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없는 인생 어디 있으랴… 시험 불합격의 절망 딛고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지길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2022. 11. 3. 03:0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입 시즌이 시작됐다.
이 시에서도 자신을 뽑아주는 시험관이 없는 현실을 한탄하며 세상을 등지고 싶은 절망감을 드러냈다.
동료에게 낙방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고 뛰어난 인재를 뽑지 않은 시험관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일갈했다('送沈秀才下第東歸', "下第子不恥, 遺才人恥之"). 과거 제도의 불공정함에 대한 항변이다.
'영웅본색'의 영어 제목처럼 시험에 불합격한 이들에게도 쓰라린 과거만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A Better Tomorrow)'가 있길 바란다.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시를 영화로 읇다]<47>낙방을 부끄러워할 필요 없네
한미한 출신의 시인은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했지만 권세가 자제들에게 밀려 낙방하곤 했다. 심지어 태도가 건방져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시험장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시인은 참담한 심경을 병든 매미(病蟬)나 가을 매미(早蟬)에 빗대어 토로하기도 했다. 이 시에서도 자신을 뽑아주는 시험관이 없는 현실을 한탄하며 세상을 등지고 싶은 절망감을 드러냈다.
시인이 낙방으로 인한 궁핍을 호소한 것처럼, 전지희 감독의 ‘국도극장’(2020년) 주인공 기태도 오랜 사법고시 준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 기태는 수차례 고배를 마신 뒤 사법고시마저 폐지되자 고향에 내려와 오래된 영화관에서 일하게 된다. 마지못해 취업은 했지만 성공한 고향 친구와 대비되는 초라한 처지와 고시 준비로 허비한 세월을 질타하는 형과의 갈등으로 마음이 편치 못하다. 시에서도 합격을 축하하는 소란스러운 잔치와 대비되는 시인의 고단한 처지가 부각된다.
시대와 성격이 다르지만 과거와 고시 제도는 성공과 실패의 명암을 극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인은 절망만 하지 않았다. 동료에게 낙방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고 뛰어난 인재를 뽑지 않은 시험관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일갈했다(‘送沈秀才下第東歸’, “下第子不恥, 遺才人恥之”). 과거 제도의 불공정함에 대한 항변이다.
영화도 기태의 현실을 절망적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어느 날 서울로 올라가려는 마음을 접고 홀로 국도극장을 지키던 기태의 눈에 보도블록 사이로 핀 노란색 들꽃이 들어온다. 꽃과 함께 사진을 찍는 기태의 입가엔 엷은 미소가 번진다. 극장에 걸린 옛 홍콩 영화 ‘영웅본색’ 간판에는 저우룬파(주윤발)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기태가 그려져 있다. ‘영웅본색’의 영어 제목처럼 시험에 불합격한 이들에게도 쓰라린 과거만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A Better Tomorrow)’가 있길 바란다.
대입 시즌이 시작됐다. 합격한 소수의 기쁨 뒤에는 불합격한 다수의 슬픔이 있다. 실패하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한시에서도 낙방은 많이 읊은 주제 중 하나였다. ‘당시유원’(唐詩類苑)에서는 ‘낙제(落第·과거 시험에 떨어짐)’란 항목을 별도로 두기까지 했다. 당나라 시인 가도(779∼843)도 과거에 낙방하고 다음 시를 남겼다.
한미한 출신의 시인은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했지만 권세가 자제들에게 밀려 낙방하곤 했다. 심지어 태도가 건방져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시험장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시인은 참담한 심경을 병든 매미(病蟬)나 가을 매미(早蟬)에 빗대어 토로하기도 했다. 이 시에서도 자신을 뽑아주는 시험관이 없는 현실을 한탄하며 세상을 등지고 싶은 절망감을 드러냈다.
시인이 낙방으로 인한 궁핍을 호소한 것처럼, 전지희 감독의 ‘국도극장’(2020년) 주인공 기태도 오랜 사법고시 준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 기태는 수차례 고배를 마신 뒤 사법고시마저 폐지되자 고향에 내려와 오래된 영화관에서 일하게 된다. 마지못해 취업은 했지만 성공한 고향 친구와 대비되는 초라한 처지와 고시 준비로 허비한 세월을 질타하는 형과의 갈등으로 마음이 편치 못하다. 시에서도 합격을 축하하는 소란스러운 잔치와 대비되는 시인의 고단한 처지가 부각된다.
시대와 성격이 다르지만 과거와 고시 제도는 성공과 실패의 명암을 극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인은 절망만 하지 않았다. 동료에게 낙방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고 뛰어난 인재를 뽑지 않은 시험관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일갈했다(‘送沈秀才下第東歸’, “下第子不恥, 遺才人恥之”). 과거 제도의 불공정함에 대한 항변이다.
영화도 기태의 현실을 절망적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어느 날 서울로 올라가려는 마음을 접고 홀로 국도극장을 지키던 기태의 눈에 보도블록 사이로 핀 노란색 들꽃이 들어온다. 꽃과 함께 사진을 찍는 기태의 입가엔 엷은 미소가 번진다. 극장에 걸린 옛 홍콩 영화 ‘영웅본색’ 간판에는 저우룬파(주윤발)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기태가 그려져 있다. ‘영웅본색’의 영어 제목처럼 시험에 불합격한 이들에게도 쓰라린 과거만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A Better Tomorrow)’가 있길 바란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아일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NLL 넘은 北 미사일…10시간동안 25발 ‘소나기 도발’
- 美백악관 “北, 러시아에 무기 지원…중동·북아프리카行 위장”
- “정말 죄송합니다” 김건희 여사, ‘이태원 참사’ 빈소 조문
- 경찰청장, ‘이태원 참사’ 대통령보다 늦게 인지…보고 체계 안 지켜졌다
- 김만배 “영학이, 이재명님 靑 가면”…법정서 녹취록 공개
- 여행지서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으로…전국 곳곳서 눈물의 발인
- [단독]경찰, 보름전 축제땐 안전펜스-교통통제…핼러윈땐 경비 담당부서 뺐다
- 경찰 부실대응에 커지는 정부 책임론…대통령실 “감찰·수사상황 지켜볼 것”
- 시민단체 “5일 이태원 참사 추모 촛불집회”…서울시 “신청 기간 지나”
- 日언론 “尹·기시다, 이달 중순 한일 정상회담 조율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