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우리 땅 걷기] 섬진강변에서 당신은, 페달을 빨리 밟지 못합니다
3년 전 시작한 자전거 타기는 내 삶의 또 다른 활력소다. 바람결을 가르고 풍경에 마음을 적시면 나에겐 커다란 위로를 준다. 어느새 자전거와 나는 길동무가 되었다. 2년 전 제주 한달살기, 일본 시코쿠 순례길 등 접이식 자전거인 브롬톤을 이용해 자전거하이킹을 즐기고 난 뒤부터는 어떤 산을 자전거하이킹으로 즐길지 탐색하고 있다. 내 나름대로 브롬톤+트레킹=브롬킹이라는 용어도 만들었다.
내가 즐기는 브롬킹은 KTX나 고속버스를 이용해 트레킹 주변 도시까지 이동한 후에 트레킹 들머리까지는 자전거로 이동하니 완벽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에코여행이다. 비용도 절약하고 환경도 생각하고 체력도 좋아지니 1타 3피. 자전거 가방에 카메라, 먹거리, 음료수, 그리고 자전거 정비용 간단한 공구까지 수납할 수 있어서 무거운 배낭은 짊어지지 않아도 되니 참 편하다. 일반 산행과는 많이 비교가 되겠지만 지방의 산을 갈 때는 자전거를 이용해 이동하면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점점 그 매력에 빠지고 있다.
이번 브롬킹은 섬진강 자전거길의 용궐산과 채계산출렁다리는 걸어서 다녀오고, 강진부터 곡성까지는 가을의 풍요를 느끼며 라이딩했다.
섬진강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용궐산
강진터미널에 도착해서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전라도식 백반으로 아침을 먹었다. 손맛으로 만들어진 반찬들은 맛나고 친절한 주인장의 서글서글한 인상이 더해지니 아침식사는 더욱 더 맛있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 갈 때는 가능한 음식은 준비하지 않는다. 내가 방문하는 지역에서 음식문화를 느끼고 소비를 함으로써 그 지역경제에 작으나마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내 나름의 공정여행 원칙을 세워 지키고 있다.
강진터미널에서 섬진강 자전거길의 출발지점인 섬진강댐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섬진강 초입 진메마을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자전거를 잠시 세워놓고 요강바위에 앉아 잠시 후에 오를 용궐산을 바라본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순창은 섬진강 자전거길 종주하면서 스쳐갔던 곳이다. 고추장으로 유명한 마을이고 참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명소가 생겼다. 그 이름은 용궐산 잔도. 용궐산은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섬진강 기슭에 있는 산으로 예전에는 '용골산'으로 불렀었는데 지금은 용이 거처하는 산이라는 의미로 '용궐산'이라 부른다.
용궐산이 유명해진 이유는 산에 만들어진 잔도길인 '하늘길' 때문이다. 중국 고산에서나 볼 수 있는 까마득한 절벽의 잔도처럼 거대한 암벽 위에 만들어진 길은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난다. 그 길에 서면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과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적성 들녘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고추장의 마을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순창의 매력에 빠지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입장료도 없다.
등산로 입구에 서니 사진 찍기조차 어려운 각도로 하늘길이 보인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노출 바위에 쇠기둥을 박고 나무 데크로 계단을 만들어서 이어진 길이다. 치유의 숲 입구에서 20여 분 걸리는 하늘길 입구에 도달하는 길은 경사도가 만만치 않다. 험한 바위가 뒹구는 길이다. 하늘길에 도착해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업힐이기는 해도 데크길 덕분에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540m의 하늘길을 걸으며 임실 쪽에서 흘러들어서 순창을 지나 남원, 곡성으로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본다. 섬진강을 하늘 위에서 보는 느낌은 차원이 다르다. 산과 산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은 생명줄이다.
정상을 향한다. 거리는 짧은데 산행로는 무척 험하다. 밧줄을 잡아야 하는 구간도 있을 만큼 경사도가 심하다. 아직 정비되지 않은 등산로도 있는데 많은 사람들로 혼잡하니 위험해 보이는 구간도 있다.
용궐산 정상에 서니 하늘길에서 바라보던 섬진강의 모습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섬진강을 따라서 이어진 자전거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산길. 처음엔 육산이더니 점점 급경사에 바위구간, 계단구간이다. 길은 또 어찌나 미끄러운지 조심하며 걷는다.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치유의 숲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은 멀었다. 3시간 만에 원점회귀.
이제부터 다시 라이딩이다. 섬진강의 물길 중에서도 아름다운 길로 손꼽히는 천담마을에서 구담마을로 가는 길. 차량도 거의 없고 어쩌다 한두 사람 마주치는 조용한 강변길이다. 강바닥이 훤하게 들여다보일 정도로 깨끗한 물길이 유혹을 한다. 장군목유원지 인증센터에서 두 번째 인증도장을 찍었다.
아찔한 하늘길, 채계산출렁다리
섬진강에 취해 천천히 라이딩을 즐기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이러다 채계산출렁다리는 아래서 바라만 보고 갈 수도 있겠다 싶다. 페달링에 속도가 붙는다.
채계산을 설명하는 가장 흡족한 표현은 책여산. 책을 수만 권 쌓아놓은 듯한 모습이다. 멀리서 볼 때 채계산은 딱 책여산이다. 언뜻 보면 중국의 산을 연상하기도 한다.
까마득히 하늘에 걸린 출렁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점으로만 보인다.
출렁다리 오픈시간은 오후 6시까지. 5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제1주차장에서 올라 어드벤처 전망대를 오르지 않고서 일단 출렁다리를 건넌다. 생각보다 흔들림이 적어서 그다지 무섭다는 느낌은 없다. 바닥에 슝슝 뚫린 구멍으로 도로도 보고 숲도 보고 바쁜 걸음으로 출렁다리를 건너서 한옥정자에 도착!
건너서 바라보니 기다랗게 반대편 산에 걸쳐진 출렁다리가 아찔하다. 황금빛으로 출렁거리는 적성 평야의 풍요로움과 빨간 채계산 출렁다리가 멋지게 어우러진다. 출렁다리에서 보는 순창 들판의 아름다움은 각별하다.
30여 분 시간이 남았다. 제1주차장으로 내려오다가 내친김에 어드벤처 전망대로 뛰어 오른다. 200여 개가 넘는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라서 어드벤처 전망대에 도착했다. 채계산 봉우리가 아이스크림 콘 처럼 앉아 있었고 그 봉우리와 체계산 정상이 있는 봉우리에 걸린 출렁다리가 하나의 선으로 그어져 있다.
숙소는 금산여관이다. 구석구석 주인장의 손길이 느껴진다. 80년 된 옛날 한옥 여관을 리모델링한 곳인데 여관에 깃들여진 주인장의 정성에 놀란다. 여행객에겐 내 집처럼 편안한 침구가 최고. 뽀송뽀송한 이부자리에 완전 행복하다. 꿈같은 하룻밤에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가을의 풍요로움에 빠지다
이튿날은 첫날의 빡빡했던 일정과는 다르게 쉬엄쉬엄 향가유원지를 거쳐서 곡성으로 라이딩을 한다. 섬진강을 따라가는 길은 천담마을에서 구담마을 구간만 예쁜 건 아니다. 들판을 곁에 두고 가는 길이 목가적이다, 나 같은 초보자가 조금 길게 타고자 할 때는 섬진강 종주 자전거길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길이 예뻐서 가다 고개 돌리고, 가다 서고, 사진 찍고, 동영상 찍고 참으로 바쁘다. 출렁거리는 황금빛 들판에 몸을 맡긴다. 한국의 가을을 느끼기에 이보다 더 멋진 길이 있을까?
마지막 여정은 곡성이다. 자전거 타면서 유독 자주 가는 곡성, 곡성9경 중 하나인 섬진강 침실습지는 나의 최애장소이다. 제22호 국가지정습지인 섬진강 침실습지는 희귀 동식물의 삶의 터전이고, 수양버들이 가득한 강변에 물안개가 가득 피어나는 멋진 섬진강을 볼 수 있는 조망포인트이기도 하다.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습지로 들어서니 숨쉬기가 한결 편하다. 섬진강 옆으로 펼쳐진 습지는 보물 같은 땅이다. 해가 서산에 걸리기 시작한다. 여행의 마지막이 아쉽다기보다는 마음 가득 따스함과 즐거움이 밀려든다.
라이딩경로
강진 - 섬진강댐 인증센터 - 용궐산 - 장군목 인증센터 - 채계산 - 순창 - 향가유원지 - 곡성. 라이딩거리 약 78km
숙소
순창 금산여관
여관으로 사용하던 한옥을 리모델링한 80년 된 한옥 게스트하우스이다.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볼 수 있고 온돌방에서 뽀송뽀송한 광목천을 덮고 하룻밤을 지내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주인과 객이 따로 없을 정도로 활발하고 경쾌한 여주인 덕분에 여행자의 마음이 따스해지는 숙소이다. 순창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식당
강진 행운집
강진시장에 있는 국수전문점. 햇빛에 자연 건조시킨 수제 국수인 백양국수를 멸치 육수에 말아주는 물국수가 대표메뉴. 전라도 김치로 만든 담백하고 칼칼한 국물에 쫀득하고 부드러운 수제비도 맛있다. 물국수 5,000원, 김치수제비 6,000원
곡성 한일순대국밥
곡성의 토렴식 순대국밥 전문점. 순대국밥의 내용물을 선택할 수 있다. 피순대, 야채순대, 내장, 머릿고기 등. 피순대가 특히 맛있다. 국밥이 식으면 뜨거운 국물로 계속 토렴해 주어서 식사 내내 뜨거운 국밥을 즐길 수 있다. 국밥 7,000원, 수육 1만2,000원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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