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퀄컴 특허 소송의 내막…삼성전자에 '불똥' 튀나
세계적 반도체 설계기업(팹리스)인 영국 ARM이 미국의 모바일 반도체 업체 퀄컴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소송에서 다른 업체들이 자사의 설계자산(IP)을 맞춤형 반도체 생산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사업모델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ARM의 중앙처리장치(CPU)를 기반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신경망처리장치(NPU) 등을 독자 설계해 맞춤형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생산하는 퀄컴과 삼성전자 등을 겨냥한 조치로, 반도체 업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ARM은 지난 8월 31일(현지시간) 퀄컴을 상대로 자사 기술의 무단 사용을 중단하라며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분쟁은 퀄컴이 지난해 1월 반도체 스타트업 누비아(NUVIA)를 인수한 데서 비롯됐다.
누비아는 ARM 출신으로 애플에서 9년간 아이폰용 AP 설계를 담당했던 수석 칩 디자이너 제럴드 윌리엄스 3세가 애플에서 함께 일했던 마누 굴라티, 존 브루노와 2019년 공동 창업한 CPU 전문 설계 회사다.
퀄컴은 누비아를 전액 현금거래로 14억달러(약 1조9천억원)에 인수하면서 누비아의 뛰어난 CPU 설계 역량을 '스냅드래곤' 등 기존 모바일 AP 제조에 투입하는 것을 넘어 노트북용 또는 데이터센터용 시스템온칩(SoC) 설계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RM은 소장에서 "자사가 사용권을 제공한 핵심 기술인 '명령어 집합체'(Instruction Set Architecture·ISA)를 누비아가 활용해 CPU를 설계했다"며 "지난 3월 누비아와의 사용권 계약이 끝났는데도 퀄컴이 이를 무단으로 넘겨받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퀄컴은 "자사와 누비아 모두 ARM의 ISA를 맞춤형 반도체 설계에 활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기술 사용 권한을 갖고 있다"며 "ARM은 퀄컴의 기술적 혁신을 방해할 아무런 권리도 없다"고 반박했다.
앞서 ARM과 퀄컴은 누비아가 보유했던 종전 사용권 계약의 승계와 수수료율의 갱신 등을 두고 1년 넘게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특허 분쟁이 결국 소송전으로 번진 것이다.
퀄컴은 ARM의 '코어텍스(Cortex)' CPU 기반의 AP인 스냅드래곤을 통해 지난해 전세계 스마트폰 AP 시장에서 매출액 기준 37.7%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한 업체다. ARM이 최대 고객사 중 하나인 퀄컴을 상대로 낸 이번 소송의 파장은 점차 커지고 있다.
퀄컴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ARM을 상대로 맞소송을 내면서 "ARM이 퀄컴과 맺은 사용권 계약에 대해 다른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ARM이 설계자산 활용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사업모델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퀄컴이 법원에 제출한 반소 소장에 따르면 ARM은 2024년 이후에는 퀄컴 같은 설계회사에 CPU 사용권을 부여하지 않고, 대신 삼성전자와 애플 같은 최종 스마트폰 제조업체와 별도의 계약을 맺어 반도체 설계자산을 제공하기로 했다.
ARM은 나아가 이들 업체들이 자사의 CPU를 기반으로 SoC를 만들 때 CPU와 NPU, 이미지처리장치(ISP) 등을 독자적으로 설계할 수 없으며 자사의 설계자산으로만 전체 칩셋을 구성하도록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가령 삼성전자는 지난 1월 Arm의 최신 CPU 아키텍처 'Armv9'을 기반으로 삼고, 여기에 AMD와 공동 개발한 GPU '엑스클립스'를 탑재한 AP '엑시노스 2200'을 출시했는데, ARM의 새 사업모델에 의하면 앞으로 이런 맞춤형 AP 생산은 불가능해진다.
미국 정보기술(IT) 매체 세미애널리시스의 수석 분석가인 딜런 파텔(Dylan Patel)은 "ARM이 퀄컴과 다른 반도체 업체에 대한 위협으로 매우 더럽게 굴고 있다"며 "삼성전자와 미디어텍 등 ARM의 고객사는 무척 두려워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IT 매체 샘모바일도 "ARM이 공개적으로 사업모델 변경 등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이 문건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삼성전자와 AMD의 협력관계는 사실상 종료되고 삼성전자는 ARM의 '말리' GPU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소송이 스마트폰 생산 생태계 전반에 미칠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모바일 AP 설계 분야에서 ARM의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세계 스마트폰 1위 제조사인 삼성전자는 내부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소송은 ARM과 퀄컴 두 회사뿐만 아니라 반도체 산업 전반에 걸쳐있는 사안"이라며 "애플과 달리 자체 CPU 없이 ARM의 설계자산을 활용하는 삼성전자에는 ARM의 사업모델 변경이 향후 사업전략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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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종관 기자 panic@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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