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 따라 우르르 · 개딸에 좌지우지… ‘4류 정치’ 꼬리표 못떼
■ 창간 31주년 특집
- K 정치 실종, 미래 찾는다 ( 下 ) 민주주의 위협하는 ‘패거리 · 팬덤정치’ 실태
권력뜻 좇아 움직이는 與
당 주류와 맞지 않는 의견은
“정부 성공 방해된다” 무시돼
“친이 · 친박 대치때와 똑같아”
강성 지지층 눈치보는 野
개딸들에 찍히면 ‘전화폭탄’
의총서도 비판 목소리 못내
“결국 소수 세력에 끌려다녀”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여의도 정치에는 ‘4류’라는 비아냥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그러나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날의 정치는 오히려 ‘4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권력의 뒤만 좇는 구태 관습인 ‘패거리 정치’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고, 정부·여당을 견제해야 할 책무를 지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강성 팬덤에 붙들려 좌지우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좇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국민의힘이나,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강성 팬덤 지지층에 끌려다니는 민주당은 서로 다른 듯 닮은 모습이다. 다수가 소수의 목소리를 뭉개거나, 소수 의견이 과대 대표되며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전문가들은 물론 여야 전·현직 의원들과 당직자, 보좌진들로부터 이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보수 품격 사라지고 ‘패거리 정치’만 남아 = “여당이고 야당이고 ‘패거리 정치’가 문제지만, 우리 당은 특히 대통령의 의중을 지나치게 살피는 것 같아요.”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나조차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이렇게 개탄했다.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당이 보수 정당의 품격을 잃고 소신 없이 권력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패거리 정치’만 남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내 주류의 생각과 맞지 않는 의견은 ‘정부의 성공’을 명분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과정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비대위 전환에 반발하는 의원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박수로 추인하고 넘어가면서 ‘박수의 힘’이라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당이 ‘친이(친이명박)’와 ‘친박(친박근혜)’으로 나뉘어 패싸움을 벌이던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전 정권들의 ‘측근 정치’ ‘패거리 정치’를 비판하고 이를 개혁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윤 대통령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진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6월 장제원 의원 주최 행사에서 “국민의힘에 소속된 많은 의원은 오로지 대통령만 쳐다보고 사는 집단 아닌가 생각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다수 관계자는 패거리 정치의 원인으로 ‘공천’을 꼽는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의원 다수가 어떻게 하면 국회의원 한 번 더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더 크니 당연히 사실상 공천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이나 당 대표에게 벌벌 떨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병국 전 의원은 “패거리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공천권이고, 공천의 불합리성 때문에 공천권을 가진 사람에게 줄서기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는 ‘패거리 정치’의 원인을 양당제와 대통령제에서 찾기도 한다. 권은희 의원은 “양당 제도와 대통령제가 결합하면서 국회의원들이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망각하고 여당이 되면 정부와 일체가 되려 하고, 야당이 되면 정부를 무조건 비판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의민주제 위협하는 ‘팬덤 정치’=밤 12시마다 두 번 울리고 끊기는 전화벨.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에게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라는 뜻의 은어)으로 몰렸던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일주일간 걸려온 심야 전화로 밤잠에 들지 못했다.
“이제는 문자 폭탄이 아니라 더 지능화된 방식으로 괴롭히더군요. 밤 12시만 되면 전화벨이 두 번 울리고 끊어지는데 잠을 못 자게 하는 겁니다. 호되게 당하고 나면 의견 표명이나 행동에 있어 더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최근 이 대표의 방산주식 매매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말했던 전재수 의원, 이 대표 측근의 대선 불법 자금 수사가 진행되자 이 대표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던 김해영 전 의원 또한 개딸들의 악성 문자 폭탄과 전화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문제는 이를 ‘본보기’로 지지층과 생각이 다른 목소리를 더 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최근 의원총회에서 비판적인 지적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며 “일전에 한 의원이 비공개 의총에서 한 발언이 기사화되면서 문자 폭탄에 시달렸던 걸 모두 봤기 때문에 발언을 하는 것 자체도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민주당 인사는 팬덤 정치의 가장 큰 폐해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기본인 다양한 의견과 ‘숙의’의 실종을 꼽았다. 이 인사는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은 국민이 대표로 뽑은 국회의원이 권한을 위임받아 다양한 의견 교환과 ‘숙의’를 통해 주요한 의사결정을 하라는 것인데 팬덤에 끌려다니다 보면 지지자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에만 따라 움직이게 된다”며 “169석을 줬다는 건 정당 가치하에 정책 활동을 하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라는 것인데 그러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팬덤의 가장 큰 문제는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는 은폐되고 극히 소수의 목소리가 여론이 돼 ‘침묵의 나선’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며 “정치인들이 팬덤에 끌려다니게 되면 민의의 반영도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정치인들의 SNS를 통한 지지자들과의 직접 소통이 팬덤을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대표가 취임 후 당사에 당원 존을 만들고, 지지자들과 유튜브로 직접 소통하는 것도 팬덤의 이러한 속성을 간파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러한 팬덤 문화가 장기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파시즘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주의가 망하는 이유는 파시즘인데, 팬덤 정치가 그렇게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후민·이은지 기자 potat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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