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인 칼럼] 단풍이 곱게 물들어야 하는 이유
출근길, 아파트 울타리 화살나무가 붉은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가고 있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곱게 물든 단풍, 봄꽃보다 아름답다(霜葉紅於二月花)"고 했다.
지난 여름, 폭염과 거센 태풍이 언제 있었냐는 듯 나무는 평온하게 월동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나무는 봄이면 새잎을 돋우고 여름이면 녹음을 드리우며 가을이면 열매와 단풍을 빚어내다 겨울에는 맨 가지로 살아간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에게 아낌없는 선물을 계절마다 선사하고 있다. 우리 삶 속에 자연이 주는 복만한 것이 있을까? 이 가을, 곱게 물드는 저 단풍 앞에 잠시 발걸음을 멈춰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가을에 단풍 드는 자연의 섭리는 오묘하다. 가을이 되면 식물의 잎은 일교차로 인한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고 초록색 잎이 노란색, 빨간색 또는 갈색으로 변한다. 잎 속에 있는 색소의 분해 시기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단풍의 색상도 다양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엽록소는 광합성에 필요한 햇빛을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한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들이 가을이 돼 기온이 떨어지면 호흡량이 줄면서 당 소비도 줄어든다.
아침 저녁 일교차가 커지고 해가 짧아지면 나무들은 잎자루에 코르크처럼 단단한 세포층을 만들어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이 세포층이 만들어지면 잎으로 드나들던 당과 같은 영양분과 수분은 더 이상 공급되지 않고 이로 인해 엽록소의 광합성도 멈추게 된다. 식물에는 엽록소 외에도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 같은 보조 색소가 있다. 보조 색소들은 나무가 왕성하게 자랄 때는 녹색 엽록소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다가 엽록소의 역할이 다하면 비로소 자신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일교차가 커지는 가을의 서늘한 날씨는 엽록소를 빨리 분해시킨다. 그래서 평지보다는 일교차가 큰 산악지방이 먼저 고운 단풍이 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후변화에 따라 아름다운 단풍의 양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강수량과 일조량의 변화로 제 색깔을 내지 못하거나 쉽게 말라버리는 우중충한 단풍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단풍 드는 시기도 점점 늦어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단풍 드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게 되고 부정적 영향이 늘어나게 된다. 무엇보다 월동준비를 하는 숲에 서식하는 많은 생물들에게 혼란을 초래한다. 단풍이 늦어진다는 것은 기후변화로 가을 고온이 이어진다는 의미이며 이는 곤충, 곰팡이, 박테리아 같은 생물들의 생존기간의 변화로 숲속 생물들에게 부정적 영향도 늘어나게 된다.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 외에도 식물의 잎에 있는 카로티노이드는 태양의 빛에너지를 이용한 광합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가 식물에 손상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안토시아닌도 자외선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는 자외선 차단 기능을 한다. 가을이 시작돼 온도가 떨어지면 엽록소가 줄어들면서 감추어져 있던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이 본연의 색깔을 나타나게 되며 고운 단풍을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아울러 단풍은 가을의 열매 맺는 시기에 붉게 물듦으로써 열매를 보호하는 기능도 하게 된다. 곤충 실험 결과 빨간색에 진딧물 등이 덜 몰렸다고 한다. 즉 안토시아닌 같은 방어물질 작용으로 붉게 물든 단풍은 열매를 해충으로부터 보호하는 등 자신의 종족을 보전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막으로 역할을 한다. 이처럼 단풍이 드는 것은 추운 겨울을 살아내기 위한 나무들의 지혜라 할 수 있다.
다량의 비료 사용으로 토양에 질소가 과영양이 되거나 토양이 오염되면 나무는 당분을 덜 저장하게 되며 이는 단풍 색깔도 제 모습을 잃게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울러 기후변화는 식생대의 서식 한계선을 변화시켜 단풍이 고운 식생들의 한계선이 점차 북상하고 있다. 우리 후손들은 오늘 우리가 보는 화려한 색채의 단풍을 쉽게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봄꽃도, 곱게 물든 가을 단풍도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잘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가능한 것이다. 곱게 물든 단풍은 건강한 생태계의 상징이자 아름다운 자연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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