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라는 거인의 4번째 큰걸음…고민 커진 한은
한미 금리차 확대…한국은행, 추가 인상 놓고 고민
미국이라는 거인이 4번째 큰걸음을 밟았다. 물가 안정이라는 목표가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큰 보폭을 다시 내딛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2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회의 직후 우리나라의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정책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의 기준금리는 4.00% 수준으로 높아졌다.
미국의 연이은 정책금리 인상에 한은의 고민도 깊어졌다. 경기침체 우려는 깊어지고 자금시장 경색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물가는 여전히 고공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가 한미 간 금리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소극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주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다.
미 연준…잡히지 않는 물가에 또 인상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올해부터 고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펼쳐왔다. 지난 3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제로금리 시대의 종언을 알렸다.
이후 5월에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더 나아가 6월, 7월, 9월 그리고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는 한 번에 0.75%포인트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며 금리인상 속도를 빠르게 가져갔다.
이에 연초만 하더라도 0%였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11개월 만에 3.75~4.00%까지 올랐다. 이는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이 빠르게 기준금리를 올린 배경에는 단연 물가가 꼽힌다. 그간 미국 연준은 고물가를 잡기위해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혀왔다. 통상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물가안정은 3~6개월의 시차를 두고 가시화된다.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이 올해 3월부터 시작됐다면 3분기 부터는 미국의 물가가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하지만 미국의 고물가 행진은 좀처럼 안정화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가장 최근 발표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2% 상승하며 고공상승세를 이어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역시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라며 이날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미 연준, 속도 조절은 나서도 금리는 계속 올린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이날 금리 발표 이후 회견을 통해 "앞으로도 기준금리 인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과 같은 급격한 금리인상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는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할 때가 왔으며 이는 다음 회의가 될 수 있다"라고 했다.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다음달에 열린다. 이같은 발언에 따라 시장에서는 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수준이 0.25~0.50%포인트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금리인상은 계속될 것이란 것도 분명히 한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금리인상 중단은 시기상조이며 최종금리가 더 높아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물가안정이 가시화 될 때 까지는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신호를 보낸 셈이다.
이 발언을 두고 이에 시장에서는 내년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이 5%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있다.
지난 9월 미국 연준이 내놓은 점도표에서 내년 최종 금리 전망은 4.5~4.75%였다. 이날 제롬 파월 의장이 최종금리 수준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발언한 만큼 내년 미국의 기준금리는 5%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고민 깊어지는 한은
미국이 연이어서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한국은행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이날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인해 한미간 금리 차이는 1.0%포인트로 확대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그간 통화정책방향 결정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한미간 기준금리 차이가 우리나라 기준금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라고 선을 그어왔지만 아예 외면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우리나라 물가와 직결되는 달러화 강세는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우리나라 자금시장 경색이 좀처럼 해결되고 있지 않은 가운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까지 가시화 된다면 기준금리 인상 압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실제 3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일 종가 대비 7.9원 오른 1425.3원오르며 개장했다. 이후 장 초반 상승폭이 10원 이상으로 확대됐다. 코스피는 전일대비 39.42포인트(1.69%)하락한 2297.45로 시작했고 코스닥 역시 11.95포인트(1.71%)내린 685.42로 개장했다.
아울러 물가 역시 5%대의 상승세를 유지중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기간과 비교해 5.4% 상승했다.
문제는 한은 역시 연이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채권금리가 지속해서 상승한 데다가 최근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불확실성 확대로 인해 자금시장 경색이 짙어졌다는 점이다.
한미간 금리차 확대로 인한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또 한번에 '빅스텝'에 나서 돈줄을 죈다면 대대적으로 자금을 풀어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정부와의 정책공조를 펼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정부 요청에 5대 금융지주 구원투수로…'95조 투입'
여기에 더해 최근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는 점 역시 고민거리다.
지난달 있었던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보면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과 관련해 두 명의 금통위원이 0.25%포인트 인상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물가안정도 시급하지만 경기침체 우려가 깊어지고 있는 만큼 금리인상에 속도를 나서야 한다는 이유에서 였다.
이와 관련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달 24일 열릴 예정이다.
이경남 (lk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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