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통령도서관에 없는 것은?

김규원 기자 2022. 11. 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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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노무현·김대중·김영삼·박정희 도서관… 정부와 공동 운영하는 시민개방형 기록관 돼야
노무현시민센터. 노무현재단 제공

2022년 9월23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창덕궁 담장 바로 옆에 외벽을 연노란 벽돌로 두른 독특한 건물이 들어섰다. 바로 ‘노무현시민센터’다. 노무현시민센터는 지상 3층, 지하 3층의 건물로, 1661㎡의 터에 연면적은 5179㎡다.

노무현시민센터는 대부분 공간이 시민에게 열려 있다. 먼저 현관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지하로 내려가는 크고 넓은 계단이 보인다. 이 계단은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다. 지하 1층에 내려가면 왼쪽 벽에 노무현 대통령의 간단한 연보 ‘노무현의 길’이 나온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가운데 참여광장(라운지)과 왼쪽에 136석의 다목적홀, 오른쪽에 3개의 스튜디오(미디어센터)가 나타난다.

지하 2층 참여광장에 서면 동남 방향에서 햇빛이 잘 들어온다. 지하 2층에 천장이 없고 지하 1층도 현관으로 열려 있기 때문이다. 낮엔 등을 켜지 않아도 될 정도다. 지하 1층 난간에선 지하 2층 참여광장의 활동을 지켜볼 수 있다.

노무현시민센터 1~2층에 있는 노무현의 서재. 노무현재단 제공.

시민 민주주의 학습터

지상 1층 현관으로 올라와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로비와 ‘기부자의 벽’이 보인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노무현의 서재’가 나온다. 노무현의 서재는 책 읽는 계단과 오른쪽 벽의 책장으로 이뤄져 있다. 서울도서관의 책 읽는 계단과 닮았다.

책 읽는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엔 35자리의 열린 열람실이 나타난다. 여기서 3층으로 올라가면 카페 ‘커피 사는 세상’이다. 밖으로 테라스가 펼쳐진 훤한 카페다. 이곳 테라스에선 담장 넘어 창덕궁 후원의 숲과 의풍각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불멸의 풍경’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전숙희 와이즈건축 소장은 “건축주가 요구한 아이디어는 ‘경계 없는, 열린 공간’이었다. 그래서 지하 1~2층을 열어 지하에 라운지를 만들었고, 지상에서도 서재 계단을 통해 2~3층까지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고재순 노무현재단 사무총장은 “바로 옆 창덕궁의 돌담길이나 북촌의 언덕 같은 건물을 짓고 싶었다. 노 전 대통령처럼 시민들이 친근하게 느끼고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센터의 활동과 관련해선 “노 전 대통령의 뜻대로 ‘진보적 시민 민주주의자를 기르는 정치학습센터’로 운영해나가겠다. 시민학교와 문화사업, 시민단체 협력사업을 중심으로 한다”고 했다. 도서관(기록관)이나 기념관 역할은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있는 시민문화체험전시관에서 맡는다.

서울엔 노무현시민센터 외에 대통령도서관이 3곳 더 있다.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 옆엔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있다. 이 도서관은 김 전 대통령 퇴임 직후인 2003년 11월 아시아 최초의 대통령도서관으로 문을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이 건물과 소장 자료 전체를 연세대에 기증해 만들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앞)와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뒤).

자료 활용 못하거나 도서관 기능만

김대중도서관은 지상 5층, 지하 3층 건물이며, 터 1213㎡, 연면적 4919㎡ 규모다. 지상 1층은 전시실, 2층은 전시실과 사료실, 3층은 연세대 부속 통일연구원, 4층은 김대중평화센터, 연구실, 5층은 김대중 대통령 옛 집무실이다.

김대중도서관엔 아쉬운 점이 있다. 하나는 소장 중인 김 전 대통령 관련 자료와 책 등 25만 점을 공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시민들에게 충분히 개방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김대중도서관은 예약제로만 열며, 내부에 시민들이 책을 볼 수 있는 공간도 없다.

김대중도서관 사료연구 담당자인 장신기 박사는 “2005~2015년 정부의 1단계 지원이 도서관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데 그쳤다. 앞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활용하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 지원, 시민 후원도 없다. 비용이나 공간 문제로 도서관을 시민에게 상시 개방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동작구립 김영삼도서관.

반면 동작구립 김영삼도서관은 기록관 성격은 없지만 도서관 기능은 활발하다. 동작구 상도1동에 있는 김영삼도서관은 지상 9층, 지하 5층이며, 터 1245㎡, 연면적 6493㎡ 규모다. 2018년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가 8층만 사용하는 조건으로 건물을 동작구청에 기부했다. 동작구청은 6억원을 들여 건물 전체를 시민 대상 구립도서관으로 바꿨고, 2020년 10월 개관했다.

개관 2년을 맞은 이 도서관은 내부 면적 6046㎡, 장서 4만6천여 권, 열람실 245자리, 하루 방문자 530여 명, 인력 19명으로 동작구의 대표 도서관이 됐다. 동작구청에서 운영하는 9개 도서관 가운데 가장 크며, 구청 도서관 정책의 중심이다. 그러나 이 도서관은 김영삼 대통령의 기록관이나 기념관 노릇을 하지 못한다.

김대원 김영삼도서관장은 “김영삼 대통령의 자료는 8층 김영삼민주센터에 보관돼 있는데, 도서관과는 연계가 없다. 현재 지하 1층에 김 전 대통령 전시관을 운영 중이고, 시민들에게 김 전 대통령의 기부로 만들어진 도서관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층엔 박정희도서관이 있다. 박정희도서관은 2019년 재개관한 박 전 대통령 전문 도서관 겸 일반 도서관이다. 박 전 대통령 관련 책 9300여 권과 자료 9500여 건, 일반 책 8천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박정희도서관.

미국은 대통령 기록물 보존한 국립기록관 기능

대통령도서관이 국가 차원의 대통령기록관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를 들어 대통령도서관(겸 박물관)의 원조인 미국에선 대통령도서관이 해당 대통령의 기록물을 보존, 활용하는 국립기록관 분관이다. 반면 한국에선 대통령의 기록물은 모두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으로 넘겨지고, 대통령도서관은 대통령의 기념관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기록물 관리를 맡았던 조영삼 명지대 객원교수(전 서울기록원장)는 “미국에선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모든 대통령이 스스로 대통령도서관(실제로는 대통령기록관)을 조성해 국가에 기부해왔다. 이제 한국에서도 개별 대통령도서관을 정부와 전직 대통령이 공동으로 마련하고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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