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산의 시선] 아무것도 하지 마라
차 조심해라 그렇게 일렀건만, 사람에게 깔릴 줄 누가 알았을까
하지 마라, 네 책임은 없다는 듯 두리번거리며 희생양 찾지 마라
아무것도 하지 마라. 산다는 게 죽을죄다. 생과 사의 주사위가 매일 아침 굴러간다. 산다는 게 그런 건지. 집으로 가는 길은 원래 보이지 않는 건지.
아무것도 하지 마라. 그 버스를 타지 마라. 기어봉에 전진 후진도 모자라 하강이 있다. 한강 다리 끊어져 그 버스 곧 추락한다. 상판에 곤두박질쳐 두 동강 난다. 튕겨 나온 너의 몸이 한강 물에 실려 간다. 푸른 꿈이 실린 너의 교복 누가 그리 정성스레 다려주었니. 검은 강물에 젖은 너의 교복 누가 탁탁 털어 말려주겠니. 그 버스는 타지 마라. 성수대교 무너진다. 차라리 열차를 타고 가라.
그 열차는 타지 마라. 시너와 라이터를 들고 있는 심장 없는 승객이 있다. 그래도 타려거든 하고픈 말, 미처 건네지 못했던 말 남김없이 하고 타라. 네 안부 기다리는 너의 부모님에게, 그림일기 그리자는 너의 아이들에게, 저녁 밥상 마주 앉을 너의 남편과 아내에게 꼭 한번 사랑했노라고, 다음 생에 우리 또 만나자고 꼭 한번 전해주어라. 대구 지하철 불난다. 벌겋게 달아오른 바퀴가 선로 위에 멈춰 섰다. 미처 못다 한 말들이 터널 안의 재가 되어 흩날린다. 그 열차는 타지 마라. 차라리 물 위로 떠다니는 배를 타라.
그 배도 타지 마라. 과적에 고박 불량, 평형수도 못 채운 그 배는 곧 가라앉는다. 나오라는 말 한마디 없던 그 배에는 선장도 없고 바다에는 해군도 해경도 없는데 맹골수도 차가운 물 들이치면 네 여린 몸 어떡하려고. 친구 손 꼭 부여잡고 제주 해변 거닌다는 게 죽을죄는 아닐진대 곧 가라앉을 그 배를 왜 꼭 타려고. 신발장에 흰 운동화 한 켤레 자리 빈다. 둘러앉은 밥상 위에 수저 한 벌 모자란다. 아버지 차 룸미러에 너의 얼굴 안 보인다. 타지 마라. 그 배도 곧 가라앉는다.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마라.
아무것도 하지 마라. 쇼핑조차 하지 마라. 냉각탑이 지붕 뚫고 백화점이 무너진다. 아빠 셔츠, 엄마 내복 사서 효도 한번 해보겠다는 게 죽을죄는 아닐진대 첫 월급 탄 우리 아들 머리 위로 콘크리트 떨어진다. 다 키워낸 팔다리를 잘라낸다. 석고보드 떨어진다. 부모 얼굴 비춰주던 각막 위를 뒤덮는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숨마저도 쉬지 마라. 살균제를 쓴다는 게 죽을죄는 아닐진대 멀쩡했던 가습기에 그렁그렁 폐 녹는다. 우리 아기 잠자는 방 모빌 소리 아련한데 딸랑딸랑 잠 깰 시간 울지 않고 고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술도 먹지 말고 춤도 추지 말고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라. 누워서 죽는 것도 사람이고 앉아서 죽는 것도 사람인데 서서 죽는 것이 사람다운 죽음인가. 이태원에 가지 마라. 이태원역 1번 출구 그 골목에 가지 마라. 코로나에 치인 청춘, 논다는 게 죽을죄는 아닐진대 시퍼렇게 질린 분장, 하얀 시트 코스튬이 찬 바닥에 누워 있다. 내려오는 사람, 올라가는 사람, 인도가 차도보다 더 무서울 줄 누가 알았을까. 차 조심해라 그렇게도 일렀건만 다 키운 내 새끼들 사람에게 깔려 죽을 줄 누가 알았을까. 그 새벽에 붉은 낙엽이 그렇게도 흩날리더니. 그 새벽에 그렇게도 별이 맑더니.
이제 아무것도 묻지 마라.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이런 아픔들을 겪어야 하는지, 기필코 누군가가 죽어야 했는지, 이러한 물음에 우리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짓눌려 죽어가던 이들, 울며 심폐 소생술을 하던 이들, 그 옆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던 이들, 이 처참한 광경들을 웃으며 지켜보던 이들, 이 모든 것이 인간 삶의 원형인가라는 물음에 우리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동굴 속을 기어 나와 몸을 세운 미어캣처럼, 네 책임은 없다는 듯 두리번거리며 희생양을 찾지 마라. 때로 진실은 가장 빛나지만 주우면 범법자가 되고 마는 땅에 떨어진 다이아몬드 같은 것. 진실은 우리 모두가 그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마라. 삶은 곧 생동하는 죽음이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화장터의 화장(化粧)이다.
아무것도 믿지 마라. 어딜 가나 죽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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