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뱃머리의 현장 실무자들만 탓할 건가[핫이슈]

김인수 2022. 11. 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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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뱃머리에 선 실무자와
배 뒷전에서 시스템을 설계한 이들의
오류가 결합해 발생
112 신고 대응 못한 경찰뿐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제도 설계하고 만든
위정자들의 잘못 명백히 밝혀야

◆ 핫이슈 ◆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책 ‘둠 재앙의 정치학’에서 재난을 낳는 인간의 오류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뱃머리에 있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오류이고, 다른 하나는 ‘배의 뒷전’에 있는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다. 함교에 서서 직접 배를 운항하는 선장이나 조타수의 오류가 전자라고 한다면, 육지에 있는 선주나 경영자의 오류가 후자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에는 112 신고에 대응하는 파출소 경찰들이 뱃머리에 서 있던 사람들이다. 반면 경찰청장과 행정자치부 장관, 서울시장, 대통령은 배의 뒷전에 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재난은 대부분 이 두 가지 오류가 결합해 일어난다. 퍼거슨은 이 같은 점에서 “모든 재난들은 근본적으로 비슷하다”고 했다.

우리가 이태원 참사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재발을 막으려면 뱃머리에 서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배의 뒷전에 있는 사람들의 오류까지 모두 살펴야 한다. ‘파출소 경찰들이 112신고에 어떻게 그런 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라고 한탄하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뒤에서 시스템을 그렇게 설계한 ‘배의 뒷전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도 함께 보아야 한다.

두 가지 오류가 결합한 사례로 니얼 퍼거슨은 1912년 타이태닉호 침몰 사고를 제시한다. 선장은 전방에 빙산이 잔뜩 깔려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배의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전방을 살피는 역할을 맡았던 선원은 빙산이 불과 500야드 앞으로 다가왔을 때에야 비로소 빙산을 발견하게 된다. 쌍안경만 있었다면 빙산을 1000야드 앞에서 발견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쌍안경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사용하지 못했다. 1등 항해사는 빙산을 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우현”이라고 지시했으나 잘못된 판단이었다. 정면으로 빙산을 받아버리는 게 충격이 더 작았을 거라고 한다. 모두 뱃머리에 있던 사람들이 저지른 오류였다.

이것만 보고 선장이나 항해사를 처벌하면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타이태닉호에서 탑승객의 3분의 2가 사망한 데에는 뱃의 뒷전에 있는 이들의 잘못도 컸다. 우선 배의 설계에 오류가 있었다. 배가 기울면 물이 넘쳐 들어올 위험이 높게 설계돼 있었다. 구명보트 수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배에 구명보트 수를 늘리도록 규제를 강화하려고 했으나 선주들이 비용 증가를 이유로 반발했다. 타이태닉호의 선주인 화이트 스타의 회장인 J. 브루스 이즈메이는 더 많은 구명보트를 배에 실을 경우 1등석 승객들이 산책할 수 있는 갑판 공간이 좁아진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선장이 배의 속도를 늦추지 않은 것도 화이트 스타에서 운항 시간을 단축하라고 압박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배 뒷전에 있는 이들의 오류까지 모두 체크해야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보고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직후 배 뒷전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끔찍할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0월 30일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했다. “과거와 비교할 때 (참사 당일)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라는 말도 했다.

반면 뱃머리에 있던 일선 경찰은 전혀 다른 말을 한다. “몰려든 인파로 압사가 우려된다는 112신고는 매해 핼러윈과 지구촌축제, 크리스마스 시기마다 있었다“고 했다. ”압사 우려 112신고는 사고 발생지 골목길뿐만 아니라 이태원역 주변 일대 여러 곳에서 접수됐다”고도 했다. 이런 상황에 경찰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일선 경찰 관계자는 “항상 인원에 대한 고충이 있었고 늘 더 많은 인원이 필요했다. 인원 충원을 제대로 해주셨는지 관련 부서에 먼저 묻고 싶다”고 했다. “주말마다 있는 금, 토 야간근무와 이태원지구촌축제에 연이은 이태원 핼러윈 행사, 주간 연장근무와 3일 연속 야간근무에 대기시간도 없이 112신고에 뛰어온 파출소 직원들”이라는 말도 했다.

이들 눈에는 배의 뒷전에서 “우려할 만큼 사람이 모이지도 않았고 인력을 더 배치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고 말하는 상급자가 어떻게 보이겠는가. 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어쩌면 책임을 일선에 떠넘기려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일선 경찰, 다시 말해 뱃머리에 선 실무자들이 참사 사고 4시간 전부터 “압사 우려” 신고가 들어왔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건 국민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잘못 역시 분명히 밝히고 바로잡아야 한다. 불법이나 규정 위반이 있다면 일벌백계해야 한다.

동시에 배의 뒷전에 앉아 시스템을 그렇게 만든 이들의 잘못 역시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생길 때마다 권력자들은 뒤로 빠지고 일선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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