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이태원 참사 '강제수사' 착수... 초점은 ①112신고 묵살 ②용산서·서울청 無대응
112신고 및 핼러윈 경비계획 자료 등 확보
경찰청 "4건만 출동" vs 파출소 "전부 출동"
서울청·용산서 '잘못된 판단' 규명이 핵심
‘이태원 핼러윈 참사’ 원인 규명을 위해 꾸려진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2일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등 8곳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전날 “미흡한 현장 대응”을 이유로 특수본을 통한 결자해지를 공언한 윤희근 경찰청장의 지시 하루 만이다.
수사 방향은 크게 세 갈래다. ①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압사 위험을 알리는 신고를 다수 접수한 이태원파출소의 초동 대응은 적절했는지 ②이 과정에서 상급 기관인 용산서와 서울청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③사고 예방을 위한 경찰과 용산구청 등의 안전대책은 있었는지다. 실제 특수본은 이날 압수수색을 통해 서울청과 용산서 등에서 참사 당일 112신고 관련 자료와 핼러윈 경비 계획 문건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①이태원파출소, '압사' 신고 묵살했나?
수사 출발점은 이태원파출소의 ‘112신고 묵살’ 의혹이다. 경찰청이 전날 공개한 112신고 녹취록을 보면, 지난달 29일 참사 발생 3시간 41분 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 “인파가 많으니 통제해달라”는 내용의 112신고 11건이 이태원파출소에 접수됐다. 하지만 파출소 경찰관들은 4건만 현장에 나가 조치했다는 취지로 기록을 남겼다. 윤 청장이 “현장의 신고 대응이 미흡했다”며 고강도 감찰 및 수사를 지시한 배경이다.
파출소 측 얘기는 다르다. “7건은 출동하지 않았다”는 경찰 지휘부 설명의 사실관계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가령 사고 당일 오후 9시를 기점으로 2~5분 간격으로 비슷한 신고 4건이 들어왔는데, 이 경우 ‘동일’ 건으로 묶어 현장에 나가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류상에는 ‘1건 출동, 3건 상담 종결’로 기록됐다는 주장이다. 사고 발생 4분 전 접수된 마지막 신고도 신고자가 추후 “잘 빠져나와 귀가했다”는 취지로 말해 ‘상담 종결’로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파출소 소속의 한 경찰관은 “일부러 현장 출동을 누락한 건은 없다”면서 “20명에 불과한 야간근무 인력으로 폭행, 주취 난동 등 각종 신고를 처리하며 대규모 압사 사고까지 대응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오후 6~10시 파출소에 접수된 전체 신고는 79건에 달했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파출소가 정말 신고를 대충 처리한 건지, 아니면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잘 대처하지 못했는지는 수사에서 규명돼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②핵심 규명 대상은 서울청·용산서 역할
지휘부(경찰청)와 현장(파출소)의 입장이 다른 만큼, 의혹의 실타래를 풀 핵심 수사 포인트는 ‘연결 고리’ 격인 용산서와 서울청의 역할이다. 통상 이태원 일대에서 112신고가 들어오면 ‘서울청 112치안종합상황실→용산서 112치안상황실→경찰서 형사 혹은 지역경찰(지구대ㆍ파출소)’ 순으로 하달된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11번 신고에서 ‘압사’ 단어가 9번이나 언급될 정도의 사안이라면 상급기관 차원에서 추가 인력 배치 등의 조치가 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112신고 중 중대 사안은 ‘윗선’에도 별도로 보고된다.
용산서나 서울청이 상황을 안이하게 자체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실제 참사 당일 두 기관은 추가 인력 배치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광호 서울청장이 사고 발생(29일 오후 10시 15분) 1시간 21분이 지난 오후 11시36분에서야 사고 발생 사실을 처음 인지한 것만 봐도 기민하게 대응했다고 보기 어렵다. 인접 경찰서 출동 지원 등 서울청 차원의 대응은 30일 0시쯤 이뤄졌다. 경찰 고위당국자는 “지방경찰청이 미리 기동대라도 투입했어야 했다”며 서울청의 과실 쪽에 무게를 실었다.
③'기동대 배치' 현장 요구 누가 외면했나
핼러윈 축제에 앞서 경찰이 어떤 사고 예방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혼잡 경비 대책서’에 따르면, 용산서는 핼러윈 축제 기간(28~30일) 112신고 급증에 대비해 이태원 일대 지구대ㆍ파출소 5곳의 야간근무 인력을 45%(47명→68명) 증원했다. 하지만 인원을 늘리고도 경찰이 압사 관련 112신고 대응에 실패하면서 경찰 안에서도 “용산서가 위험성을 과소 평가했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축제 전 이태원파출소 측은 “기동대 인력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상급기관에서 거부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일선의 기동대 배치 요구를 용산서 단계에서 묵살한 것인지, 아니면 기동대 운용권한을 가진 서울청이 집회ㆍ시위 대응 등을 이유로 거부한 건지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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