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능선 조난자 구조] 같은 저체온증인데…작년엔 구조 실패 이번엔 성공, 왜?
공룡능선에서 조난사고가 1년 간격을 두고 발생했다. 작년 11월 9일과 올해 10월 6일, 한 달 정도 시차를 두고 흡사한 사고가 발생한 것. 저체온증 증상이 있는 고령의 조난자를 공룡능선에서 구조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작년엔 구조 후 이송하던 도중 숨졌고, 올해는 살렸다.
단순히 같은 조건이라 보긴 어렵다. 작년 11월 기온이 더 낮았고, 조난자의 상태도 심각했다. 발견 시 살아 있는 상태였으나 구조해서 이동하던 중 숨을 거뒀다. 최선을 다했으나 실패한 것. 올해 10월의 사고도 비슷한 위치에서 일어났다. 다만 작년의 사고와 하산 경로가 달랐다.
지난 10월 6일 목요일 설악산엔 비가 내렸다. 홍천에서 온 50대부터 80대 등산객 4명은 악천후임에도 산행에 나섰다. 산행 코스는 설악동을 출발해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올랐다가 공룡능선을 종주해 희운각대피소에서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하는 18km 코스였다.
일행 4명은 각자 페이스대로 산행하기로 하고 나섰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였으나 아랑곳없이 산행에 나섰다. 조난을 당한 80세 A씨는 등산 경력이 많진 않지만 둘레길 20km는 가뿐히 걸을 정도로 나름 체력에 자신이 있어 공룡능선에 도전했다고 한다.
A씨는 마등령으로 올라 공룡능선을 무사히 주파했다. 마지막 전망터인 신선대에서도 그의 뒤에는 일행 한 명이 있었다. 간식을 먹고 쉬는 동안 가장 후미였던 일행이 먼저 하산하고, A씨가 마지막으로 희운각대피소로 내려왔다. 이때가 오후 1시 30분이었다.
희운각대피소 직원의 말에 따르면 A씨는 대피소에서 판초우의를 구입했다고 한다. 이후 산길로 걸어가 하산한 걸로 여겼으나 얼마 후 다시 돌아와 천불동계곡 하산길을 물었다. 직원은 귀가 잘 안 들리나 싶어 큰 소리로 또박또박 하산길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A씨는 비바람과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잘못 들어 공룡능선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악천후에 시야가 나오지 않았고,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판단력까지 흐려져 있었던 것.
먼저 하산한 일행 3명은 A씨의 하산이 늦어지자 오후 5시 50분 119에 실종 신고를 했다. 국립공원사무소는 양폭대피소와 희운각대피소의 CCTV를 확인하고, 직원들이 수색에 나섰다. 설악동에서 천불동계곡으로 한 팀, 희운각대피소에서 신선대로 한 팀이 투입되었다. 119특수구조단 대원들은 설악동을 출발해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투입되었다.
어둠이 깊었고 호우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가을치곤 비바람이 거셌다. 구조에 투입된 대원들의 안전도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밤 11시, 119특수구조단은 국립공원사무소에 "마등령에 닿았으나 비바람이 거세고 대원들도 저체온증이 염려되어 더 이상의 수색은 어렵다"고 무선 연락을 했다. 결국 수색에 투입된 대원들은 모두 철수했다.
설악동에서 출발한 국립공원 구조대는 희운각대피소에서 1박 후 아침 일찍 공룡능선 수색에 나섰다. 119특수구조단은 설악동에서 마등령으로 올랐다. 국립공원 구조대는 오전 10시 25분 천화대와 나한봉 사이에서 A씨를 발견했다.
A씨는 비교적 건강했으나 탈진과 저체온증 초기 증상이 있었다. 체력이 떨어져 산행은 못 하는 상태였으나 같은 자리를 계속 왔다갔다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몸을 계속 움직이고 있었던 것. 경량 패딩을 입고 있었으나 밤새 내린 비로 온 몸이 젖은 상태였다. 구조대는 준비해 온 옷으로 갈아입히고, 마등령 쪽으로 갔다. A씨 발견 장소가 희운각보다는 마등령에서 가까워 더 안전한 하산 코스라 판단한 것.
119특수구조단도 합류해 함께 A씨를 이동시켰다. 평지는 걸을 수 있었으나 오르막과 내리막은 걸을 수 없어 대원들이 교대로 업고 이송했다. 비바람 탓에 헬기는 출동할 수 없었다. 마등령에 닿아 비선대로 내려갈지, 오세암으로 내려갈지 선택해야 했다. 작년과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선 것.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내려오는 3.5km는 급경사 돌길이라 위험하고 체력 소모가 큰, 악명 높은 코스이다. 맨몸으로 내려가도 좁고 위험한 돌길을 사람을 업고 내려서는 건 그야말로 극한의 고통을 수반한다. 단순히 구조대의 일로 치부하기엔 감수해야 할 것이 큰 셈이다.
반면 마등령에서 오세암으로 가면, 정비된 데크 계단을 따라 1.4km만에 암자에 닿는다.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따뜻한 방에 환자를 눕힐 수 있는 것. 저체온증 환자 구조의 최우선 과제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안정시키고 물과 음식을 섭취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몇 시간 더 걸려서 병원에 가는 것보다 암자에서 빠르게 조치를 취하는 것이 목숨을 살릴 가능성이 더 높은 셈이다.
119특수구조단 김성열 팀장은 "A씨가 마등령에서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 횡설수설하며 저체온증이 더 심해진 것. 김성열 팀장은 "저체온증 환자는 괜찮아 보이더라도 순간적으로 쇼크가 올 수 있어서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며 위급한 전조 증세로 보고, 국립공원 구조대와 상의해 오세암으로 길을 잡았다. 국립공원 측은 오세암에 전화로 협조를 구했고, 내려갔을 땐 스님들이 방을 따뜻하게 데워 놓은 상태였다.
A씨는 오세암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음식물을 섭취한 후 깊은 숙면에 들었다. 한두 시간 정도 쉬었다가 우중산행으로 하산할까 했으나 A씨를 깨워 3시간 넘는 거리를 업고 하산하는 건 무리라 판단, 암자에서 1박 후 다음날 아침 헬기로 A씨를 속초로 이송했다.
국립공원 구조대와 119특수구조단, 오세암까지 유기적으로 협력해 목숨을 살린 셈이다. 작년 11월의 사고가 오세암으로 하산하지 않아서 실패한 건 아니다. 현장에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이 많기에, 그때는 틀렸고 지금이 맞다고 단언할 수 없다.
험준하고 아름다운 바위능선의 대명사인 공룡능선에서 이와 같은 사고는 앞으로도 생길 가능성이 높다. 사고가 나선 안 되겠지만, 그래도 발생한다면, 국립공원·119·불교계가 협력해 목숨을 살리는 미담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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