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혹' 때문에 따돌림 받던 마다가스카르 청년, 한국서 미소 되찾아

권대익 2022. 11. 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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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크기만큼 혹 10여 년간 방치, 학교도 중퇴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 성공해 귀국 길 앞둬
한국을 찾아 얼굴 크기만 한 종양을 치료받은 플란지(왼쪽)씨에게 수술을 집도한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귀국을 앞두고 덕담을 건네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입안에 생긴 15㎝ 이상의 얼굴 크기만 한 거대 종양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고 ‘징그러운 혹이 달린 아이’라며 동네에서 따돌림까지 받던 마다가스카르 청년이 한국에서 수술받고 새로운 삶을 얻게 됐다.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팀은 마다가스카르 오지의 열악한 의료 환경 탓에 입안에 얼굴만 한 크기의 종양을 방치해 온 플란지(22)씨의 ‘거대 세포 육아종’을 제거한 뒤 아래턱 재건 및 입술 주변 연(軟)조직 성형술을 성공리에 마쳤다. 미소를 찾은 플란지는 이번 5일 마다가스카로로 돌아간다.

플란지씨는 8살 때 어금니 쪽 통증이 있어 어머니 도움을 받아 치아를 뽑았다. 이때 발치가 잘못된 탓인지 어금니 쪽에 염증이 생겼지만 제때 치료받지 못한 채 10여 년을 방치했다.

작았던 염증은 거대 세포 육아종으로 진행되면서 점점 커졌다. 거대 세포 육아종은 100만 명당 1명에게 발병하는 희소 질환이다.

초기엔 약물로도 쉽게 치료할 수 있지만 플란지씨의 경우 오랫동안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종양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거대해졌다. 플란지씨의 종양은 거대 세포 육아종 중에서도 심각하게 거대한 크기였다.

얼굴 크기만 한 종양이 입안에 생겨 플란지씨는 음식 먹는 것은 물론 대화조차 힘들어졌고, 종양을 만지거나 잘못 부딪히면 출혈이 자주 발생해 일상생활이 점점 어려워졌다.

친구들은 겉으로도 드러나는 거대 종양 때문에 ‘징그러운 혹이 달린 아이’ ‘귀신 들린 아이’라며 플란지씨를 따돌려 학교도 중퇴했다.

‘징그러운 혹이 달린 아이’라며 따돌림받던 아프리카 남동쪽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오지 지역의 청년 플란지의 수술 전(왼쪽, 올해 5월)과 수술 후(오른쪽) 비교 사진. 서울아산병원 제공

플란지씨가 살고 있는 마을은 아프리카 동남부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도 2,000㎞ 떨어진 암바브알라다. 마을까지 이어지는 차도가 없어 이틀 정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다. 마을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아 불을 피워 생활한다. 이렇다 할 의료기관은 물론 마을에 의사가 단 한 명도 없고 간호사만 한 명뿐이다.

마을에서 3시간을 걸어나가면 병원이 있지만, 거기서도 의사 한 명이 간단한 진료만 해줄 뿐이다. 플란지씨는 희망을 가지고 그 병원을 찾았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적인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렇게 10여 년간 종양을 방치하던 중 마다가스카르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는 이재훈 의사가 2021년 초 우연히 플란지씨를 발견했다. 이재훈 의사는 플란지씨의 거대한 종양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치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수술이 가능한 한국 병원을 수소문하던 중 서울아산병원에서 흔쾌히 응했다. 이재훈 의사는 2018년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선정한 아산상 의료봉사상 수상자로 서울아산병원과 인연이 있다.

출생신고조차 돼 있지 않았던 플란지씨는 한국을 가기 위해 1년간 입국 절차를 준비했고, 지난 8월 31일 20시간에 걸린 비행을 거쳐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9월 16일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팀은 치과ㆍ이비인후과와 협진해 8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진행했다. 15㎝ 이상의 얼굴 크기만 한 종양, 810g에 달하는 플란지씨의 거대 육아 세포종을 제거하고, 종양으로 제 기능을 못하던 아래턱을 종아리뼈를 이용해 재건한 뒤 종양 때문에 늘어난 입과 입술을 정상적인 크기로 교정하는 수술이다.

플란지씨는 영양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아 장시간의 수술을 버틸 수 있을지 염려됐지만 무사히 이겨냈고, 해맑은 미소를 되찾아 오는 5일 귀국하게 됐다.

플란지씨의 치료비 전액은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서울아산병원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플란지씨는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고 포기한 내 얼굴을 평범하게 만들어주시고,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신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에게 너무 감사하다”며 “원래는 평생 혹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좌절감뿐이었는데 수술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 꿈이 생겼다. 선교사가 되어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수술을 집도한 최종우 교수는 “다년간의 안면기형 치료 경험으로 노하우를 쌓아왔지만, 플란지씨의 경우에는 심각한 영양 결핍이어서 전신마취를 견딜지 걱정이었고 종양 크기도 거대해 염려가 컸다”며 “플란지씨가 잘 버텨 건강하게 퇴원하게 돼 다행이고, 안면기형으로 인한 심리적 위축을 극복해 앞으로는 자신감과 미소로 가득한 인생을 그려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앞서 지난 5월 경제적 어려움과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중이염을 20여 년간 방치한 인도네시아의 난청 환자 베타 옥타비아(31ㆍ여)씨를 이비인후과 정종우 교수팀이 성공적으로 치료해준 바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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