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스마트폰·가전’ 소비 둔화에 삼성 ‘포트폴리오 삼총사’ 흔들린다
스마트폰·가전 출하량 ‘뚝’…반도체도 악화
삼성전자, 3분기 어닝 쇼크 이어 4분기도 불안
최근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둔화로 삼성전자 실적을 지탱해오던 ‘포트폴리오 삼총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부품(반도체, 디스플레이)과 완제품(스마트폰, 가전, TV)을 동시에 만드는 회사다. 주력 사업이 하나면 경기에 따라 실적이 심하게 흔들릴 수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가전 등 다양한 사업 부문을 갖춘 삼성전자는 그간 큰 기복 없이 실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포트폴리오의 힘’을 갖춘 삼성전자마저 최근 ‘고물가→금리 인상→경기 침체→소비 둔화’로 이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S) 공포에 흔들리고 있다. 국가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고물가, 금리 인상에도 경제를 지탱해줬던 소비는 ‘최후의 보루’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최근 한국을 비롯해 미국 등 주요국에서의 소비 심리가 둔화하고 있다. 수요 침체로 삼성전자의 자체 완제품 판매가 줄고, 부품 부문마저 실적이 악화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 고물가에 소비는 줄고 ‘S공포’ 확산
3일 통계청의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9월 전산업 생산(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 지수는 117.0(2015년=100)으로 전월보다 0.6% 감소했다. 전산업생산은 7월(-0.2%), 8월(-0.1%)에 이어 석 달 연속으로 감소세를 이어갔다.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계절조정)는 120.8(2015년=100)로 1.8% 감소했다. 소비는 3월(-0.7%)부터 7월(-0.4%)까지 5개월 연속으로 감소했다가 8월 반등에 성공했지만, 한 달 만에 다시 감소로 돌아섰다. 물가는 6%대에서 다소 줄었지만, 당분간 5%대 고물가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는 오르는 상황에서 수요가 둔화하면서 생산이 줄고 경기가 침체하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시그널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주던 소비까지 다시 둔화하는 분위기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난달 24일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의 경제정책’ 세미나에서 “미국 등 주요국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고, 한국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초입단계다”라며 “앞으로 경제성장이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포트폴리오는 크게 DS(반도체·디스플레이)와 DX(스마트폰, 가전, 네트워크, 의료기기 등) 등 2가지 사업 부문으로 구분된다. 과거에는 가전과 스마트폰이 각자 CE와 IM사업부문으로 분리돼 운영됐지만,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스마트폰과 가전의 시너지가 필요해지면서 지난해 12월 사업부를 DX로 통합했다. 사업 부문을 세분화하면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네트워크 등 4가지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의 포트폴리오는 그간 위기 때마다 빛을 발했다. 2019년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락으로 저조한 실적을 기록하자, 당시 IM사업부문에서 갤럭시노트10이 최단기간 100만대 판매를 돌파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면서 버팀목이 됐다. 여기에 갤럭시 A시리즈도 많이 팔려 호실적을 이끌었다.
스마트폰 사업 초창기인 2013~2014년에는 스마트폰이 삼성전자 실적 전체를 끌고 나갔다. 2013년 3분기에는 스마트폰 사업(IM부문) 영업이익이 6조7000억원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고, 갤럭시 노트7 단종 등으로 위기 상황이 되자 반도체가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오면서 삼성전자는 2017년 2분기부터 2018년 4분기까지 7분기 연속 영업이익 10조원 이상을 달성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스마트폰-가전’으로 이어지는 삼성전자의 ‘삼각축’이 가진 힘이 꾸준히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보고 있다. 사업별로 수요·공급 사이클의 시차가 존재하면서 전체적인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효과로 작용하는 것이다.
◇ 소비 사라지자 포트폴리오 삼총사 직격탄
하지만 삼성전자의 포트폴리오 사업구조는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소비 둔화를 동반한 경기 침체 상황에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유럽의 에너지 위기, 공급망 교란,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까지 경제 불확실성을 높이는 지뢰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푼 유동성으로 고물가 상황이 발생하자,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해 미국이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소비 침체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앞으로 소비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떨어지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10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에 비해 2.6포인트 하락한 88.8을 기록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6개 주요지수를 이용해 산출한 심리지표로 이 수치가 100보다 크면 장기평균보다 낙관적임을, 100보다 작으면 비관적임을 의미다. 한은은 “민간소비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올해 2분기 이후 대면 서비스 소비를 중심으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으나 최근 고인플레이션 지속, 금리 상승,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회복세가 빠르게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 둔화의 시그널은 한국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0월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도 102.5로 9월의 107.8에서 하락했다. 3개월 만에 내림세로 전환한 것이다. 인플레이션 압력과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로 미국 가계의 소비심리가 악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소비 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GfK는 선행지수인 11월 소비자신뢰지수가 마이너스(-)41.9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 3분기 삼성전자의 실적은 어닝 쇼크(실적 충격)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10조8520억원으로 전년 3분기 대비 31.4% 감소했다. 실적 악화는 영업이익이 49.1%나 줄어든 반도체 부문 때문이다. 원자잿값 상승 등으로 영상디스플레이(VD)·가전 부문도 3분기 영업이익(2500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67.1% 감소했다. 그나마 스마트폰 부문에서 갤럭시폴드4, 플립4 등 신형 폴더블(접는) 스마트폰 제품에 힘입어 선방했지만 시장 자체가 위축된 상황에서 전체 실적을 견인하지 못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4분기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이 전년과 비교해 3% 감소한 13억5700만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TV 출하량을 3.8% 감소한 2억200만대로 전망했다. 또 트렌드포스는 내년 서버용 D램 시장의 성장률을 7%로 전망했다. 2016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10%대를 내려온다는 예측이다.
삼성전자 4분기 실적도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 증권사 전망치(컨센서스)는 현재 8조768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13조8700억원과 비교해 36.8% 감소한 수준이다. 3분기 실적이 발표된 이후에는 4분기 영업이익을 7조원대로 낮추는 증권사도 잇따라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영학과 교수는 “포트폴리오라는 것은 경기가 나쁘더라도 여러 가지 소비가 있다는 상황에서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라며 “경제 불확실성으로 기업이 투자를 줄이거나 멈추고 있고,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는 상황에서는 포트폴리오 구조가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경제 침체 시기에 3~5년 후를 내다보는 신기술 개발과 선제적인 투자를 과감하게 집행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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