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지식사회는 배운 사람이 더 배워야 하는 사회
우리는 21세기의 인간과 사회상을 묘사할 때면 으레껏 '지식노동자'나 '지식기반사회'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그런데 이 개념을 최초로 고안한 사람이 현대 경영학의 구루로 평가되는 피터 드러커(1909-2005)라는 사실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드러커는 당대 유럽의 문화수도였던 오스트리아 빈의 명문가 출신으로, 본래 법학을 전공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유대인 조상을 둔 까닭에 가중되던 나치의 박해를 피해 30년대 초반 영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그는 당시 대립하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자기모순과 한계를 갈파한 후 곧이어 들이닥칠 전체주의 체제를 학술적으로 예측함으로써('경제인의 종말', 1939), 동시대에 히틀러와 나치정권의 본질을 거의 유일하게 간파하고 있던 윈스턴 처칠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드러커의 지식개념은, 기원전 5세기 경 소크라테스와 대결했던 프로타고라스의 사상에서 유래하며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미국 지성계의 주류를 형성한 프래그머티즘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드러커는 고급 지식과 저급 지식의 구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지식의 유일한 평가 기준은 주어진 과업에 대한 지식의 적절성 여부라고 주장했다. "지식 노동의 가치는 오직 그 효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예컨대 호텔에서 관리를 담당하는 여성이 업무와 관련해서 특별한 노하우를 가지고 매뉴얼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역시 지식노동자로 인정할 수 있다.
드러커의 신조어인 지식노동자란 전통적 차원의 자본(노동·화폐·토지)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통해 노동에 종사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근로 계층이다. 또한 지식노동자는 생산수단을 휴대할 수 있으며(뇌 속의 지식), 자신이 원하는 업무나 조직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근래에 자크 아탈리가 현대인을 자신의 지식을 가장 비싼 값으로 구입해 줄 곳을 찾아 떠도는 유목민이란 뜻에서 '호모 노마드'로 규정한 것도 사실은 이미 한 세대 전에 빛났던 드러커의 통찰에 크게 빚지고 있다.
드러커에 따르면 지식노동자는 더 이상 근로 현장의 비용이 아니라 조직의 핵심 자산이며 또한 "인적 자본"(human capital)으로 간주되는 만큼, 스스로 자기관리와 자아계발 방법을 창안하고 실행해야 한다. 즉 지식노동자는 자신의 지식을 "항상 재확인하고, 다시 배우고, 연습" 해야 하는데, 그의 활동무대인 "지식사회는 배운 사람이 더 배워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요구는 사실상 지식기반사회로 접어든 21세기가 마주한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이 점을 드러커는 이미 반세기 전에 예측하고 '자기경영노트'(1966) 등 일련의 저술을 통해 지식노동자의 미래상을 제시해 왔다. "지식노동자 개개인은 항상 CEO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드러커는 21세기 지식사회를 성공적인 오케스트라의 활동에 비유하곤 했다. 단원들은 최고의 능력을 갖춘 분야별 전문가(지식노동자)이고, 악보는 한 사회가 지향하는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목표이며, 지휘자(마에스트로)는 구성원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능력을 조화시킬 뿐만 아니라 지휘 능력과 상상력을 발휘해 단원들이 연주를 통해 얻고자 하는 비전(마음의 목표)을 도출해내는 리더라는 것이다. 동시에 지식기반사회는 고도화된 '조직사회'로도 규정될 수 있다. 미래의 조직은 프래그머티즘의 관점에서 볼 때 자체로는 사실상 무의미한 개별 지식(이론)을 연결해 새로운 생산성을 창출하는 융합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드러커는 "경영학을 발명"(고바야시 가오루)하였지만, 다른 한 편 기업과 자본가의 지나친 이익추구 행태에 대한 줄기찬 비판으로 인해 "자본주의 하에 사는 자본의 아들이면서 소위 자본주의로부터 자본을 제거해 온 사람"(잭 버티)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경영학자 이전에 법학박사, 언론인, 철학교수, 수묵화 강사 등으로 활동했던 드러커의 학문적 최종결론은 "경영은 사회적 기능이자 인문 예술(liberal arts)"이며, "배울 수는 없지만 경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자질은 천재적인 재능이 아니라 좋은 성품"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영인들이 반드시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근래 들어 건명원을 설립한 오황택 이사장 같은 이가 인문학의 가치를 이해하고 후원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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