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향 피우고 읽는 詩

김선오 시인·시집 ‘나이트사커’ 2022. 11. 3.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한상엽

얼마 전 후각 예술가 김이단님과 함께 ‘후각의 시학’이란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도시화 과정은 우리 삶에서 수많은 악취를 몰아냈지만, 동시에 후각 자체를 도외시하게 만들었다는 문제의식이 퍼포먼스의 시발점이었다. 도시화 이후 우리는 ‘향’과 ‘냄새’의 위계를 구분하게 됐고, 후각으로 감지하는 것들을 좋은 혹은 나쁜 냄새 정도로만 구분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후각을 묘사하는 언어도 시청각과 촉각, 미각에 비해 지극히 빈곤해졌다.

후각은 무엇보다 동물적인 것이고 언어는 무엇보다 인간적인 것이다. 그만큼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후각 예술’이란 드문 장르와 협업하는 과정이 매우 신선했다. 우리의 작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좁혀졌다. 첫째, 언어를 후각화하기. 둘째, 후각을 언어화하기. 우선 나의 시집에서 세 편의 시를 골라 이단님이 어울리는 향을 조향한다. 이후 그 세 가지 향을 불을 끈 채 피운다. 그럼 그걸 맡고 내가 다시 시로 언어화해 읽는다.

후각의 언어화는 상상해본 적 없던 시도다 보니 생각보다 몹시 어려웠다. 어쩌면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불을 끄고 피운 향을 맡는 동안 후각은 시각과 청각과 아예 별개의 것이 아니며, 그 둘에 비해 능력이 얼마나 잠재된 것인지를 깨달았다. 향에 집중하면 어떤 장면이 보이거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후각은 기억과 가장 밀접한 감각이라던데, 낯익은 향을 맡으면 기억 속 저편에 묻어두었던 감각이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감각이 인간의 몸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후각일 것 같았다.

퍼포먼스는 ‘2022 작가미술장터’란 행사 주간의 일환으로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중정에서 이루어졌다. 이단 님과 나는 무대에 마주 보고 앉아, 그는 향을 피우고 나는 시를 읽었다. 관객들에게는 눈을 감아주기를 요청했다. 다른 감각을 최소화하여 후각에 집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퍼포먼스를 마치고 참여 관객들은 들리는 말과 코로 들어온 향이 뒤엉켜 새로운 감각을 체험했다고 했다. 도외시되어 있는 감각을 실현하기. 언어로 할 수 있는 일이 그 밖에 얼마나 더 다양할 수 있을지 또다시 상상해 본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