척지 개발로 훼손했다. 주 월동지인 미얀마, 방글라데시 바닷가에서 그물로 밀렵하는 것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연구 결과 한국, 북한, 중국의 주요 서식지 중 이미 65%가 간척으로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넓적부리도요가 보전대책이 없으면 10~20년 안에 멸종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대양주 이동 조류들의 핵심적인 중간기착지이다. 새들은 이동 중에 생명을 재충전하는데 특히 서해안 갯벌이 도요새와 물떼새에게 꼭 필요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관찰된 넓적부리도요의 최대 개체수는 낙동강하구 215개체와 만경강 하구 200개체로 알려져 있다. 이제 이렇게 큰 규모의 무리를 발견하는 건 불가능하다.
넓적부리도요의 전체 개체수는 1970년대에 4000~5000개체였으나 2000년에는 2000개체 이하로 줄었다. 2009~2010년에는 120~200쌍이 생존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NC) ‘적색목록’ 목록에 위급(CR)으로 분류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등급이 높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되었다.
글·사진 윤순영/ (사)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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