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53] 아리랑 유네스코 등재 10년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는 고종의 측근으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인물이다. 1906년에 간행한 그의 책 ‘The Passing of Korea(대한제국 멸망사)’의 ‘헌사’에서 그는 “잠이란 죽음의 가상(假像)이기는 하나 죽음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대한제국의 국민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라며 당시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호머 헐버트 하면 아리랑이 떠오른다. 보통 아리랑이라고 하면 1926년에 나운규가 감독과 주연을 맡아 개봉한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아리랑은 나운규라는 지은이가 있기 때문에 전래 민요로 보기 어렵다. 잡지 ‘삼천리’ 1937년 1월 호에서 나운규는 자기의 고향 함경북도 회령에 철도를 놓기 위해 남쪽에서 온 노동자들이 부른 아리랑의 구슬픈 소리에 빠져들었으나, 이후 그 선율을 찾을 수 없어 예전에 들었던 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아리랑을 지었다고 했다.
나운규가 고향에서 들었다는 아리랑이 어떤 노래인지 알 수 없으나, 1886년 10월 17일에 호머 헐버트가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아리랑의 8마디 악보를 그리고 나서, “동네 꼬마 녀석들이 아리랑을 어찌나 불러대는지 귀가 따가울 정도”라고 편지에 썼다. 이후 1896년 미국 잡지에 ‘한국의 성악(Korean Vocal Music)’을 소개하면서 다장조에 4분의 3박자, 16마디의 아리랑 악보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아리랑은 한국인의 주식인 쌀과 같은 노래이고, 서양의 어느 시인이나 작가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한국인의 정서를 잘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채보한 아리랑 외에도 더 많은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언급된 아리랑, ‘조선의 유행요’란 제목으로 일본 신문에 소개된 아리랑, 홍석현이 간행한 일본어 사전에 실린 아리랑 등의 1894년 자료들, 1896년 미국에서 녹음된 아리랑, 1916년 고려인이 남긴 아리랑 등에서 근대의 여명이 밝아오던 19세기 후반에 이미 아리랑이 유행한 정황을 엿볼 수 있다. 우리 대중음악의 시작점에 아리랑이 있었던 것이다.
아리랑 연구는 양적으로 상당하나 그 어원과 유래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다양한 아리랑이 전하고 있지만, 선율이나 노랫말 중 어느 하나로 그 원천을 확정할 수 없다. 확실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하나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아리랑’이라는 말뿐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모든 것을 수용하고 흡수하여 변모를 거듭하는 것이 아리랑이 지닌 생명력의 근원이리라. 한민족의 정신적 동질감을 보여주는 우리의 노래 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아리랑이 등재된 지 올해로 10년, 다시 아리랑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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