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아는기자들] 오늘의웹툰 진수글에게 웹툰의 디즈니라는 기대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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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투자하기로 했다] 코너에선 현업 심사역이 이 스타트업에 왜 투자했는지 스토리를 공유합니다.
벤처캐피탈 심사역은 하루에도 몇 개씩 다양한 산업군에 속한 기업들을 만난다. 다양한 산업을 마주하다보니 일반인들보다 조금 나은 이해도를 보유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산업군의 기저에 깔린 핵심을 파악하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심사역도 사람이다보니 자신에게 생소한 분야는 선뜻 투자 검토를 진행하기가 꺼려진다. 웹툰이라는 콘텐츠 산업이 그런 분야였다. 막연하게 성장성이 높은 기회의 분야라고만 인지하고 있을 뿐, 회사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투자 검토를 했던 적이 없었다. 해당 시장의 밸류체인도 잘 몰랐다.
웹툰 제작사인 오늘의웹툰 진수글 대표를 만난 시점이 그런 타이밍이었다. 이런 고충을 알았던걸까. 진수글 대표는 첫 미팅 때, 웹툰의 A부터 Z를 설명했다. 내게 익숙한 벤처캐피탈 시장에 빗대어 웹툰 제작업의 핵심을 짚어준게 인상적이었다.
◇스타트업이 자신의 분야에 생소한 심사역을 만났을 때
“벤처캐피탈 업계와 웹툰 제작 시장은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심사역님이 똑똑한 창업가를 찾아다니시는 것처럼 우리는 뛰어난 신인 작가님들을 남들보다 더 빠르게 캐치할 수 있어야 하죠. 우리는 자체 개발한 웹툰 애널리틱스를 통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웹툰 원안과 작가들을 시장에서 가장 먼저 발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업계에서 우리 회사만이 가진 경쟁력이자 차별점입니다”
웹툰 제작 산업은 재미있게도 VC가 투자를 진행하는 시스템과 매우 닮아 있었다. VC, 특히 초기 투자사의 경우 성공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을 다른 투자사보다 빠르게 발굴하여 투자한 뒤, 기업이 성공적으로 성장할 경우 엑싯(Exit)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을 창업팀과 함께 나누어 가진다. 웹툰 제작 시장 또한 유사하게 흘러간다. 데뷔를 꿈꾸는 수많은 신인 작가들이 존재하고 웹툰 콘텐츠프로바이더(CP)는 그중 역량 있는 신인 작가와 원안들을 캐치해 계약한다. 그 후에는 작품 제작을 지원하고 작가를 대신해 플랫폼과 계약을 맺는 에이전시 역할도 담당한다.
작품이 소위 ‘대박’을 치면 해당 작품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작가와 나누는 구조이다. 벤처캐피탈 심사역은 항상 똑똑하고 역량 있는 창업가를 어떻게 하면 많이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공 가능성을 미리 알아볼까, 고민한다. 진수글 대표 역시 심사역들과 같은 고민을 했다. 그는 고민의 답을 갖고 있었다. 네이버에서 데이터를 다뤘던 본인의 강점을 살려 웹툰 업계에서 통용할 ‘애널리틱스 솔루션’을 고안했다. 오늘의웹툰 창업팀은 이 솔루션을 바탕으로 CTR(클릭률), 연독률, 완독률 등 데이터 분석에 기반해 독자들의 초기 반응을 확인하고 해당 작품의 성공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파악할 특별한 무기를 갖췄다. 그 결과 독자 반응이 좋은 작품들만 선별해 작품을 제작하고, 흥행 실패 리스크(Risk)를 크게 줄였다. ‘빌리 빈 단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2000년대 초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새로운 타자 평가 지표와 철저한 데이터 분석 기법을 통해 최하위권 팀이었던 오클랜드 팀을 플레이오프 진출 팀으로 올려놓은 스토리다.
◇웹툰의 주먹구구를 탈피한 솔루션...오늘의웹툰은 남보다 3배 많은 신인작가를 만난다
사실 이런 시스템은 TV 드라마나 게임 같은 콘텐츠에서 증명된 일종의 ‘파일럿 제작 시스템’이다. 전체 제작 비용이 높은 콘텐츠를 파일럿 과정에서 흥행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로 검증 후 본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다. 심지어 웹툰은 파일럿 제작 단가가 타 콘텐츠보다 낮아 이런 접근법이 보다 수월하게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다.
웹툰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아무도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 주먹구구식 발굴과 소수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흥행 가능성을 판단했다. 비효율적인 시장에서 오늘의웹툰 창업팀은 명확한 강점과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차별성을 확보했다. 새로운 시도는 정량적인 지표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의웹툰은 애널리틱스 솔루션을 통해 업계 내 주요 경쟁사 대비 약 3배가 넘는 신인 작가들의 원안을 검토했다. 또한 단순히 많은 작품을 투고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당 작품들의 재미라는 요소를 객관화된 수치로 한눈에 파악했다. 결과 향후 ‘텐트폴’(흥행작)이 될 수 있는 작품들을 새싹부터 알아봤고, 플랫폼의 연재 성공률도 크게 높였다.
웹툰 제작 시장은 한 번의 히트 작품을 만들어낸 후 다음 성공작을 만들어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즉, 성공이 다음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감에 의존한 발굴과 창작 과정, 그리고 성공으로부터 얻은 노하우가 내부에 쌓이지 못하는 문제 탓이다. 오늘의웹툰 팀은 문제의 실마리를 ‘데이터 기반의 검증’과 ‘파일럿 시스템’을 통해서 찾고자 하는 팀이다. 만약 오늘의웹툰의 방식이 정답일 경우, 우리는 글로벌 지적재산권(IP) 라인업을 대규모로 보유한 ‘웹툰 업계의 디즈니’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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