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감찰·수사 지켜볼 것”… 이상민·윤희근 경질 수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현미 2022. 11. 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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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여론 일자 입장 급선회
112 부실 대응 원인 조사 진행
경찰 지휘라인 인사 조치 예고
행안부 장관 문책 가능성 묻자
“尹, 이런저런 이야기 듣고 있다”
與서 책임자 경질 목소리 높아
안철수 “李장관 자진사퇴” 촉구
유승민 “정부 재구성 각오해야”
“경찰, 인명피해 우려 땐 조치 의무”
대법원 과거 국가배상책임 인정
법무부, 피해자 법률지원 한다며
“국가배상 상담 신중히” 요청 논란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압사 참사’ 당시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사실이 112 신고 기록을 통해 밝혀지면서 수사와 감찰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책임자에 대한 인사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라인에 대한 경질 요구가 여권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지난 1일 윤희근 경찰청장(왼쪽)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일 통화에서 사고 책임자에 대한 인사조치 가능성에 대해 “지금 수사와 감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으니까 그 결과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 경질 가능성에 대해 “윤 대통령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여당에서도 이 장관 경질을 기정사실로 하는 분위기’라는 지적에 “누가 얼마나 무슨 잘못을 했는지 철저한 감찰과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며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참사 책임에 대한 대통령실의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당초 사고 발생 직후 ‘정부 책임’보다는 사고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기조를 보였다.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행사에 대한 안전 사각지대가 있다며 제도적 보완에 방점을 찍었다.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기 전인 지난 1일 오전 대통령실 내부에선 “주최자가 없는 행사는 경찰이 도로 통제를 하거나 바리케이드를 칠 제도적 근거가 없다”며 이 장관을 두둔하는 목소리가 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브리핑에서 이 장관의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발언에 대해 “경찰에 부여된 권한과 제도로는 선제적 대응이 어렵다는 취지”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112 녹취록 공개 이후 경찰의 부실 대응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대통령실은 경찰과 거리두기 하며 감찰·수사 결과가 나오면 책임자를 문책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참사의 진상조사 주체가 여전히 경찰인 게 맞느냐’는 질문에 “서울경찰청이 수사 주체였는데 여러 논란과 우려가 있어 경찰청으로 주체가 바뀌었다”며 “(경찰청 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서 독자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여러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전경. 연합뉴스
여당에서도 책임자를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윤 청장을 즉시 경질해야 한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며 “사고 수습 후 이 장관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거론하며 “대통령은 정부를 재구성하겠다는 각오로 엄정하게 이번 참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사고 발생 이후 1시간 20여분 뒤에 사고 사실을 인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날 브리핑에서 사고 당일 대통령실의 대응 과정을 상세히 공개하기도 했다. 이 부대변인은 “지난달 29일 밤 10시15분에 사고가 발생했고 11시1분 대통령께 보고돼 11시21분 첫 지시를 내렸다”며 “이후 30일 0시16분 2차 지시사항을 언론에 배포한 뒤 0시42분 윤 대통령이 위기관리센터에서 직접 긴급 상황점검회의 주재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경찰이 대통령실에 언제 보고했는지’에 대해선 “지난달 30일 0시5분 경찰청으로부터 상황보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전날 윤 대통령이 112 신고 기록 등에 대해 보고를 받으며 크게 질타한 것에 대해 “최초 신고를 받은 이후 경찰 대응이 석연치 않아 보여서 ‘자료를 갖고 오라’고 (윤 대통령이) 지시했고 확인해보니 엉망이었다”며 “경찰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진단한 뒤 대안을 세우려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112 신고 관련 보고를 받고는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진상을 밝히라”고 지시한 바 있다.

◆신고묵살 녹취록 공개에… 법조계 “국가배상 가능성 커져”

‘이태원 압사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4시간 동안 경찰이 11차례의 112 신고를 받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 책임론이 거세다. 경찰이 수차례 위급성을 알리는 구체적 신고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필요한 조치를 안 했다면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1998년 5월 이른바 ‘김제 쌀시장 개방 반대 농민 시위’ 사건과 관련해 정모씨 등 2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31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추모객이 헌화하고 있다. 뉴스1
경찰은 1993년 12월 전북 김제에서 발생한 농민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열쇠를 빼앗은 트랙터를 시위 종료 후 도로에 그대로 방치했는데, 정씨 등이 이를 피하려다가 길을 이탈해 사고를 당하자 소송을 낸 사건이다. 대법원은 트랙터를 도로에 방치한 경찰관의 행위가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경찰관이 인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때에는 조치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이는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정부 측이 “경찰에 부여된 권한이나 제도로는 이태원 참사를 예방하고 선제 대응하기 어렵다”고 해명한 것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현재 공개된 녹취록 내용만 보더라도 복수의 신고자들이 상당히 구체적인 신고를 여러 건 했는데도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경찰이 구체적으로 위험을 알 수 있었던 상황인데도 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나온 만큼 국가 배상 책임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전날 이태원 압사 참사를 예방하지 못하고 관련 대응도 미흡했다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오세훈 서울시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사건을 접수한 공수처는 수사대상 범위에 해당하는지, 범죄 구성 요건 등을 따져 수사 착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산하 기관인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지원단을 구성해 이태원 압사 참사에서 발생한 피해 관련 소송 절차를 지원하고 사망자의 지원금·보험금 청구 관련 상담을 시작하기로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참사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피해자와 유족의 피해 회복을 위한 법률지원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지시한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법률지원단이 국가배상소송에 대해 상담자들에게 “국가 책임과 관련해 신중한 상담을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피해자들 지원에 소극적 대응을 주문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이에대해 “현재는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승소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만큼 단정적으로 상담하기에는 이르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이현미·박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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