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비스듬한 관계
“어린아이를 혼내기 위해 경찰서에 데려 오시면 아이 마음에 상처만 남습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묻고, 듣고, 답해주는 인내의 시간보다 더 나은 훈육은 없습니다.” 최근 어느 경찰서가 내걸어 화제가 된 현수막의 문구다. 자녀 또는 손주가 말썽을 피우는데 혼내도 말을 듣지 않으면 경찰서에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나 조부모들이 종종 있어서 난감하다고 한다. 훈육의 어려움이 적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자녀의 수가 줄어들었는데 부모 노릇은 왜 이렇게 버거워졌을까?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부모 이외에 여러 어른과 관계를 맺으며 자라났다. 이모나 삼촌 등의 친척이 함께 살거나 자주 집을 찾아왔고, 동네에서는 이웃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늘 마주쳤다. 그들은 아이를 함께 보살피면서 잘못하면 꾸지람도 해주었고,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존재만으로 자연스러운 규율이 이뤄졌다. 말하자면, 부모나 교사와 아이들 사이의 수직적 관계와 아이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에 더해 ‘비스듬한’ 관계가 다방면으로 열려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연결망이 거의 사라졌다. 그것이 왜 문제인가. 집과 학교에서의 수직적 관계는 간섭과 통제로 흐르기 쉽고, 또래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는 비교와 경쟁이 일어나기 일쑤다. 비스듬한 관계는 그러한 긴장을 흡수하는 완충지대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이 부모나 교사 이외의 연장자들과 다양하게 접속할 수 있다면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인생 선배를 통해 새로운 가치관이나 라이프스타일을 접하면서 역할 모델의 폭을 넓힐 수 있고, 자신의 숨은 미덕을 발견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서울 구로구의 오류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학생이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등교하게 되면서 지각하는 날이 많았다. 홀어머니는 생계에 쫓겨 아이와 동행할 수 없었다. 교장과 학부모회는 출근길에 그 아이를 태워다 줄 학부모들을 찾아서 등·하교 도움 스케줄을 짰다. 덕분에 그 아이는 매일 이웃의 부모들과 함께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의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원래 무척 소심하고 기가 죽어 있는 편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표정이 밝아졌고 낯선 어른에게 스스럼없이 말도 걸었다. 도우미로 참여한 부모들은 그런 변화에 뿌듯함과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이제 돌봄의 기능을 다각화하고 중층화해야 한다. 어린 시절의 육아만이 아니라 청소년기의 자녀 양육도 지역사회가 열려 있으면 부모의 짐을 분담할 수 있다. 스포츠 클럽이나 자원봉사 모임 등에 청소년들이 참여하면서 여러 어른과 지속적으로 교류한다면, 가정과 학교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한 관계는 어른들에게도 선물이 되는데, 특히 일에만 매달려 정체성이 빈곤해진 남성들이 자신의 인생 경험을 사회적 자산으로 가공하는 기회일 수 있다.
비스듬한 관계는 고령 사회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또래로만 인맥이 구성되면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연소자들과 편안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연함, 권위주의를 벗고 소탈한 마음으로 타인을 맞이하는 문화가 절실하다. 점점 무정해지는 세상, 서로에게 비스듬히 어깨를 기대면서 건너가고 싶다.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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