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와의 전쟁, 남미에서 이기고 아프리카는 졌다 [사이언스샷]
뎅기열 옮기는 모기 96% 감소
아프리카에선 말라리아 환자 급증
건기에도 사는 아시아 모기 탓
인류와 모기의 승부가 일진일퇴( 一進一退)를 거듭하고 있다. 남미(南美)에서 유전자 변형 기술로 뎅기열(dengue fever)을 퍼뜨리는 모기를 100% 가까이 박멸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아프리카에서는 아시아에서 넘어온 새로운 모기 때문에 박멸 직전이던 말라리아(malaria)가 다시 퍼지고 있다.
모기와 싸워 이긴 소식은 남미에서 왔다. 영국의 바이오기업인 옥시텍(Oxitec)은 “브라질에서 유전자 변형 모기를 방사해 뎅기 바이러스를 옮기는 암컷 개체수를 96%까지 줄였다”고 지난달 25일 밝혔다.
이번 결과는 국제 학술지 ‘첨단 생명공학과 기술’에 실렸다. 모기 개체수 감소 효과는 일정 기간만 유지되지만, 정기적으로 변형 모기를 방사하면 암컷 모기가 옮기는 뎅기나 지카 바이러스의 위험을 크게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암컷에만 치명적 유전자 전달
이번 실험은 이집트숲모기(Aedes aegypti)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흰줄숲모기라고도 불리는 이 모기는 전 세계에서 매년 4억명이 감염되는 뎅기열 바이러스를 비롯해 황열병 바이러스와 치쿤구니아열 바이러스, 신생아에서 두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는 소두증(小頭症)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를 옮긴다. 암컷 모기가 피를 빨 때 병원성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간다. 살충제를 뿌려도 효과가 일시적이고 저항력을 가진 모기까지 나와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옥시텍의 켈리 메첸 박사 연구진은 이집트숲모기 수컷에 암컷만 죽이는 유전자를 집어넣었다. 유전자 변형 모기가 야생 암컷과 짝짓기를 하면 치명적 유전자가 나중에 태어난 암컷에게 전달된다. 해독제 역할을 하는 항생제가 없으면 이 암컷은 성충이 되기 전에 죽는다. 사람 피를 빨지 않는 수컷은 성충으로 자라 계속 암컷을 죽이는 유전자를 퍼뜨린다.
연구진은 OX5034이라고 명명한 유전자 변형 수컷을 2018년 5월부터 2019년 4월까지 브라질 상파울루주 인다이아투바시의 인구 밀집지역 4곳에 설치했다. 성충을 풀지 않고 수컷 알을 상자에 담아 나무에 매달았다. 알에 물만 부으면 곧 성충으로 자라 날아간다. 성충 방사는 전문 인력이 필요했지만 알을 상자에 담으면 그런 수고가 필요 없다고 옥시텍은 밝혔다. 이런 식으로 1주일에 세 번씩 모기를 풀었다.
실험 결과 유전자 변형 모기가 방사된 지역은 다른 곳보다 모기 번식기인 2018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개체수가 88~96% 감소했다. 방사 지역에서 모기를 잡아 분석해보니 유전자 변형 모기의 수컷 후손은 절반이 암컷을 죽이는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유전자 변형 수컷은 6개월에 걸쳐 6세대까지 이어지다가 사라졌다. 옥시텍은 뎅기열 환자가 많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도 유전자 변형 수컷의 알을 상자에 담아 배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모기 줄면 뎅기열 환자도 실제 감소
이번 연구진은 모기 감소로 뎅기열 환자까지 줄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서 다른 곳에서 모기를 줄이면 뎅기열 발생도 감소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2020년 비영리기구인 세계모기프로그램(WMP)은 인도네시아에서 월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모기를 퍼뜨려 뎅기열 환자 발생률을 77%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박테리아를 가진 수컷이 야생 암컷과 짝짓기를 하면 나중에 태어난 알이 부화되지 못한다. 월바키아 박테리아는 뎅기열 바이러스의 복제를 차단하므로, 박테리아에 감염된 암컷 모기에게 물려도 뎅기열에 걸리지 않는다.
옥시텍은 월바키아 박테리아를 모기에 감염시키는 것보다 유전자 변형이 훨씬 간편하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 2020년 브라질 정부로부터 유전자 변형 모기를 ‘프렌들리(Friendly)’란 상표로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지난 4월에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미국 플로리다에서 진행한 유전자 변형 모기 방사 실험이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플로리다 키 제도 주민들은 뎅기열 환자가 계속 발생하자 2020년 주민투표를 거쳐 유전자변형 모기 방사 실험을 진행하도록 했다.
◇아프리카에선 새 말라리아 모기 출현
미국 텍사스 A&M대의 재커리 아델만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유전자 변형 모기는 감염병을 줄일 잠재력이 엄청나지만 완전 박멸은 불가능하다”며 “모기 매개 질병을 박멸하려면 방충망을 설치하고 모기가 알을 낳는 고인 물을 없애는 식으로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는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가 박멸 직전까지 갔지만 아시아에서 새로운 모기 종이 들어오면서 다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아르마우어 한센 연구소의 피트숨 타데세 박사는 지난 1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미국열대의학위생학회에서 “아시아에서 온 외래종 모기가 올 초 에티오피아의 말라리아 대유행과 관련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말라리아는 아프리카 얼룩날개모기(Anopheles gambiae)가 옮긴다. 모기가 사람 피를 빨 때 옮겨간 기생 원충이 심한 고열과 오한을 유발하다가 심하면 목숨까지 빼앗는다. 말라리아는 전 세계적인 박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년 63만명 가까이 죽음으로 내몬다. 대부분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의 어린이들이 희생된다.
연구진은 10여년 전부터 아프리카에 출현한 아시아 얼룩날개모기(Anopheles stephensi)는 아프리카 모기가 살 수 없는 건기에도 번식해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 얼룩날개모기는 지난 2012년 에티오피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부티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시 지부티는 말라리아를 박멸하기 직전이었지만 이제는 매년 수천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아시아 얼룩날개모기는 이후 아프리카 동부의 에티오피아, 수단, 소말리아에서 서부 나이지리아, 중동의 예멘까지 퍼졌다. 에티오피아 동부의 디레다와시는 2019년에는 말라리아 환자가 205명이었지만 올봄에는 2400명까지 늘었다고 타데세 박사는 밝혔다.
연구진은 디레다와시의 병원 두 곳에서 치료를 받은 말라리아 환자를 대상으로 거주지 100m 이내에 어떤 모기가 있는지 조사했다. 지난 4~6월 조사한 결과 환자 거주지에서 잡은 모기는 97%가 아시아 얼룩날개모기였다.
아시아 모기가 아프리카 모기보다 건기에 강한 이유도 밝혀졌다. 에티오피아에서는 가정마다 식수통을 두고 있는데 이곳에 모기가 알을 낳으면 말라리아에 걸릴 위험이 3배나 높았다. 아시아 얼룩날개모기는 고인 물과 함께 식수통을 번식 장소로 삼아 건기에도 퍼질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마리앤 싱카 교수는 지난 1일 사이언스에 “이번 연구는 아프리카에서 갑자기 말라리아 환자가 늘어난 것이 아시아 얼룩날개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증했다”고 평가했다. 수단 하르툼대의 아이만 아흐멘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 인터뷰에서 “아프리카 말라리아 모기는 1년 중 2~3개월만 퍼지지만 아시아 모기는 1년 내내 말라리아를 퍼뜨릴 수 있다”며 “엄청난 참사가 다가오고 있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Frontiers in Bioengineering and Biotechnology, DOI: https://doi.org/10.3389/fbioe.2022.975786
2022 Annual Meeting of the American Society of Tropical Medicine and Hygiene, https://plan.core-apps.com/astmh22/abstract/d3220875-3226-4034-bc07-d3fb5bf217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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