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개방과 관용으로 넘는 '저출산벽'
얼마 전 프랑스와 독일로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의 목적을 해외에서 목표를 찾거나 프로그램 모방에 두지 않았다. 차세대 미래 융합연구를 위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글로벌 융합연구를 위한 시작점을 모색하려 했다. 출장에서 만난 연구자와 정책입안자들은 한국의 융합연구 정책과 시스템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우리 연구·개발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출장 동안 확인하고 주목한 부분은 국가라는 경계마저도 걷어낸 탁월한 개방성이었다. 개방성을 토대로 이뤄낸 성공적인 융합경험이 연구·개발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연구문화로 정착된 부분이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부러웠던 점은 지금 우리는 잃어버린 소리를 그곳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래를 여는 아이들의 소리였다.
재잘대고 웃는 소리가 공원과 박물관을 채웠다. 떼쓰는 소리와 이를 어르는 부모의 소리마저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는 듯했다. 한 세대 전 한국도 그랬다. 1980년 한국의 출산율은 2.72명이었고 프랑스는 1.96명으로 저출산 국가였다. 4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는 소폭의 등락 속에 출산율을 지켰지만 한국은 지난해 0.81명으로 급락하며 초저출산 국가로 전락했다. 총인구도 국가통계 72년 만에 처음으로 줄었다.
경제학자 해리 덴트는 특정 국가의 경제상황이 인구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데이터로 보여줬다. 그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저출산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하며 한국 경제를 더 크게 걱정했다. 한국의 출산율은 가파르게 떨어져 올 상반기엔 0.75명으로 도시국가 수준을 기록했다. 게다가 1997년 IMF 경제위기로 1970년생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을 늦추고 그새 출산율이 떨어져 에코붐 세대마저 잃었다. 한국이 직면할 경제절벽은 더 깊고 불황의 시간은 더 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리 덴트의 경고가 아니어도 초저출산 극복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다. 지난 30년간 천문학적인 투자와 전방위 정책을 추진했다. 보육과 양육환경을 개선했고 젊은 부부를 위한 주택지원정책을 추진했으며 양성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악화일로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초저출산의 근본 원인으로 지역편중이 초래하는 청년간 심각한 경쟁을 꼽는다. 물리적 공간과 자원경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청년세대가 직면한 경쟁의 중심에 양질의 일자리가 있다. 내일을 꿈꾸고 계획할 수 없다면 미래가 아닌 생존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장세가 둔화한 기존 주력 산업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적 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은 파괴적 혁신으로 가능하다 했다. 파괴적 혁신의 시작점으로서 창의적 연구라는 과학기술계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은 당연하다. 창의적 연구를 요구받는 연구자에게 어떤 구체적인 연구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 진부하다 해도 역시 융합이다.
초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제도 측면에서 보육, 부동산, 젠더에 이민정책까지 더한 융합도 필수다. 이동 중 잠시 머문 쾰른역 앞엔 세계적인 대성당이 있다. 압도적 쌍둥이 주탑과 스테인드글라스보다 더 경외심이 든 부분은 대성당이 보유한 관용의 역사였다. 1960년대 독일은 많은 터키 이민자를 받았다. 대성당은 무슬림들이 예배를 할 수 있도록 북쪽 본당을 개방했다. 이러한 관용 속에 이민자는 독일 사회에 융합하며 스며들었고 진정한 일원이 됐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는 1991년 시작된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구전민요를 녹취해 들려준다. 사라질 운명에 처한 전통문화를 기록으로 남겼음에 안심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소리를 기록으로만 남길 순 없지 않은가. 개방과 관용을 토대로 과학기술부터 사회제도까지 융합해 초저출산을 필히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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