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훈련 동영상으로 대체했어요"..교사들이 본 안전교육 실태는

유승목 기자 2022. 11. 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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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당국, 이태원 참사 관련해 안전교육 매뉴얼 보강대책…일선 교사들 "인프라 부족 등 안전교육 여건 열악"
지난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열악한 학교는 체육관도 없어서 CPR(심폐소생술) 교육도 어려워요."
"재난안전 체험시설이 있긴 한데미리 신청도 해야하고, 여건 때문에 다녀온 학급을 많이 보진 못했네요."

이태원 참사로 중·고등학생 6명을 포함해 10~20대가 다수 사망한 가운데 실효성 낮은 학교 안전교육이 사고를 키웠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학교에서 철저한 안전교육이 선행됐다면 피해를 어느 정도 예방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교육당국도 학교 안전교육 사각지대를 없애고 위기상황 대처역량을 높이기 위한 관련 교육 매뉴얼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교육현장의 반응은 다소 회의적이다. 안전의식을 함양하고 사고 대처 역량을 키울 수 있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관련 인프라 확충이나 교육시스템 개선, 교사 부담 해소 등을 도외시한 안전교육 매뉴얼 강화는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단 비판이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가슴에 검은색 리본을 달고 압사사고 관련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

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교육부는 이태원 사고와 관련해 학교 안전교육 매뉴얼 보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다중밀집장소, 개인이동장치, 동물물림사고 등 새로운 안전교육을 추가하고 심폐소생술 같은 응급처치교육을 실습중심으로 운영하는 게 골자다. 교육부 관계자는 "다중밀집장소 등 일상생활에서의 위험에 대한 대응 역량을 함양하기 위해 '학교안전교육 7대 표준안'을 개편 중"이라고 밝혔다.

대규모 인파가 밀집할 때 주의사항 등을 미리 가르쳤다면 피해를 줄였을 것이란 교육계 안팎의 진단에 따른 조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번 이태원 압사 사고로 156명이 사망했는데, 이 중 10~20대가 116명으로 집계됐다.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미성년자도 포함됐다. 재난안전 전문가인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번 참사는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며 "어릴 때부터 행동요령 등을 가르쳤다면 사고예방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체육관 없어 CPR도 못 가르쳐"
지난 1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이 가슴에 검은색 리본을 달아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
문제는 보강된 안전교육 매뉴얼이 현장에 제대로 착근될 수 있느냐 여부다.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일선 교사들이 안전 매뉴얼 보강 대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다. 안전교육 표준안에 군중 밀집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이 추가되더라도,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단 우려 때문이다.

교사들은 체험위주 교육이 가능할 정도로 인프라가 확보되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A교사는 "열악한 학교는 체육관이나 강당도 없어 CPR 교육이 어렵고, 체육관이 있더라도 특별한 안전교육 시설은 갖추지 않았다"며 "책상 밑으로 숨는 지진대피, 운동장으로 모이는 재난대피, 소방서 협조를 받아 살수차 동원하는 화재대피가 재난대피훈련의 끝"이라고 설명했다.

B교사는 "교육청 산하 과학관에 간단한 체험시설이 있어 참여한 적은 있지만, 대형 종합시설은 (학사일정 여건 등으로) 다녀온 학급을 많이 보지 못했다"며 "코로나19(COVID-19)로 인해 올해는 대피훈련도 없이 시청각자료로 대체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일선 교사들의 안전한 생활 지도 방법을 물은 결과 '동영상을 활용한 수업을 한다'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지난 1일 오전 대구 달서구 성지초등학교 안전체험교실에서 학생들이 심폐소생술(CPR) 교육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비효율적인 교육과정도 효과적인 안전교육의 걸림돌이다. A교사는 "초등학교 3~6학년 안전교육은 크게 체육과 창의적체험활동(창체)를 통해 지도한다"며 "창체의 경우 범교과 학습주제 만으로도 정해진 창체 수업시수보다 많고, 고학년의 경우 수업내용도 많아 관련 수업시수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학사일정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안전교육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란 얘기다.

교육 전문성 확보도 여의치 않다. B교사는 "초등 1~2학년 '안전한 생활' 교과의 경우 과거 교과전담 교사 TO(인원)가 많았을 땐 전담교사가 들어가 수업시수 확보도 용이하고 깊이 있는 수업을 했다"면서 "보건·사서·영양 등 비교과 TO가 많아지고 수업하는 교사 TO가 줄어들면서 이와 관련한 전담교사를 배치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교사들은 마지막으로 안전교육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A교사는 "모든 사고를 교사가 책임지는 구조라 오히려 '안전'상의 이유로 체험학습이 줄어드는 추세"라며 "안전교육을 체득하려면 어린 시절부터 배워야 한다는 점에서 초등학교에서부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B교사는 "안전교육으로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 당연히 학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도 "단순히 교육으로 모든걸 해결할 수 있다는 교육 만능주의엔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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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목 기자 mo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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