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미당구재료 “어려울수록 학교 교도소 등 새 수요처 발굴해야죠”

김우진 2022. 11. 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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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용품]전남 광양 마미당구재료 박학용 대표 인터뷰
‘실버컵’초크 독점 수입판매…80년대 마스터초크 수입도
[당구용품]전남 광양 마미당구재료 박학용 대표 인터뷰
‘실버컵’초크 독점 수입판매…80년대 마스터초크 수입도
마미당구재료는 미국의 ‘실버컵’(Silver Cup) 초크를 국내에 독점 수입판매하고 있다. 박학용 대표가 실버컵 초크 박스를 들여보이고 있다.

“당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교 보건서 경찰서 교도소 등 관공서에서도 당구용품을 많이 찾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새로운 수요처를 발굴해야죠.”

전남 광양 마미당구재료 박학용(76) 대표는 40년 넘게 당구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70년대 중반에 당구계에 뛰어들었고, 한동안 외국생활을 거쳐 2002년 이곳에서 당구용품업을 시작했다. 대기업 다니다 그만둔 둘째 아들이 도와주고 있지만 박 대표는 아직도 왕성하게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마스터 초크를 국내에 들여와 판매했고, 현재는 ‘실버컵’(Silver Cup)초크를 독점수입 판매하고 있다.

당구시장으로서 호남지역이 작지 않다는 그는 회사가 더 성장하면 선수 후원이나 대회 후원에도 신경쓸 생각이다. ‘코로나19’로 당구계 전반이 어려운 사정에 대해서도 “굴곡이 있지만 이 위기를 넘기면 다시 당구계가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희망적인 관측을 했다.

▲업력(業歷)이 꽤 오래됐다. 언제부터 당구용품사업을 시작했나.

=70년대 중반, 정확히는 1976년부터다. 당구장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면서 전국적으로 (당구장이) 많이 생겼다. 당구가 발전하려면 용품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 좋은 용품을 들여오기 위해 국외로 눈을 돌렸다. 당구용품 사업을 중소기업 반열로 올려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초크와 공에 이어 큐 만드는 캐나다 단풍나무까지 수입했다. 그러다보니 중국과 미국, 일본 등 외국을 많이 돌아다녔다.

▲회사를 소개해달라

=2000년대 초부터 광양에서 당구용품사업을 했고, 각종 당구용품을 취급하며 실버컵 초크를 독점 수입 판매하고 있다. 1986년에 마스터초크 수입판매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여러 곳에서 마스터초크를 들여와서 판매하고 있지만. 별도 자체 브랜드는 없으며 주로 호남 당구장과 당구인이 주 고객이다.

1976년부터 당구용품 사업을 시작한 박학용 대표는 미국, 중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당구용품을 수입했다.

▲마미당구재료라는 이름이 특이한데.

=처음 서울에서 사업할 때 회사 이름이 한라상사였다. 근데 외국에 나가보니 한라상사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더라. 그래서 외국인들도 쉽게 부를 수 있게 바꾼 게 마미였고 지금의 마미당구재료가 됐다. 이름을 바꾸니 주위에서 마미가 아닌 미미로 부르더라. 하하.

美日 등 다니며 당구용품 규격 등 정보 파악
76세 적지않은 나이 “아직도 영원한 현역”

▲외국을 자주 다녀 외국 당품용품에 대한 정보가 많겠다.

=당구용품 규격이나 룰에 대해 많이 아는 편이다. 예컨대 ‘마스터 초크’ 진품과 가품을 구분하는 방법이다. 마스터초크 진품은 실을 이용해서 초크를 잘라내기 때문에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튀어나오지만 가짜들은 네모 반듯해서 떨어뜨렸을 때 튀어나오지 않는다.

▲70이 넘으셨는데, 아직도 활발하게 현역에서 활동하신다고.

=그렇다. 아들과 함께 운영하지만 내가 할 일이 많다. 주문 오면 배송도 하고, 당구천(라사지)갈이도 직접 한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당구장뿐 아니라 당구와 관련된 곳(학교와 요양원 등) 등 고객이 많다보니 안 다니는데가 없다.

▲광양이 호남권 맨 아래쪽에 있고, 큰 도시가 아닌데 시장이 좁지 않나.

=그렇지 않다. 수도권과 비교하면 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 성장하면 경상도나 주변 지역으로 확장할 수 있다. 일이 잘되면 언제든 수도권에 입성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호남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박학용 대표는 “당구계가 어렵지만 굴곡이 있을 뿐이고 이시기만 넘기면 예전처럼 당구 부흥기가 찾아올 것으로 믿는다.” 라고 말했다.

▲3년째 ‘코로나19’를 겪으며 당구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미당구재료는 어떠한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공장을 운영하면서 당구대 같은 용품을 직접 제작하지 않고 유통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하다. 가장 큰 고객인 당구장 외에도 학교와 경찰서 소방서 교도소 등 공공기관 단체를 신규 고객으로 발굴한게 어려울 때 도움이 된다. 당구계가 어렵지만 단지 굴곡이 있을 뿐이고 ‘코로나19’때문에 그 주기가 길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만 잘 넘기면 예전처럼 당구 부흥기가 찾아올 것으로 믿는다.

▲대기업 다니던 아들이 일을 돕고 있다고.

=당구업계에 몸담은지 50년 가까이 된다. 어느새 나이도 70을 넘겼고 둘째 아들에게 맡기려고 계속 가르치고 있다. 처음에는 아들(박동욱)이 비전이 없다고 하더라. 하지만 일을 배우면서 나름대로 깨우치더라. 지금은 나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다. 아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평범하게 당구만이 아닌 다른 사업아이템을 검토 중이다. 단순히 재미뿐만 아닌 건강을 챙기면서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할 생각이다.

박학용 대표는 세 아들을 두고 있는데 3형제가 함께 회사를 이끌어가는 가족기업을 꿈꾸고 있다. 현재는 대기업을 그만둔 둘째 아들(동욱)이 아버지와 함께 일하며 경영을 배우고 있다.

▲회사를 가족기업으로 키우고 싶어한다고 들었다.

=아들이 셋인데 3형제가 함께 이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국은 가업을 잇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회사도 그렇게 이어갔으면 좋겠다. 둘째 아들이 법대를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7년간 장교 생활하다가 제대했다. 이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가 평범한 직장생활에 실증을 느낀 그때 일을 배워보라라고 권유했다. 그때부터 같이 일을 배우고 있다.

첫째와 막내는 아직 회사에 다닌다. 둘째 아들처럼 당구사업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을 해보면 (둘째 아들처럼) 생각이 바뀔 거라 믿는다. 둘째가 중심이 되어 3형제가 같이 회사를 경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예전엔 당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못했다. 지금은 인기 실내 스포츠로 성장하고 있다. 더 더 활성화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 한국에서 당구가 골프처럼 세계적으로 성장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게 되도록 마미당구재료도 노력할 것이다. [김우진 MK빌리어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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