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원수]112 녹취록

정원수 논설위원 2022. 11. 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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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0대 여성이 112 신고를 하고도 흉악범 오원춘에게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신고가 15초에 불과했고, 구체적인 장소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시도경찰청에 24시간 긴급 신고를 접수하는 112종합상황실을 만들었고, 신고 내용은 전자시스템으로 일선으로 하달했다.

이것만으로도 참사 4시간 전에 "압사당할 것 같다"는 첫 신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경찰의 부실 대응 의혹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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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0대 여성이 112 신고를 하고도 흉악범 오원춘에게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신고가 15초에 불과했고, 구체적인 장소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고 경찰은 결국 112 녹취록을 공개해야 했다. 실제 신고 시간은 7분 36초였다. 경찰의 당초 해명과는 달리 장소도 분명하게 언급됐다. 여기에 피해자가 “살려 달라”며 비명을 지르는 것을 경찰이 듣고만 있었다는 사실까지 추가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112 신고 시스템은 완전히 바뀌었다.

▷신고 접수는 생활안전과, 현장 출동은 경비과가 각각 담당하던 운영체계를 하나의 컨트롤타워 아래 통합했다. 시도경찰청에 24시간 긴급 신고를 접수하는 112종합상황실을 만들었고, 신고 내용은 전자시스템으로 일선으로 하달했다. 112 신고는 자동 녹음된다. 다만 텍스트 변환은 하지 않는다. 신고자 측이 방문하면 녹음 파일을 재생해 주지만 녹취록을 제공하지 않는다.

▷지난달 29일 경찰에 접수된 이태원 참사 관련 11건의 112 녹취록이 1일 공개됐다. 국회의 요구에 따라 경찰이 녹음 파일을 듣고 임의로 발췌 정리한 것이다. 녹취록 전문이 아닌 녹취 요약본인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참사 4시간 전에 “압사당할 것 같다”는 첫 신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경찰의 부실 대응 의혹이 커졌다. 문제는 전체 녹음 파일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이다. 녹취록에 ‘비명소리’로 적힌 부분을 육성으로 듣게 되면 상황이 또 달라질 수 있다.

▷한때 전화 응대 교육조차 받지 않은 신참들이 신고를 접수해 논란이 되자 요즘은 전문 교육을 받은 베테랑 경찰이 아니면 종합상황실 근무가 어렵다. 전문요원은 신고 유형에 따라 대응의 수준을 가장 위급한 ‘코드0’부터 긴급성이 전혀 없는 ‘코드4’까지 5단계로 입력한다. 코드0은 광역 단위로 대규모 인원이 필요하고, 코드1은 강력범죄처럼 위해가 곧 가해질 수 있는 다급한 상황을 뜻한다. 11건 중 코드0은 1건, 코드1은 7건이었다. 그런데도 대규모 경찰력의 신속한 출동이 왜 없었는지 의문이다.

▷과거 20개가 넘었던 위급 상황 신고 전화 창구는 지금은 경찰과 소방(119), 민원상담(110) 등 3곳으로 통합됐다. 경찰과 소방은 시스템도 연계되어 있다. 이태원 참사 관련 11건의 신고 중 2건을 경찰은 소방에도 전달했다. 112 녹취록은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날의 상황을 복원할 수 있는 디지털 증거들을 모아 참사의 원인이라는 진실에 최대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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