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용산署, 파출소에 떠넘겼다

조응형 기자 2022. 11. 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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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참사]
서울청 112상황실, 시민들 ‘압사’ 신고 전달만
용산署도 출동 지령만 내리고 대응 제대로 안해
현장 100m거리 파출소, 참사 35분뒤 사태 파악
2차선 도로까지 넘어온 꽃과 추모 물품들.
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대형 사고에 대처하는 112 신고 대응 시스템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고 4시간 전부터 위험을 알리는 시민들의 신고가 되풀이됐지만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에서 일선 파출소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신속한 현장 통제나 경찰 기동대 투입 등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1일 경찰이 공개한 112 신고 기록에 따르면 첫 참사 위험 경고는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4분에 이뤄졌다.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에 ‘압사’를 언급한 신고 전화가 들어온 것이다. 첫 신고자인 박모 씨는 2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서 인파가 너무 많아 위험하다는 생각에서 신고를 했다”며 “인파 때문에 남편, 딸과 헤어지는 등 소름 끼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서울청 112치안종합상황실은 박 씨 등이 한 신고 11건을 위험도에 따라 분류한 뒤 일선 경찰서와 파출소로 전달했다. 신고 11건에서 ‘압사’라는 단어가 9번이나 반복됐고 위험도가 가장 높은 ‘코드0’과 다음 단계인 ‘코드1’ 신고가 쏟아졌지만 상황을 파악해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넘기기만 했다.

신고를 전달받은 용산경찰서 112상황실도 파출소에 출동 지령을 내렸을 뿐, 갈수록 늘어나는 신고와 악화되는 신고 내용을 파악하고 대응하지 않았다.

결국 참사 당일 약 13만 명이 방문한 이태원 일대 현장 대응은 사고 당시 근무 인원이 20여 명에 불과한 이태원파출소 몫이 됐다. 이태원파출소 직원 A 씨는 1일 경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직원들은 현장 곳곳에서 인파를 통제 중이었고, 몰려드는 인원이 너무 많아 안전사고 우려 외에 다른 신고도 처리했다”고 했다.

파출소 직원들은 밀려드는 신고를 처리하느라 바빠 출동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태원파출소가 신고 11건 중 현장에 출동한 것으로 확인된 건 4건뿐이다. 갈수록 신고가 늘고 신고 내용이 심각해졌는데 참사 1시간 전부터는 출동한 기록이 없었다.

이날 오후 10시 15분 참사가 발생한 직후에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아일보 기자는 참사 당일 오후 10시 반부터 약 30분 동안 이태원파출소 유리문 앞에 있었는데 근무자들은 주취자나 모의 총기를 사용하다 적발된 시민을 조사하는 등 크고 작은 신고와 민원에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참사 발생 전후에 이미 현장에 나가 있던 일부 경찰관이 초기 구조에 동참한 걸 제외하면 현장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이 파출소 내 직원 다수가 심각성을 깨달은 것은 참사 발생 35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날 오후 10시 50분경 한 시민은 파출소 앞에서 다급하게 “구급차가 못 빠져나가고 있다. 경찰이 길을 뚫어줘야 할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제야 각자 담당한 사건을 처리하던 파출소 근무자 2, 3명이 “(예정됐던) 마약 단속을 갈 게 아니다”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서 인명 구조 활동이 본격화되던 시점이었다. 부상자를 실은 구급차가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파출소 경찰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서울청은 신고 전달, 용산署는 출동 지령만… 현장 대응 미뤄

파출소에 떠넘긴 핼러윈 대응
이태원파출소도 심각성 인지 못해
파출소가 기동대 요청할 경로 없어
권한 가진 용산서장 뒤늦게 요청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 근무자들이 압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보니 ‘압사 신고’ 대신 ‘폭행 시비’ 출동이 우선시됐다. 참사 현장에서 “사람이 죽고 있다”며 반복해 외치는 모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확산된 이 파출소의 김백겸 경사도 폭행 시비 신고를 받고 출동해 현장에 도착한 뒤 우연히 사고 상황을 목격하고 구조 활동에 나섰다.

이 파출소에서 근무했던 경찰들은 대규모 인파가 밀집한 상황에서 자체 힘으로 대응하기는 처음부터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대응을 담당했던 파출소 직원 A 씨는 내부망에 “(우리가) 해산시키는 인원보다 지하철과 버스로 몰려드는 인원이 몇 배로 많았다”며 자신들을 향한 책임론에 억울해했다.
○ “파출소→기동대 요청 경로 없다”

대규모 인파가 몰린 상황에서 인원 통제를 전담하는 조직은 경찰 기동대다. 일선서 경비과장은 집회나 시위, 축제, 행사 등이 발생하면 각 지방청 경비과에 보고하고 경찰 기동대 지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사고 발생 전까지 기동대는 전혀 투입되지 않았다.

파출소가 사전에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기동대 출동을 요청했다면 사태는 달라질 수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현직 경찰들은 112상황실에 접수된 신고를 바탕으로 파출소가 기동대 투입을 요청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방청 112상황실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경찰은 “대규모 인파 관련 신고가 있다고 파출소에서 바로 일선서나 지방청 경비과에 지원을 요청하는 사례는 본 적이 없다. 공식 보고 절차 자체가 없는 걸로 안다”고 했다.

사전에 기동대 투입 요청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선 관계자들의 증언이 엇갈린다. 이태원파출소 직원 A 씨는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사전) 대비 당시 용산서에서 서울청에 기동대 지원을 요청했으나 지원을 안 한 걸로 안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청 관계자는 “실무선에서 비공식적 요청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지만 공식 보고 체계를 통한 요청은 없었다”고 했다.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은 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경찰 기동대 지원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 “감찰팀이나 수사팀이 파악(조사)할 것”이라고 했다.


○ 용산서장 요청 기동대, 사고 2시간 뒤 도착

현재 경찰 시스템에서 현장의 위험을 감지하고 기동대 투입을 즉시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은 일선 경찰서장이다. 하지만 이임재 당시 용산서장은 이날 저녁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집회 현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 집회는 이날 오후 9시경 종료됐다. 이 서장은 참사 발생 5분 후인 오후 10시 20분에야 이태원역 인근에 도착했다.

대통령실 인근에서 대기 근무하던 서울청 기동대가 사고 현장에 도착한 건 이날 오후 11시 25분이었다. 이후 서장 요청으로 인접 경찰서 형사과와 경찰 기동대 등이 투입되기 시작한 건 30일 0시 20분경이었다. 사고 발생 후 2시간가량 지난 다음이다.

기동대 투입 권한을 지닌 김광호 서울청장은 사고 당일 오후 9시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퇴근했다. 참사 위험을 경고하는 시민들의 112 신고가 잇따르던 시점이다. 뒤늦게 용산서장의 전화를 받고 사고 발생을 인지한 김 청장은 다음 날 0시 25분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오후 6시 이후면 경찰 지휘부가 사실상 다 퇴근하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열쇠가 되는 사람이 112상황실장”이라며 “긴급 상황 발생 시 내부에서 바로 시도청장, 경찰청장에게까지 직접 연락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은 점도 문제”라고 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경찰 내 지휘체계가 복잡하고, 부서별 업무가 세분화돼 있어 윗선의 결정이 내려지지 않으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복잡한 계급 및 부서 체계를 통폐합하고 단순화해 신속하고 정확한 보고 및 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양인성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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