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0년 만의 호시절에도 웃지 못하는 조선업계
[아이뉴스24 김종성 기자] 조선업계가 10년 만에 돌아온 수주 호황에도 마냥 웃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장기간 실적 부진에 시달리며 구조조정을 통해 대규모 인원 감축 등으로 버텨온 조선업계는 최근 일감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정작 일할 사람이 모자라 골치다.
그에 더해 오래 묵혀둔 노사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가까스로 실적이 회복세로 돌아서고 몇 년 치 일감이 밀려들자 그동안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감내했던 노동조합도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3사(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노조는 일제히 투표를 통해 파업을 가결하며 합법적인 파업 권한을 획득했다. 조선 3사 노조는 사측과 협상을 진행하겠지만, 교섭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올해 임금·단체협상 타결을 목표로 간부 중심 상경 투쟁, 3사 노조 동시·순환 파업 등을 진행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이들 3사가 동시에 파업을 벌이는 첫 사례가 된다.
노조 측은 "경영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협,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핑계로 3사 임금‧단체협약을 지지부진하게 끌고 있다"며 "사측이 미온적이면 동시·순환 파업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선 3사 노조는 공동으로 임금 14만2천300원 인상(호봉승급분 별도), 성과급 250%+α 보장, 임금피크제 폐지, 신규 채용, 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부문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노조 파업 우려와 관련해 "계속해서 협상을 이어가고 있고, 노조는 향후 교섭 진행상황 봐서 파업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금 당장은 파업에 대한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가 파업 카드를 쥐고 협상력을 높이는 가운데 사측과 서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선 3사 연대 파업에 따른 대규모 생산 차질 우려도 커지고 있다.
파업이 현실화하면 가뜩이나 인력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이제 막 회복세로 돌아선 조선업계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조 규모를 감안해 2027년까지 조선 산업에 필요한 인력은 13만5천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세부적으로는 지난해 말보다 추가로 필요한 인력 규모는 연구·설계 4천명, 생산 3만7천명, 기타(사무·별정 전문직 등) 2천명 등이다.
조선업 종사자 수는 2014년 20만3천441명을 최고치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 7월 기준 9만2천394명으로 54.5% 감소했다. 특히 이 기간 조선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설계 연구 인력, 생산 인력은 각각 6천645명, 9만8천3명 감소해 조선업 기술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조선업계 내부에선 설계 인력을 비롯해 숙련공을 구하기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대한조선·케이조선 등 조선 4사가 현대중공업그룹 조선사들이 자사 핵심인력을 부당하게 유인, 채용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까지 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인력난에 경쟁사 간 갈등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3사의 연대 파업 우려까지 겹치며 현재 조선업 인력구조의 부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일부 조선사들이 흑자로 돌아서는 등 실적 반등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상당수 조선사들이 적자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주 호황을 계기로 그동안 고착화된 저임금 등 처우 개선 문제는 지속적으로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의 노사가 서로 한발씩 물러나 원만한 합의를 이룬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조선업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노사 갈등의 리스크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결국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조선업계 인력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외국인력 수급과 국내 인력 양성을 비롯해 특별연장근로 한도 확대, 원·하청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위한 상생협의체 구성 등 잇단 대책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조선업의 특성상 수주 물량이 늘어도 실제 실적으로 반영되기까지는 1년 이상 걸린다. 더 큰 문제는 조선업 '슈퍼사이클'이 끝난 이후다. 지난 10년과도 같은 불황이 없을 것이란 보장은 누구도 못 한다. 쳇바퀴 돌듯 실적 부진과 구조조정이 뒤따른다면 노사 갈등 리스크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수주 호황 자체에 고무되기보다 국가 기간 산업으로 국내 경제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던 조선업계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정부는 미래지향적 중장기 계획을 세워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업계는 저가수주 경쟁으로 몸살을 앓았던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설 때다. 노사의 공존과 공생도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
돌아온 슈퍼사이클은 국내 조선업 미래 생존의 시험대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지만, 노를 저어 어디로 향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김종성 기자(stare@inews24.com)▶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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