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한파' 속 'K-칩스법' 석달째 국회 표류…걸림돌은?

이현주 2022. 11. 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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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현주 기자 = 한국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반도체 산업이 극심한 한파 속에 흔들리고 있다. 수출액은 3개월 연속 감소했고, 재고가 급증하며 생산도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반도체 특별법, 일명 'K-칩스법'은 법안 통과의 가장 첫 관문인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석달째 표류 중이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반도체 정책의 핵심인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일명 'K-칩스법'은 지난 8월 법안 발의 후 아직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원회에 안건 상정조차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으로 현재 무소속인 양향자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반도체특위)는 지난 8월 '반도체 최강국' 실현을 위해 'K-칩스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 발의의원 명단에는 양 의원을 비롯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민주당 소속 이병훈, 정성호, 김경만, 김주영, 조오섭 의원 등도 이름을 올려 초당적 법안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현재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와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 소위원회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 한 관계자는 "산자위의 경우 전체회의에서 법안을 소위로 넘기는 데 합의했지만 소위 안건 상정은 여야 간사 합의가 필요한데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기재위는 아직 소위 구성도 안된 상황이어서 법안 논의 자체가 언제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회 또 다른 관계자는 "법안 소위 상정은 예산 논의 후 이뤄지는 수순인데 여야가 대립 중이어서 간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여야의 정국 경색이 풀리지 않는다면 K-칩스법은 논의조차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여당은 하루빨리 여야가 함께 법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자위 소속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반도체 관련 법안에 여야가 어디 있느나"며 조속한 논의를 촉구했다.

야당 측도 반도체 업황이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단 정부가 아직 현 상황의 시급성을 인식하지 못해 제대로 된 법안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화살을 정부 측에 돌렸다.

김경만 민주당 의원은 "반도체특별법은 지난해부터 민주당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여 올초 법안을 통과시켰다"며 "하지만 인력 양성, 세제 등 일부 미진한 부분이 있어 보완이 필요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어 "반도체 관련법은 부자 감세와 별개로, 첨단산업 육성 차원에서 봐야 한다"며 "지방소외 지적도 지방자치단체 균등 배치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11월 중에는 산자위 의원들이 K-칩스법을 함께 스터디하며 공감대를 넓히겠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김 의원은 "현재 반도체법의 논의가 미진한 것은 정부의 위기 의식이 부족한 측면이 크다"며 "최근 정부 측에서 제대로 된 입법 필요성 설명조차 없지 않느냐"고 밝혔다. 이어 "의원들 차원에서도 아직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공부가 덜 되어있는 것 같다"며 "11월에 여야 산자위 의원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되면 관련 내용에 대한 진전이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지속적인 성장 기반 마련을 위해 정부 지원을 총동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후 민주당은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핵심전략산업 위원회를 신설하고 첨단산업 분야의 투자·세제·인프라·인력 등을 지원하는 반도체특별법 제정을 당론으로 추진해 올 초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이 특별법이 세제지원 같은 실질적 해법이 미진하다며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개회식에서 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9.01. photo@newsis.com

이후 새 정부 들어 반도체 업황이 더욱 악화되며 관련 법 개정 필요성이 한층 설득력을 얻고 있다.

K-칩스법 개정안에는 신규 생산설비 구축에 따른 인·허가 등 신속한 처리 지원이 담겨 있다. 현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 공업용수 취수 문제로 경기 여주시와 갈등을 빚고 있는 SK하이닉스의 경우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수혜를 받을 수 있다.

또 한편 조세특혜제한법 개정안에는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 기한을 2030년으로 연장하고, 현행 6∼16%인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20% ▲중견기업 25% ▲중소기업 30%로 확대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기존 6% 수준의 세액공제 규모가 20%로 늘어날 수 있다.

업계는 미국, 중국, 유럽 등이 국가적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만큼 하루빨리 'K-칩스법' 제정 작업을 마무리 짓고 국회·정부 차원의 지원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요구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지난달 21일 국회 산자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경쟁국과 국내 반도체 지원 정책이 비교된다"며 'K-칩스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각에서 나오는 '대기업특혜법', '지방소외법'이라는 비판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최전선에 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살려야 하는 것은 대기업 특혜라고 보기 힘들다"며 "수도권 투자를 막는다면 우리 기업들이 지방이 아닌 해외로 투자로 눈을 돌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대기업뿐 아니라 관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까지 혜택을 받으며 반도체 생태계 전체가 살아날 수 있다는 전망도 들린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반도체 산업을 전면에 내세우고 인력 양성과 투자 혜택 등 각종 지원책을 약속한만큼 이젠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며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정도로 시급한 사안이므로 야당에서도 전향적으로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은 암울한 상황이다. 메모리반도체 업계 글로벌 2위인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기 4조1718억원보다 60.5% 급감했다. 영업이익률도 같은 기간 35%에서 15%로 주저 앉았다. 심지어 4분기 적자 전환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삼성전자도 반도체 부문에서 3분기 영업익이 전년 동기 대비 50% 가까이 감소하는 등 부진한 실적을 발표했다. 4분기에도 글로벌 IT 수요 부진과 메모리 시황 약세는 더 가중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발표한 '10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지난달 한국 반도체 수출액은 92억3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7.4% 감소했다.

내년 전망도 어둡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WSTS)는 내년 반도체 시장 성장률을 4.6%로 예상했다. 이는 올해 예상 성장률 13.9%의 3분의 1 수준으로 2019년 이래 가장 낮은 성장폭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lovelypsych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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