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살아달라' 간절했던 1시간의 CPR…"軍에서 배운 후 처음"

최지은 기자, 박수현 기자 2022. 11. 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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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현장이 통제되고 있다. /사진=뉴스1


"사방에서 제발 살아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겠다' 그 생각뿐이었어요."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3년 만에 맞은 핼러윈은 사상 최악의 날이 됐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2일 기준 156명이 사망하고 173명이 다쳤다. 아수라장이 된 골목에서 시민들은 사상자에게 너도나도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20대 남성 A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매년 핼러윈마다 이태원을 방문했던 A씨는 올해도 어김없이 이태원을 찾았다. 코스튬을 하고 친구 두 명과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이태원은 한 걸음 내딛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으로 가득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키가 180cm 이상에 덩치가 제법 큰 A씨도 휘청거리며 인파에 휩쓸릴 정도였다.

사람 없는 장소를 찾아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큰 골목으로 나온 A씨 눈에 사람을 들고 뛰어가는 남성들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핼러윈이라 그러겠거니 했는데 뒤이어 또 다른 사람들도 사람을 들고 뛰어오기 시작했다.

"저기 사람들이 쓰러졌는데 다 들 수가 없어요. 남성분들 좀 도와주세요." 그때 한 외침이 A씨의 귓가를 때렸다. 주변의 큰 음악 소리에도 묻히지 않은 목소리였다.

소리치는 사람을 따라 도착한 곳에서 A씨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1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있고 쓰러진 한사람당 4~5명이 붙어 심폐소생술(CPR)과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군대에 있을 때 CPR을 배운 A씨도 지체 없이 뛰어들었다. 실제 사람에게 해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먼저 도착해 CPR을 하고 있던 여성들에게 다가가 자신이 대신 해보겠다고 했다. 흉부 압박을 할 때 상당한 힘이 필요해 자신이 좀 더 강하게 압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말 온 골목이 시신과 상처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더라고요. 응급 처치를 해야 하는데 사상자를 눕힐 공간이 없었어요."

A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다른 사람들과 사상자를 둘러업고 다른 골목으로 옮겨 눕혔다.

CPR을 시작했지만 한 명만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A씨는 외국인 남성 한 명과 또 다른 여성 두 명에게 번갈아 가며 CPR을 했다. 무릎을 꿇어야 해 다리가 후들거리는데도 멈출 수 없었다. 20분씩 나눠 1시간이 넘도록 3명에게 흉부 압박을 했다. A씨 주변에선 다른 사람들이 사상자의 다리를 들거나 주무르며 도움을 줬다.

흉부를 압박하자 안 뛰던 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계속 CPR을 진행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맥이 잡히면 흉부 압박을 하지 말고 뺨을 때려 깨워야 한다'고 A씨에게 알려줬다. 들은 대로 했지만 맥은 다시 멈춰버렸다. 또 CPR을 하다가 맥박이 잡혀 뺨을 때려 깨울라치면 또다시 심장이 뛰지 않았다.

"이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제발 맥이 잡혔으면 좋겠다' 그 생각만 들었거든요."

기자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A씨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다. 참사 후 며칠이 지났지만 A씨에게 29일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고 했다.

A씨는 참사가 일어나기 전날인 금요일에도 이태원을 방문했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에 있는 바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금요일에도 골목은 발 디딜 틈 없었다. 하지만 많은 인파를 통제하는 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핼러윈이 아니더라도 평소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면 항상 붐볐었는데…" 말을 하며 A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헌화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사진=뉴스1


합동 분향소가 설치되자마자 A씨는 녹사평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았다. 심폐소생술을 받던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꽃을 놓고 추모하고 나서는 마음의 짐이 조금 덜어졌다.

참사 후 이틀 내리 잠을 자지 못할 만큼 후유증은 컸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A씨를 짓눌렀다. 불안, 무서움 같은 본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조금은 회복이 됐다. "당시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는 게 A씨의 말이다.

끝으로 A씨는 이 말을 덧붙였다. "이런 일이 다시는,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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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박수현 기자 literature102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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