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적 인지’ 실패로 대형재난… 지역사회 협력적 관리 시스템 시급
■ 권혁주의 Deep Read - 이태원 참사와 위기대응
경찰 등 재난관리 당국, ‘예측적 인지 실패 - 조정 능력 상실 - 사고 최소화 위한 통제력 부재’ 드러내
앞으로도 예상 못한 또 다른 사각지대서 위험 발생 가능성 높아… 민 · 관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돼야
지난 주말 밤 발생한 이태원 참사 비보는 국민을 깊은 슬픔에 빠트렸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3년 가까이 끌어온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오랜만에 잃어버린 젊음을 만끽하려 많은 청년들이 이태원을 찾았지만, 불의의 사고로 15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
한국 사회는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한 원인을 면밀하게 분석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국민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을 것이고 또 다른 비극이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인지-조정-통제
이번 사고는 사회적 요인에 의해 촉발된 사회적 재난으로 태풍이나 홍수로 인해 발생한 자연재해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사회적 재난은 인명과 재산 피해뿐 아니라 사고 이후에도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커다란 심리적 상처를 주고 때론 사람들 사이의 불신을 초래한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한 나머지 안전에 필요한 법규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체에 해로운 살균제에 노출되어 많은 사람이 사망하거나 후유증을 앓았던 가습기 사건이 바로 사회적 재난의 대표적 사례로서 아직도 많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심리적 고통을 주고 있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이후에 한국 사회에 커다란 사회적·정치적 후유증을 남겼다.
재난에 대한 정부 대응을 분석한 미국의 행정학자 루이스 컴포트(L Comfort)는 위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 필요한 요소로 인지(Cognition)-조정(Coordination)-통제(Control)를 제시했다. 무엇보다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사후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위기를 미리 인지할 수 있는 예측 능력이 필요하다. 인지는 공동체가 노출되는 새로운 위험의 정도를 인식하고 그 정보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인지는 비상 상황을 관리하는 중심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더불어 재난 발생 시에는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한 복구를 위해 정부 부처의 활동을 조율하는 능력,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더 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시민을 적절하게 통제할 능력이 필요하다. 이에 비춰 이태원 참사의 발생과 사후 대응 과정을 살펴보면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안을 찾아본다.
◇‘예측적 인지’의 실패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는 이태원 참사의 위험을 미리 인지하거나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이는 지난 2년 반 동안 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면서 정부가 보여준 뛰어난 재난 위험 인지능력과는 크게 대조된다. 그건 핼러윈 축제가 특정한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이고 자연발생적 행사로서, 정부의 재난 및 안전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당국이 사회적 재난 발생 위험 대상으로 인지하고 관리한 행사는 명확한 주최자가 있는 대규모 행사였다. 사전에 주최자가 행사계획을 신고하면 이에 따라 재난 안전관리본부가 안전을 위한 조치를 강구하는 구조이다. 수많은 음식점과 상인들이 자율적으로 소규모 행사를 기획하고, 그에 따라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고 이동하는 와중에서 발생한 이번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기존 안전관리 체계 안에서 재난 위험으로 포착되지 않았다.
이태원이 위치한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 등 관계기관들이 10월 30일 주말에 벌어지는 다양한 핼러윈 행사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CCTV를 통해 당일 인파 추세에 대한 모니터링도 했었다. 그렇지만 폭력과 마약 투여 등 범죄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인파 집중으로 인한 압사 사고에 대한 위험을 분명하게 인지하거나 대비하지는 못했다.
인지의 실패에 이어 심각한 문제점으로 드러난 것은 경찰의 조정 능력 상실이었다. 압사 사고가 나기 4시간 전부터 112신고가 11번이나 반복됐지만 경찰의 적절한 대처는 없었다. 용산경찰서장이 서울경찰청장에게 사고를 보고한 시점은 사고 발생 1시간 21분 후였으며, 이는 소방청이 대통령실에 보고한 시간보다 훨씬 늦은 시간이었다.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는 결국 심각한 위험에 대응하는 재난관리 시스템의 예측과 인지 능력 부족, 그리고 지휘체계의 조정 능력 상실, 사고 최소화를 위한 통제력 부재라는 연쇄적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 결과는 대형재난이었다. 정부는 특별수사팀과 감찰팀을 꾸려 직무유기, 과실 등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개인적 책임에 대한 조사뿐만 아니라 경찰조직 지휘·관리체계의 문제를 파악하고 적절한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후적 재난 대응’에 초점이 맞춰진 재난안전관리 체계를 ‘예측적 인지와 대비’를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군중 밀집도를 감지하고 예측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자연발생적으로 특정 지역에 운집한 군중을 관리할 수 있는 통제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 향후 개선 방안으로 충분히 검토돼야 한다.
이번 이태원 참사가 법과 대응 요령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것처럼 앞으로 사회적 재난 역시 예상 못 한 또 다른 사각지대에서 발생할 가능성 또한 높다. 이번 참사를 예측하지 못한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는 재난관리 당국과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난 2년 반 동안 청춘과 기회, 그리고 황금 같은 시간을 빼앗긴 젊은이들의 축제를 통한 보상·욕구심리를 파악하지 못한 데에 있다. 또 참사 지역의 수많은 음식점과 상점들이 이러한 젊은층의 수요를 의식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당국이 이러한 젊은이들의 심리를 이해했다면, 그리고 지역 중소상공인들이 이 같은 수요에 맞춰 무엇을 계획하는지 인지했다면, 그 많은 인파가 몰려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하는 가능성과 개연성을 예측하기 쉬웠을 것이다.
◇협력적 재난관리체계
앞으로의 불확실한 재난에 대해 정부 당국의 일방적인 규제와 모니터링만으로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재난의 사전적 인지를 위해 정부는 지역사회의 필요와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에 대해 귀 기울이는 한편, 시민들도 재난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떠오르는 것이 ‘지역사회의 협력적 재난관리체계 구축’이다. 재난 안전관리 당국과 지역사회의 중소상공인, 주민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적 재난에 대해서도 점차 더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용어설명
‘협력적 거버넌스’란 정부 당국과 지역사회 등 다른 조직에 소속된 행위자들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축한 일종의 ‘협치’ 구조. 국가실패나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방안으로 고안됨.
‘루이스 컴포트’는 위기상황에서의 의사결정, 재해 대비 등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행정학자.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전 세계 수많은 재해·재난 현장 연구에 참여했으며 여러 권의 책을 저술.
■ 세줄요약
인지-조정-통제 : 사회적 재난과 대형 재해는 커다란 사회적·정치적 후유증을 남김. 재난에 대하는 정부 대응을 연구한 미국의 루이스 컴포트는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 필요한 요소로 인지-조정-통제를 제시.
‘예측적 인지’의 실패 : 이태원 참사는 재난관리법의 사각지대에 있었음. 하지만 재난관리 당국의 예측과 인지 능력 부족, 지휘체계 조정 능력 상실, 사고 최소화를 위한 통제력 부재라는 연쇄적 문제점 또한 드러나고 있음.
협력적 재난관리체계 : 재난안전관리 체계가 ‘사후적 대응’이 아닌 ‘예측적 인지’를 중심으로 개편돼야. 지역사회 경찰·지자체·소방 등 당국과 중소상공인, 주민들이 의견과 정보를 나누는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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