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제자리 찾은 원자력 정책
오태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은 지난달 말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각료회의에서 ‘21세기 에너지원으로서의 원자력 역할과 한국의 원자력 정책 방향’을 담은 국가 성명을 발표했다. IAEA 각료회의는 각국의 원자력 분야 정부기관과 전문가들이 모여 원자력 정책 방향을 발표하는 자리다. 2005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4년마다 열리는데, 이번 5차 회의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1년 늦춰져 올해 열렸다. 오 차관은 이 자리에서 “한국 정부는 원전을 적극 활용하고 재생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조화해 나가는 원자력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7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직전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은 “향후 60여 년에 걸쳐 원전 의존도를 점차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해체 기술 개발을 통해 원전 산업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도 했다. 원자력을 논하는 국제사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적극 천명한 것이었다. 반면 개최국이었던 UAE가 발표를 통해 한전·한수원·두산중공업 등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강조하며 한국 원전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가 부정했던 원전을 해외에서 다른 나라가 칭찬하는 낯 뜨거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보도 자료에서 “이는 우리나라의 신규 원전 수출에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탈원전을 몰아붙이고, 해외에선 원전 수출을 추진하는 해괴한 행태를 보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수명이 남은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한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 그렇게 국내 원자력 생태계는 망가져 갔다. 하지만 산업부 장관은 해외를 방문해 원전 세일즈 활동에 나서는 모순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를 두고 원전 업계에선 ‘내불남로’라는 말까지 나왔다. ‘내(한국)가 하면 불륜, 남(외국)이 하면 로맨스’라는 뜻이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국내 원전 신규 건설도 안 하는데 해외에서 누가 우리 원전을 믿고 쓰겠느냐”고 했다.
원자력계에서는 올해 IAEA 성명에 대해 “정부가 이제야 국제사회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였던 한국의 원자력 정책과 산업이 정상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폴란드 원전 수출 성사 가능성이 커지면서, 원자력계의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다. 백년대계인 에너지 정책이 정권에 따라 바뀌며 해외에서 망신을 사는 일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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