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부고문
요즘은 SMS(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로 부고 소식을 접한다. 거기에는 가족관계, 빈소, 발인 날짜, 장지, 부조금 입금 은행계좌가 적힌다. 망자가 어떤 이였는지 알기는 어렵다. 죽음에 관한 오늘날의 양상은 옛날과는 달라졌다. 일상에서 죽음은 소거되어, 병원 장례식장을 크게 넘지 못한다. 하지만 전통시대에는 죽음이 일상에 섞여 있었다. 자기 아이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 부모는 거의 없었고, 가족과 친구들의 죽음은 잦았다. 죽음은 삶과 공존했다.
거의 모든 옛사람들의 문집, 즉 그들이 평생 썼던 시나 문장을 모은 책에는 망자와 관련된 시와 문장들이 적지 않다. 다음은 연암 박지원이 죽은 맏누이를 위해 지은 묘지명 일부이다.
“누이는 16세에 덕수 이씨 이택모 백규(이택모의 자(字))에게 출가하여 1녀2남을 두었다. 신묘년 (음력) 9월 초하루에 돌아갔다. 향년 43세이다. 남편의 선산이 아곡(현 경기 양평군 지평면)에 있기에 그곳에 장사 지내게 되었다. 백규가 어진 아내를 잃고 난 뒤 가난하여 살아갈 방도가 없자 그 어린것들과 여종 하나, 크고 작은 솥과 상자 등을 끌고 배를 타고 협곡으로 들어갈 양으로 상여와 함께 출발했다. 나는 새벽에 두포(한강 동호대교 부근)에서 떠나는 배에 올라 통곡한 뒤 돌아왔다.
아! 누님이 갓 시집가서 새벽에 단장하던 일이 마치 어제인 듯하다.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다. 응석을 부려 누워 뒹굴면서 신랑 말투를 흉내 내어 더듬거리며 정중하게 말을 했더니, 누님이 그만 수줍어서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건드렸다. 나는 성내어 울며 먹물을 분가루에 섞고 거울에 침을 뱉어 댔다. 누님은 오리 모양, 나비 모양 노리개를 꺼내 주며 울음을 달랬었는데, 그때로부터 지금 스물여덟 해가 되었다! 강가에 말을 세워두고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이 휘날리고 돛 그림자가 너울거리다가, 강굽이에 이르러 나무에 가리자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강가의 먼 산들은 검푸르러 쪽 찐 머리 같고, 강물 빛은 거울 같고, 새벽달은 고운 눈썹 같았다. 누님이 빗을 떨어뜨렸던 일을 울면서 생각하니, 유독 어렸을 적 일들은 역력하고 즐거움도 많았고 세월도 더디었다. 중년에 들어서는 늘 우환에 시달리고 가난을 걱정하다가 꿈속처럼 훌쩍 지나갔으니 남매가 되어 지냈던 날들은 또 어찌 그리도 금방이던가!” 상여가 장지로 떠나던 날의 풍경과 28년 전 누이와의 추억이 230년 세월을 넘어 전해진다.
조선 시대에 죽음과 관련된 글의 형식들은 다양했다. 행장(行狀)도 그중 하나이다. 망자의 생애를 응축한 점에서, 유명한 뉴욕타임스 부고(obituary)와 흡사하다. 다음은 개혁을 주도하다가 기묘사화로 죽음을 맞은 조광조를 기려 이황이 지은 행장의 일부이다. “하늘에 있는 것은 본래 알 수 없지만, 사람에게 있는 것도 역시 모두 알 수는 없다. 하늘이 이 사람에게 큰 책임을 내린 뜻은 결국 무엇이었던가. 선생을 헐뜯는 무리의 끝없는 담론이 화복(禍福)과 성패(成敗)의 결과만으로 판단하는 데서(조광조가 화를 당하여 패했음을 말한다) 벗어나지 못하여, 세도(世道)가 더욱 투박해졌다. 몸조심하는 이들은 말하기를 꺼리고, 선량한 이들(조광조와 개혁파 사림)을 원수로 여기는 것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태도를 바꾸어서 새롭게 혁신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세상의 선비 된 자가 여전히 왕도(王道)를 높이고 패술(패術)을 천하게 여길 줄 알며, 바른 학문을 숭상하고, 정치하는 도리를 반드시 몸을 닦는 데에 근본을 두게 되었으니, 이것이 누구의 공이며, 누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는가. 하늘의 뜻을 여기에서 볼 수 있겠다.”
박지원과 이황의 글은 형식도 내용도 다르다. 하지만 망자가 남긴 생의 여운을 지금까지 전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이태원에서 있었던 참사로 목숨을 잃은 많은 이들의 명복을 빈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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