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구조 묵살당한 4시간’···경찰 전문가가 본 초동대응 실패 원인은
경비·치안 담당 기동대 사전 미배치해 사태 키워
경찰청·서울청 지휘부 사고 때 지휘체계 '실종'
책임 확인되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 가능성
경찰이 11번의 신고를 받고도 이태원 압사 참사를 막지 못한 원인을 두고 전문가들은 현장경찰 대응보다 지휘부의 오판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112 신고가 상급기관에 먼저 접수되는 경찰의 대응절차를 고려할 때 지휘부는 어떤 식으로든 신고 상황을 인지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책임소재가 분명해질 경우 참사에 책임이 있는 관계자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형사처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112 신고 녹취록을 분석해보면 신고자가 9번이나 ‘압사’를 언급하는 등 일선 파출소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참사 당시 10만여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렸던 만큼 일선 파출소 순찰경찰 한 두명이 이를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경찰 역시 “최근에는 순찰차에 GPS장치가 있고, 출동과 종결 보고서를 쓰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보고를 하지않는 상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112신고 대응절차를 고려할 때 인파 신고가 참사 당일인 29일 오후 6시 34분터 사고 직전까지 11차례에 걸쳐 4시간여 가량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에 접수된 점에 주목했다. 통상 112 신고는 상급기관인 각·시도경찰청 112종합상황실로 접수되고 상황실은 신고의 긴급성에 따라 0~4단계 코드를 부여해 관할경찰서에 신고 내용을 내려보낸다. 순찰 경찰의 보고가 부실했더라도 서울경찰청은 압사 경고를 알리는 신고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요 사안을 놓친 서울경찰청의 대응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30년 넘게 경찰에서 재직한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계속들어왔을 때 서울청 상황실장이 기동대 경력을 투입하거나 현장 간부를 급파하는 등 초동 대처를 했어야 했는데 그 부분이 미흡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전조치에 대한 경찰 지휘부의 오판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경찰은 참사 당일 예년보다 많은 경비인력을 배치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기동대 인력은 투입하지 않았다. 올해 배치된 경력이 전년대비 많아졌지만 경비, 안전보다 수사, 교통 인력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지휘부의 판단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경찰은 2021년에는 핼러윈 행사 때 기동대 3중대를 동원한 바 있다. 황 의원은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사고 현장 주변에 기동대 경력이 많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을 투입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의 지휘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점도 사태를 키운 요인으로 거론된다. 경찰 최상위 기관인 경찰청은 최초 신고 접수가 된 후 2시간 가까이 사태파악도 못 한 것으로 파악된다. 서울 치안을 책임지는 서울경찰청장 역시 사고 발생 후 1시간이 넘도록 사고 관련 보고를 받지 못 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수뇌부에 대한 책임론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참사 대응과 관련 과실이 분명한 담당 경찰관과 지휘부는 지휘·감독 소홀 등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집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면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경찰의 112 신고 부실대응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셀프 감찰’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책임을 져야 할 경찰이 수사주체로 나설경우 수사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없는 만큼 감사원 등 제3의 기관이 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다만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민적 질타와 관심이 큰 만큼 경찰이 신뢰회복을 위해 타 기관보다 더 강도높게 감찰에 들어갈 것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는 “경찰 내부 사정을 모르는 제3의 기관이 감찰을 맡을 경우 상황파악이 더뎌 비효율적”이라며 “경찰이 어떻게 감찰을 하는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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