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전문가 진단] 英교수 "누가 밀었다? 군중 탓 잘못…안전관리 실패가 원인"
"사고 장소에 안전기획·인파관리 없었던듯…좁은 경사로도 원인은 아냐, 핵심은 밀집도 관리"
"이런 참사 피할 수 있다는 게 교훈…정부 당국, 군중 안전관리 기본 확실히 이해해야"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의 군중안전 전문가는 이태원 참사는 사람들이 너무 빽빽하게 모이게 방치되고 안전 관리가 잘되지 않은 것이 원인이며, 어느 개인이 미는 행동이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영국 서퍽대 초빙교수인 키스 스틸씨는 2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이메일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 참사에 관해 "피할 수 있던 상황"이라며 이처럼 말했다.
스틸 교수의 이러한 언급은 참사 현장에 있던 목격자와 생존자 사이에서 누군가 고의로 밀어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취지의 증언이 나온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경찰은 관련 의혹이 제기된 '토끼 머리띠' 남성을 1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상태다.
스틸 교수는 "군중 탓을 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그 공간은 더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었다. 안전한 환경 조성 실패가 원인"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참사가 난 곳엔 안전 기획이나 군중 관리가 있었던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개인이 초래한 일이 아니다"라며 이번 참사가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밀집도가 높아지게 둬서 생긴 사고이지, 누가 밀거나 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높은 밀집도로 인해 공간 내 압력이 서서히 높아진 결과"라며 "군중 규모가 작아도 밀집도가 높으면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스틸 교수는 "1㎡ 크기 공간에 5명 넘게 있고 이들이 움직이면 압력이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며 "핵심은 인구 밀집도를 위험 임계치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틸 교수는 이번 참사의 교훈은 "이러한 참사는 피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참사로 인해 국민이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는 상황과 관련, "위험을 알아채고 피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정부 당국이 군중 안전 관리 기본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틸 교수는 최근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여러 외신의 참사 원인 분석에 인용되며 주목을 받았다.
미 CNN 방송은 1㎡(제곱미터) 넓이의 지면에 모여선 사람 숫자 5명 정도가 임계점으로, 이를 넘어서면 움직임이 뒤엉키며 사람들이 파도치듯 쏠리는 '밀밭 효과'로 인해 대형 사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스틸 교수의 연구를 소개한 바 있다.
이태원 참사 당시 약 180㎡ 면적의 현장에 1천∼1천200명 정도가 모였다는 추정이 나오는데, 이는 ㎡ 당 5.6∼6.6명에 해당하는 수치다.
스틸 교수는 30년 이상 영국뿐 아니라 미국,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규모 행사시 군중 안전관리에 관해 컨설팅을 해온 군중 안전 전문가다. 관련 교육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다음은 키스 스틸 교수와 일문일답.
-- 이번 참사를 보고 느낀 점은.
▲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 이태원 참사는 지난달 인도네시아 축구장 사고 같은 폭력 사태가 없었고 사우디 순례 참사에 비하면 인원이 적었다. 다른 압사 사고와는 다른 특이점이 있나.
▲ 압사 사고가 나는데 대규모 군중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고밀도에 노출되는 것이 위험 요인이다.
-- 어떤 이들은 골목 위에서 누군가가 사람들을 밀면서 사고가 났다고 보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밀었다면, 그것이 참사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보나.
▲ 이번 참사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밀집도가 높아지도록 방치해서 벌어진 것이다.
압력이 큰 상황에서는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으로도 사고가 날 수 있다. 군중 내에 밀치는 힘이 한 개인이 만들어내야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여러가지 힘이 작용하며, 군중 탓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 공간은 더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었다. 원인은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데 있다.
-- 누군가가 골목 위에서 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일이 없었다면 이런 대규모 참사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 그렇지 않다. 치명적인 요인은 높은 인구 밀집도이다. 2019년 북아일랜드 쿡스타운에서는 인파가 많지 않았는데도 댄스파티가 열리는 호텔의 좁은 입구를 향해 사람들이 일제히 몰리면서 10대 3명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 옆이 막힌 좁은 경사로가 위험을 높였나.
▲ 한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원인이 아니다.
-- 1㎡ 당 위험 밀집도 임계치는.
▲ 1㎡ 당 5명이 넘고 이들이 움직이면 빠르게 압력이 커질 수 있다. 핵심은 밀집도를 위험 임계치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다.
--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실외 행사이다 보니 해방감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의견이 있다.
▲ 코로나19 규제 이후 사람들이 다시 모일 때 열정이 더 많을 수 있는데 이 점은 안전 계획시 한 요인으로 들어갔어야 한다. 참사가 난 곳엔 안전 기획이나 군중 관리가 있었던 것 같지 않다.
-- 코로나19 거리두기 기간을 지나며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행사 경험이 적었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으냐는 시선도 있다.
▲ 그런 말엔 사람들 탓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건 안전한 환경 조성에 실패한 것이다.
-- 영국은 코로나19 이후 글래스턴베리 음악 축제, 여왕 즉위 70주년 기념식, 프라이드 퍼레이드 50주년, 여왕 장례식 등 대형 행사를 치렀다. 어떻게 사고를 피할 수 있었나.
▲ 군중 안전에 관해 전문적으로 접근하고 군중 위험을 분석했기에 가능하다.
-- 이번 참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 이런 참사는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세계적 대도시인 서울은 출퇴근이나 등하교 등 일상생활에서도 과밀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를 안전하게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반인들이 이번 참사로 트라우마를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위험을 알아채고 피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정부 당국이 군중 안전 관리 기본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 군중 안전과 관련해 어떤 일을 하고 있나.
▲ 1989년부터 30년 이상 영국, 중동, 미주 등에서 런던 올림픽, 런던 새해 축제, 글래스턴베리 음악 축제, 영국 왕실 결혼, 사우디 알 하람 등 스포츠 행사, 종교행사, 축제, 대형 쇼핑몰, 거리 행사, 지하철·철도 등의 안전 관련 컨설팅을 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관련 사고에 관해 주최 측이나 피해자 등의 입장에서 전문가 분석의견을 제공하기도 한다.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은 수강생이 세계적으로 1천800명에 달한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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